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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Aug 01. 2023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꾸나요?

등산 생활체육인이자, 알레 운영자 '웬리'

 우리나라는 '생활 체육 강국'이 될 수 있다. 각 도시마다 있는 아름다운 산과 작게 펼쳐지는 둘레길. 지구의 수많은 대도시 중 서울의 북한산처럼 대도시에 큰 산이 자리 잡은 곳은 드물다고 한다. 한국은 어느 도시, 작은 동네마저도 산으로 둘러싸여 있거나 제주 올레길, 강원도 바우길이나 운탄고도 길처럼 트레킹 인프라가 잘 정비 돼 있다. 여러 산길은 한국의 고유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느끼고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준비물은 물과 운동화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한국에 산다는 건 운동 금수저를 물고 있는 거라 자부한다. 근데 등산 준비를 할 때마다 차려진 밥상을 떠먹게 수저질을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 싶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등산 취미은 대물림 됐지만, 등산인의 문화가 발전하고 지혜(정보)가 쌓이지는 못했다. 등산 초보시절부터 능력이 꽤 쌓였을 때까지도 신기했다. 도대체 등산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이 계절엔 어느 산코스를 가면 좋을지, 지방의 국립공원을 가려면 어떻게 해할지, 이 아름다운 산을 보존하고 함께 즐기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궁금한 정보들은 등력이 쌓여도 '이게 맞나?' 생각하며 손품 팔아 파편된 정보를 학습하거나, 산에서 만난 어른들 보면서 눈치껏 배웠다. 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앞으로의 산과 즐길 수 있도록 해준 스타트업 '알레(@alle_app)'의 웬리를 인터뷰했다.

등산인이자 알레 운영자 웬리, 뒷모습이지만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상상이 간다 @wenley2590

- 웬리는 수많은 운동 중 왜 '등산'을 좋아했나요?

등산 말고도 다른 운동도 많이 했어요. 슬램덩크 세대로서, 20대 때 농구를 시작으로 나름 생활체육인 라이프를 하고 있답니다. 30대에는 사회인 야구를, 코로나 전까지는 배드민턴을 쳤어요. 주로 단체 운동을 즐겨하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운동을 뭘 해야 하나 할 때, 가족과 전라북도 무주의 어사 둘레길에 산책을 갔어요. 계곡물이 흐르고, 풀냄새가 피어나는데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걸으면서 '와 풍경 좀 봐', '물소리 정말 좋다'처럼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데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 그 경험을 시작으로 산을 가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가족과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 역시 한국인은 등산이군요(ㅋㅋ) 등산하니깐 어땠어요?

새로운 것 두 가지를 발견했어요. 우선 등산을 즐기는 연령대가 어리다는 거였어요. 왠지 산에 가면 형님과 누님들이 막걸리를 드시고 있을 거 같았는데, 젊은 2030 세대가 대부분인 거예요. 아직도 처음 청계산을 간 날이 기억나요. 주말 아침 8시, 신분당선 지하철 노선에 젊은 사람들로 꽉꽉 차서 청계산 입구역에서 우르르 내리는데, 되게 신기했어요. 젊은 친구들이 왜 이렇게 등산을 좋아하는지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등산 수요가 많고 나름 역사가 오래된 취미임에도 불구하고 산마다의 코스나 특징, 이동수단이 정리된 오픈 소스 페이지가 없다는 게 불편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정보를 못 찾는거라 생각했어요. 새로운 산을 갈 때마다 손품을 오래 팔았어요. 그나마 정리된 정보도 '등산 카페'에 가입해야 얻을 수 있는 게 많았고요. 게다가 아이가 있어서 코스 별, 난이도나 소요시간이 중요한데 한눈에 알 수 있게 정리된 페이지가 없더라고요. 답답하던 찰나, 예전에 함께 일한 동료 '다니엘(@fclotho)'이  등산에 빠져 살던 게 기억나서 전화로 '이게 맞아?'라고 물었어요.

@wenley2590

- 공동 창업가인 다니엘과는 어떤 인연인가요?

함께 일하긴 했지만, 그때는 서로 공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진 사이예요. 그때도 다니엘은 SNS에 산에 갔다 온 걸 매주 올렸는데 별생각 없었어요. 여하튼 산을 잘 다니고 싶어서 '요즘 산 다니는데 정보를 얻기가 너무 어렵다. 내가 못 찾는 거냐, 등산문화는 원래 이런 거냐'라고 물어봤죠. 원래 이렇대요. 그래서 산 정보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편리하고 유용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번 그걸 비즈니스화하고 싶더라고요. 마침 다니엘도 '안내산악회'에 등산 버스 예약을 카페 댓글로 하고 여유롭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교통수단' 사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둘이 딱 시기가 맞았던 거죠. 그래서 '알레'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 잘 다니던 회사를 두고, 갑자기 인생이 산으로 갔네요. 확신이 있었나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꽤 오래전부터 '여행'관련 스타트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이야말로 어른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취미라 생각하거든요. 모든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실행하는 것, 여행 중 돌발상황이나 계획이 틀어졌을 때의 책임을 스스로 지는 것. 멋진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취미잖아요. 근데 여행을 떠나려고 해도 정보가 있어야지 선택하고 실행하잖아요. 그래서 이전부터 이를 위한 정보나 인프라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등산'을 해보니깐 이게 하나의 여행인 거예요. 그래서 등산 사업을 구체적으로 생각했죠.


 실제 사업성이 있는지 빠르게 테스트해봤는데 승산이 있을 거 같았어요. 스타트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아이디어를 작게라도 시장에 빠르게 테스트하는 걸 추천해요. 등산 버스 예약 테스트 웹페이지를 만들어서 광고를 돌려서 도달률과 클릭률을 분석했어요. 광고로 10% 정도가 사이트 유입하고 1%가 예약하기 버튼을 클릭해도 사업의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8%가 광고로 넘어오고, 3.8%가 예약하기 버튼을 눌렀어요. 이 테스트 결과를 보고 오랜 회사생활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알레 사업을 시작했어요.

@wenley2590

- 일단 아이템을 잘 잡았는데 또 스타트업의 생존은 다른 문제잖아요. 요즘은 '고객의 목소리(VOC)'에 집중하는 게 트렌드인데, 알레도 고객 목소리 덕좀 봤나요?

그럼요. 알레는 이용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서비스가 세심해지고 이용자 친화적으로 발전했어요. 알레 이용자는 적극적으로 후기와 피드백을 전달하는데요. 버스 한 대에 27명 정도 타면 10건 이상 VOC가 들어와요. 저희 서비스의 '하산 알림' 서비스가 대표적인 이용자의 아이디어예요. 산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적어도 언제쯤 하산을 해야지 출발 버스를 놓치지 않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 있잖아요. 하산해야 할 최후의 타이밍에 '이제는 정상에서 내려와야 제때 버스를 탈 수 있어요'라고 카톡 알림으로 보내주는 서비스예요. 이거 덕분에 이용자가 산행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산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다 내려와요. 이용자의 칭찬을 많이 받은 서비스예요.


최근에는 '알레 열쇠고리'로 '알레 버스 이용자'인걸 표시하는 굿즈를 개발했는데요. 이것도 이용자 아이디어예요. 등산을 혼자 하는 이용자도 많은데요. 길이 헷갈리거나, 사진을 찍어달라고 할 때 이 열쇠고리 표시가 큰 역할을 해요. 올라갈 때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친구가 돼서 내려오고 꾸준히 같이 산행을 하는 사례도 많아요.


산행지도 이용자의 의견을 받고 있어요. 올 여름은 민둥산을 매주 가고 있는데요. 민둥산이 여름 산행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예정에 두지 않았어요. 근데 문의가 많이 들어와서 교통편을 만들었어요. 앞으로 이용자가 원하는 산행지를 좀 더 쉽게 제안할 수 있도록 '가고 싶은 산 투표' 기능을 만들 예정이에요!


알레에 탑승하면 '알레 이용자'임을 알 수 있는 열쇠고리를 선물한다

- 한때, 스타트업 마케터로서 궁금합니다. 초기 스타트업이 꾸준히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서 광고/마케팅비 얼마면 되나요?

 저희 돈 없어서 마케팅이랑 광고 못했어요. 그래서 인스타 열심히 했어요. 1년 차 때까지만 해도 저희가 웰컴 키트에 손 편지를 써서 드렸어요. 근데 이게 저희 타깃/ 이용자의 감동 포인트였고, 후기들이 인스타 바이럴이 정말 많이 돼서 홍보/마케팅 효과를 봤어요. 사실 저희는 당시 진심을 담아서 감사 표현하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래서 웰컴 키트에 손글씨를 쓴 거거든요. 그때 진심을 담아서 한 일이 우연찮게 큰 마케팅 효과가 돼서 돌아왔어요. 지금은 이용자가 정말 늘어서 손글씨가 아니라 프린트지만요.


쿠폰이나 할인,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할 여력도 없었고,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얼마 전에 앱을 론칭했어요. 이제야 좀 서비스 구색을 갖춘 거 같지만 사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보강해야 할 기능이 많아요. 아무리 마케팅을 해 이용자를 늘려봤자, 내실 없는 서비스라면 바로 이탈하고 다시 돌아오게 하는 건 더 큰 비용이 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서비스 초기 당시의 웰컴키트. 지금은 손 편지가 없을 뿐, 계절에 알맞게 소소한 웰컴키트가 제공된다 @santa_chu_chu

- 알레의 핵심은 버스예요. 항상 버스 기사님들이 다정하고, 운전 고수셔요. 이 버스기사님들 어떻게 구했나요?

VOC 항목 중에서도 버스기사 피드백과 평가가 제일 활발해요. 처음 저희 서비스 운행하시는 분들도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버스기사님 서비스/ 매뉴얼 가이드'를 드려요. 이용자 분들의 정보와 타임라인, 특이사항과 지켜야 할 점을 잘 정리해, 미리 숙지할 수 있도록 해요. VOC에 '친절하시지만 약간 좀 운전이 과격하다', '출발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피드백이 오면 기사님한테 말씀드려요. 여러 번의 운행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분들과 계속 관계를 맺고 있어요.


버스 기사들도 알레와 계속 일하고 싶어 해요. 당연한 거지만 기사님을 존중하고 의견도 적극반영하려고 해요. 버스기사님들이 저희 서비스의 최대 장점으로 꼽은 게 약속한 일정대로 진행된다는 거였요. 저희는 정시출발을 지켜요(딱 2분까지 더 기다려준다. 그 이후엔 얄짤 없다). 다른 국내 여행사들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해요. '누가 좀 늦는데 거의 다 왔다니 기다려달라', '이것 좀 먹고 가자' 등 버스 운행 시간이 늘어지거나, '지나가는 길인데 좀 내려달라' 등 급작스런 요구도 많다고 해요. 근데 저희는 기사님과 사전 논의대로 진행 하고 일정을 지켜요.


이런 서비스 문화를 만든 건 저희 노력도 있지만, 이용자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도 전하고 싶어요. 가끔 제시간에 못 내려와 버스를 못 타는 분들이 있어요. 떠날 시간이 됐는데 안 보이면 초조한 마음으로 전화해서 어디쯤이시냐고 여쭤요. 그럼 오히려 편한 목소리로 '저 제시간에 못 갈 거 같아요. 주변 식당에 짐 좀 맡겨주고 먼저 가셔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산 좀 더 즐기다 갈게요' 말해요. 쏘쿨하죠.


- 알레가 벌써 3년 차예요. 짧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알레를 키우면서 뿌듯할 때가 있나요?

 알레 서비스와 이용자가 같이 성장한 게 느껴질때요. 저희는 이용자가 SNS(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에 올려준 후기글 다 읽어봐요. 사실 이용자 덕분에 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건데, 오히려 '알레 덕분에 이 먼 산에 혼자 다녀왔다', '알레의 촘촘한 가이드가 없었으면 아마 생각조차 못했을 텐데 진짜 가이드 잘 돼있다' 등 저희 서비스를 토대로 등산 경험의 틀을 넓혀 도전하는 했다는 걸 읽으면 감동이죠.


서비스 초기 때는 제비봉-옥순봉, 내변산 등 완만하거나 비교적 쉬운 산행지가 많았어요. 어려운 산은 소백산, 지리산 정도였거든요. 그땐 초보 하이커가 타깃이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서비스를 매주, 매달 이용하면서 등력이 늘었고, 요즘은 설악산 공룡능선 같이 고수 레벨의 산행지도 꾸준히 가요. 서비스 초반에 한 이용자가 '언젠간 설악산 공룡능선 가보고 싶은데, 그런 날이 올까요?'라고 말했거든요. 근데 그분 저희 서비스 1년 내내 이용하더니 최근에 다녀왔어요. 초반에 자주 하산시간 겨우겨우 맞춰 온 이용자가 지금은 서비스를 처음 이용한 초보 하이커에게 도움을 주고 길을 앞장서요. 웬만한 산을 거뜬히 완주하는 걸보면 뿌듯해요.


- 근데 웬리 등산이 왜 좋아요?

등산하면 행복해지니깐요. 등산하기 전엔 아내가 '밥 먹었으니깐 산책 가자' 하면 '왜 그래?(멈칫)'하던 사람이었어요. 또 예민해서 아내가 '아휴-저 까칠이!'라고 불렀어요. 지금은 함께 자연을 걷는 걸 좋아해요. 계절을 담은 풍경을 보고, 소리를 들으면서 상대에게 잘못했던 것을 고백하거나, 불만이나 서운한 것들 솔직하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반대로 저도 누군가의 말을 유하게 받아들이고요. 예전엔 이런 대화조차 잘 못했던 거 같은데 자연 속을 같이 걸으면서 대화하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인간은 걷도록 디자인 돼있어요. 저도 등산하면서 알게 됐어요. 걷는 나, 그 주변을 둘러싼 소리, 계절을 담은 향기 등 오감을 즐기다 보면 편해져요. 힘든 산을 오르는 것도 일종의 명상이에요. 일단 오르는 것, 지금의 고통에 집중만 하다 보면 뇌가 맑아져요. 일주일 내내 속이 번잡하다가도 등산 다녀오면 정리돼요.

- 등산과 경영은 서로 닮았나요?

등산은요, 경영뿐만 아니라 인생이랑 똑같아요. 인생은 어떤 일이든 간에 고난의 과정을 겪어야 하잖아요. 등산은 흐리든 맑든 비 오든 눈이 오든 그걸 견디고 목적지까지 가는 거고. 이번 달에 '인천 출발' 서비스를 시작하고 4분기엔 '부산 출발'도 준비하고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지방산행을 즐기고, 저희도 서비스를 확장하기 위한 중요한 분기점이에요. 그래서 떨려요. 근데 이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작년 덕유산 산행이 계속 떠올려요. 전북 무주까지 갔는데, 시작부터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곰탕(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가시거리가 짧은 상태를 뜻하는 등산 은어)이었어요. 날씨도 습하고 우중충 했어요. 지인을 꼬셔서 데려왔는데 애간장이 타더라고요. 그래도 어차피 온 거 정상까지 가기로 했으니깐 2시간 가까이 올라갔거든요. 근데 산 정상에 오르자 마법처럼 두텁고 넓디넓은 운해가 펼쳐졌어요. 그때 쾌감이 엄청났어요. 이번 도전도 예전부터 하고 싶었고, 하기로 한 거니깐 지금 그 길에 집중해서 오르는 거예요. 성공여부는 정상에 가봐야 아는 거니깐 그건 정상에 도착했을 때 판단하려고요.


또 맑은 날만 등산하기 좋은 날이 아니에요. 습하고 안개 낀 날씨에 등산하는 것도 좋아요. 그 특유에 무드와 향이 있거든요. 앞으로 여러 도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저희가 부산, 인천 출발 시도하지만, 성공여부를 떠나서 했으니깐 알게 되는 것이 있을 거예요. 그 과정을 마음껏 만끽할 거예요. 정상에 갔는데 만약에 아니다 싶으면 덕유산은 정상에 케이블카 있거든요. 그거 타고 후딱 내려오면 되죠!

- 알레도 토스나 쿠팡처럼 대박 치는 꿈을 꾸나요? 꿈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요!

당연히 꾸죠(ㅋㅋ). 지금은 하이킹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국내 여행으로 확장해서 전세버스로 여행을 쉽고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요. 사실 평소엔 이런 생각 못해요.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느라. 물론 어느 분기점에 들어서면 고민이 시작이 되겠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에 불안해하거나 기대하지 않아요.


근데 초기 스타트업을 겪는 사람으로서 하나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요. 이 일은 능력보다 운이 엄청 많이 작용해요. 스타트업은 잘 되는 곳 보다 무너지는 곳이 더 많잖아요. 하지만 저희가 좀 버티는 건 구성원의 능력보다는 그냥 운과 타이밍 덕이에요. 5년 전에 이 아이템을 알았더라도, 시작조차 못했을 거 같아요. 다니엘이 저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생각한 것도, 등산이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가 된 것도, 적절한 시기에 투자를 받은 것도 때에 맞게 맞물려서 돌아갔어요. 그래서 내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내 앞에 길을 묵묵히 오르는 거에 집중하는 거일지도요.


나는 큰 환상을 안고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스타트업계에서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이 흔히 들린다. 하지만, 막상 그 속의 일원이 되자 그 말을 자주 의심했다.‘숫자에 집착’하는 일과였기 때문이다.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은 하지 마라’라는 지침아래 많이 불행했다. 엑셀표와 그래프를 보면서 문제를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면서도 중요한 무언가 가 빠져있다고 생각했다. 글의 조회수, 광고 지출 대비 효율을 실시간으로 관리했고, 나의 감정 상태를 점수 매겨서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숫자에 울고 웃는 생활에 ‘이거 왜 이렇게 해야 해요?’라는 질문에 ‘투자자에게 설명을 해야 하니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생각했다.


그 맘 때즈음 알레를 자주 찾았다. 단순히 산이 좋아서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납작하게 말할 수 없다. 스타트업의 환상으로 생각했던 무형의 무엇이 알레에겐 있었으니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진심을 담아서 사과하는 일,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이용자와 함께 등산을 하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일, 불만 접수에 상세한 상황을 설명하고 개선책을 담아 답장한 것. 좋은 상품으로 리텐션(기존의 사용자가 재구매를 하는 것)을 높이는 일이 그렇다. 마케터로서 이벤트, 쿠폰, 할인, 광고를 태우면서 수치를 개선하려고 했던 일들이 변죽을 울리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단단한 복판은 아무리 변죽을 울려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즈니스가 잘 되는데 중요한 건 돈과 안정적인 수치가 아니라 정직하고 진실된 마음이다.


아이를 하나 키우는데,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스타트업을 키우는데, 온 이용자들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알레를 이용하면서 느꼈다. 내가 알레를 낳고 키운 건 아니지만 종종 까꿍놀이 해준 동네 문방구 아줌마 쯤은 된다 생각한다. 아이가 어른을 성장시키는 것처럼, 알레가 나를 바꾸기도 했다. 홀로 낯선 산길을 용감하게 가보는 경험, 전국 방방곡곡의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는 일, 계절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됐다. 무엇보다 간접적으로 좋은 서비스가 무럭무럭 자라는걸 지켜보면서 초기 비즈니스를 하는데 중요한 게 뭔지 나만의 참고서를 얻게 됐다.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꿀까. 한때 그 질문에 시니컬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 세계가 바뀌었으니깐.


[등산 생활체육인 웬리와 알레 정보]

1. 웬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wenley2590/

2. 알레 홈페이지: https://alle.co.kr/mb/

3. 알레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alle_app

4. 공동창업가 다니엘 인터뷰 글: https://brunch.co.kr/@growingcabbage/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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