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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바다 Dec 04. 2015

사랑‘하는’ 용기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에 성공한다는 것의 의미

일상 언어에서 난무하는 ‘사랑해’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명사와 ‘하다’라는 동사 활용형 '하여'를 결합해서 하나의 형태로 굳어진 말이 되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명사에 '받다'라는 동사의 활용형 '받아'를 활용해 결합한 말은 없다. 그러니깐, ‘사랑’이라는 단어는 수동적으로 어떤 것을 받는다는 의미로 활용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어떤 행동을 한다는 의미로 활용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해’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막상 사랑‘하는’ 사람이 꼭 많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은 힘들다. 그래서 아예 사랑을 하지 않거나, 외면하거나, 귀찮게 여기거나, 우습게 생각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소비해 버리고 만다.    


사랑은 두려운 무엇이다. 사랑은 대개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낸다. 사랑하고 상처받아 보지 않은 사람 어디 있던가. 그래서 영민한 요즘 사람들은 적당히 사랑 ‘받기’는 원하지만, 격렬히 사랑‘하기’는 원치 않는다. 사랑‘하는’ 것은 어떤 실천과 행동, 그리고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다리가 불편한, 그래서 항상 할머니가 모는 유모차를 타고 살아야 했던 조제. 그녀는 (다리 없는) 물고기처럼  심해 같은 방바닥에서 매일  웅크리고 있거나 기어 다녔다. 그런 그녀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성격 좋고 건강한 츠네오를 만나면서 어둡고 추운 심해에서 나오게 된다. 조제와 츠네오는 동물원에 놀러 가고 바다에도 여행 간다. 하지만 츠네오가 조제를 사랑한 건 아니었다. 조제에 대한 츠네오의 감정은 호기심, 관심, 혹은 동정, 연민으로 불릴 수 있는 감정이었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어떤 사랑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리 없는) 물고기처럼 어둡고 추운 심해에서 헤엄치는 조제.


조제는 달랐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꼭 정면으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저 그런 사랑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서운 세상(호랑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만큼의 결단과 용기를 갖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들은 헤어졌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었던 츠네오는 조제를 떠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던 츠네오는 조제를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아니라) 그는 사랑에 실패했다.


하지만 조제는 성공했다. 헤어졌기 때문에 사랑에 실패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 연인의 만남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결혼이 반드시 사랑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듯, 헤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에 실패하는 것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조제는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용기 있게 사랑했다. 다시 차갑고 외로운 심해에서 (다리 없는 조개처럼) 데굴데굴 구를지라도 그녀는 잠시 뭍으로 올라왔고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에 성공했다.     


무서운 세상(호랑이)을 마주하는 것과 사랑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




그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하나. 용기 있게 사랑하기. 결단이 필요하고 때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말로만 중얼거리며 쉽게 내던지고 쉽게 회수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면, 용기 있게 사랑하기. 다시 데굴데굴 구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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