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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바다 Feb 01. 2016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는 일

나는 떠날 뿐이고, 내 곁에 당신이 있을 뿐이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인이 사랑하는 사태를 ‘사랑에 빠진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사랑에 있어서는(특히 사랑을 시작하는 처음에는) ‘수동성’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 문득 (별로 관심 없던) 그녀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변비로 고생하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미친 듯이 사랑하는) 그를 사랑하지 않기로 결단한다고 사랑의 감정이 증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마음을 가져보자고  다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사태는 능동적으로 조절하거나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마치 어떤 질병처럼(오늘부터 아프지  말아야지,라고 마음먹는다고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듯)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사태는 애초에 수동적인 무엇이다.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에서 경찰 223(금성무)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헤어진 옛 애인을 기다린다. 자신의 생일이자 옛 애인과 헤어진 지 딱 한 달이 되는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던 그가 한 달 동안 그녀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녀를 잊기로 마음먹는 일이나, 술집으로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역설적으로 사랑은 그렇게 다짐한 대로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흐르는 강물에 떠밀려 내려가는 사람처럼, 사랑에 빠진 자는 허우적거린다. 허우적거림은 사랑의 몸짓이다. 의도대로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듯이 의도대로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매혹에서 나는 당신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 세계는 내가 살던 세계와 다르다. 낯선 여행지처럼 당신이 본 것과 당신이 말하는 것과 당신이  맛본 것들은 아직 나는 체험해보지 못했고 감각해보지 못했다. 당신을 만나면서 비로소 제대로 경험해보고 그것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가기 시작한다. 사랑은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사람이 동일한 물리적 시공간에서 산다고 모두가 같은 세계에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사는 일은 자신이 감각하고 경험하는 일의 총합이다. 자신이 (직접이든 간접이든)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그리고 감각하지 못한 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아직 내가 만나(살아)보지 못한 세계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녀를 만남으로써 내가 살아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만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는 바흐에 대해 아는(경험하는) 것은 감각적으로, 인식적으로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일이며, 그녀가 믿는 신을 내가 믿는 일도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사는 일이다. 그가 활동하는 구호단체에 내가 함께 참여하는 것도 물론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며,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스킨스쿠버를 경험하는 일은 감각적, 인식적으로는 물론이고 물리적으로도 (바닷속이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사는 일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다른 세상에 빠지는 일이다. 그를 사랑하기에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손으로 사물을 만져보고 그의 귀로 음악을 들어본다. 물론 나는 그가 될 수 없다.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좋아하고 그가 경험하는 것들을 나도 감각하고 경험하고 싶은 것일 뿐. 하지만 완전히 내가 그가 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그와 내가 다른 존재일지라도 이런 것들이 전혀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될 수 없을지라도 나는 조금씩 변해가기 때문이다. 내가 지켜왔던 익숙한 세상에서 조금씩 물러나 혹은 나아가 다른 세상을 조우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렇게 기존에 내가 살던 세상에서 나를 벗어나게 한다.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감각하게 한다. 만약 누군가를 만났지만 내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진정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그녀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 그녀가 준 편지, 선물 등. 만약 그녀와 함께 살았다면 지워야 할 흔적과 사물은 더 많아질 테다. 아무리 그녀의 흔적이 많아도 우리는 정리하고 치운다. 그래야 그녀를 잊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그녀가 좋아했던 것이나 즐겼던 것들을 멀리 해보기도 한다.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던 바흐는 이제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던 러시아 문학 따위는 관심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그토록 자주 갔던 미술관 따위는 더이상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사태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사태에서  빠져나오는 것 또한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세상에서 나는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점원 페이(왕정문)가 경찰 663(양조위) 방에 몰래 들어가서 청소를 하고 인형을 가져다 놓는 일은, 단지 그가 사귀던 여인의 흔적을 지우는 것만이 아니다. 그와 그녀가 만든 세계를 지우고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떠나간 사랑을 잊을 수만 있다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녀처럼 옛사랑을 지우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난 것은 사랑하는(했던) 사람이지, 그녀가 내게 남겨 놓고 간 세상까지 떠나보낼 필요는 없다. 그녀가 떠났어도 내게 남겨진 세상은 이미 나를 바꾼 내 세상이기 때문이고 이제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미 내 감각과 경험에, 말하자면 내 신체에 파고들어 내 일부가 된 세계는 어느 부족의 문신처럼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이미 내가 된 당신의 세계, 이미 내 감각과 사유와 경험이 된 당신의 세계는 이미 나의 세계다. 그래서 언젠가 당신과 당신의 사랑은 잊을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바흐를 좋아하고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고 종종 미술관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 세계가 나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사랑의 자양분이 된다. 당신과 당신의 사랑은 내게 없어도 당신이 남겨준 세계는 다른 사랑의 씨앗이 되고,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새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는 일이다. 진정한 사랑은, 내 삶을 떠나 당신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 나는 이 여행을 위해 배낭을 꾸리고 캐리어를 끌고 나선다. 이 여행이 실패할지 성공할지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떠날 뿐이고 지금 내 곁에 당신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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