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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바다 Jan 04. 2016

나는 사랑을 사랑해

실은 사랑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괴로운 것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사랑받는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다. - 롤랑 바르트   


호감, 좋아함, 관심 등의 감정에서 ‘사랑’의 감정으로 변하는(발전하는) 계기, 혹은 과정은 무엇일까. 그것은 특정 사건 일 수도 있고, 특정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은 대개 특별한 사건 이전에 생기는 감정이고 육체적 행위와도 별개로 일어나는 감정이다. 아마도 사랑은, 사랑한다는 생각과 그것을 말함으로써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랑은 발화함으로써 그 마력을 얻게 되는 것.       


언어철학자 존 오스틴(John Austin)은 발화는 행위를 수반한다는 화행 이론을 정립하였다. 언어행위이론이라고도 하는 이론을 통해 오스틴은 문장을 발화하는 것 자체가 어떤 행위를 수반한다고 설명했다. 약속 장소에 시간 맞춰 나가지 못하는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문자로 ‘나 좀 늦어’라고 말하는 것에는 단지 늦는다는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말은 늦기 때문에 기다려 달라는 부탁, 요구의 행동(행위)이 수반되는 발화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에는 이미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말(발화)이자 행동인 셈. 언어가 가진 수행적 성격으로 ‘사랑해’라는 발화는 이미 발화자를 사랑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만약, 말을 전달받는 수신자도 ‘응, 나도 사랑해’라고 응답한다면 둘은 ‘사랑’이라는 화행 이론 속에서 이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샹그릴라, 안바다, 2013.

티벳 불교지에 있는 회전 기도통인 전경통.사랑은 전경통과 같은 것. 경전이 새겨진(담겨진) 통을 굴리는 일이 곧 기도인 것처럼 사랑이라는 말 자체가 곧 사랑의 행위인 셈. 문제는, 그러다 보니 사랑이라는 말이 사랑을 만들어내는 마력으로,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그저 사랑하는 행위를 사랑하는지 모른 채 사랑하기도 한다. 특별한 이유도 사건도 계기도 없이 사랑한다는 말로 ‘수행된’ 사랑은, 같은 의미에서 특별한 이유나 사건, 계기 없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로 사랑을 철회할 수 있다. 혹시 내가 정말 사랑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베르테르가 정말 사랑한 것은 로테였을까.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그녀에 대한 사랑은 정말 ‘그녀’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내게 그녀는 성스러운 존재라네. 그녀와 함께 있을 땐 모든 욕망이 침묵을 지키지.”     
“그녀가 그 멜로디의 첫 음만 연주해도 모든 고통과 혼란과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네. (…) 그 수수한 노래가 이토록 심금을 울리니 말일세!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머리통에 권총을 발사해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때마다 그녀는 어김없이 그 음악을 들려준다네! 그러면 영혼의 방황과 어두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다시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게 된다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는 다소 평범한 로테를 보고 환상 속에서 사랑한다. 그녀 앞에서는 욕망마저 함부로 가질 수 없는 베르테르에게 그녀는 하나의 이상이 되고 환상이 되고 상상이 된다. 로테는 베르테르가 만든 로테이자 ‘환상의 로테’이다. ‘환상의 로테’를 사랑했다는 말은 ‘실재의 로테’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베르테르의 사랑에서 막상 ‘실재의 로테’는 사라졌다. 자살까지 이르게 한 ‘(환상의) 로테를 사랑했다’는 명제와 ‘(실재의) 로테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명제는, 괄호를 제거하고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명제가 된다. ‘로테를 사랑한 것은 로테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로테를 사랑한다는 알리바이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사랑했던 것.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사랑해서 죽음에 이른 것.      


우둔한 베르테르만 ‘사랑’을 사랑한 것인가. 우리도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외로워서, 힘들어서, 지쳐서, 심심해서, 고단해서, 욕구 충족을 위해서, 짜증 나서, 우울해서, 또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또는 단지 사랑하고 싶어서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아니라) 나의 사랑을 위해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잔인하지만) 적당히 괜찮다 싶은 누군가를 ‘내 사랑’의 자양분으로 삼고 (배우인) 그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나는 연출가가 되어 (우리가 아닌) ‘내 사랑’을  조명받게 하는 것 아닌지. 그리하여 ‘내 사랑’이라는 무대에 더 적합한 배우가 나타나면, 눈물 몇 방울로 언제든 배우를 교체 했던 것은 아닌지. 혹은 말 안 듣는 배우를 비난하고 짜증내며 다른 배우로 교체했던 것은 아닌지.      


사랑이 혼자 하는 일이라면, 혹은 베르테르처럼 짝사랑이었다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바디우의 말처럼) 사랑이 둘의 무대라면, 당신을 위해서 내가 사랑했는지, 아니면 내 사랑을 위해서 당신을 사랑했는지 숙고하는 일은 중요하다. 당신이 아닌 내 사랑을 위한 사랑은, 결국 사랑하는 동안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상처를 이미 상처를 한 번 주고 헤어지면서 또 다른) 상처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랑하는 일은 ‘그를 사랑’할 때 진실성이 담기는 것이지 ‘내 사랑’을 사랑할 때 담기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서 사랑하는가, 아니면 나는 ‘사랑’을 사랑해서 너를 사랑하는가.




누군가와 헤어지면, 우리는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운가. 혹시 우리는 사랑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은 아닌가.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사랑을 사랑해서 나를 사랑한 것이라면, 나는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괴운로 것이 아니다. 실은 사랑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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