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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Aug 01. 2023

씨발, 다들 닥쳐주세요

7년 차 마케터의 실패 고백



7년간 글쟁이로 일하면서 정확하게 안 것이 하나 있다. ‘돈을 받고 쓰는 글’과 ‘돈 안 받고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이다. 5년 넘게 콘텐츠 마케팅 일을 하면서 가슴속 ‘도대체 마케팅이라는 게 뭐야?’라는 질문을 품고 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마케팅을 하는 거 같진 않는데, 부서명은 마케팅이고 직함도 마케터니깐 알쏭달쏭했다.


고민이 사치인 듯 어차피 회사엔 쓸 글들이 쌓여있었다. 분명 나는 글 쓰는 게 좋아서 기자도, 마케터도 했는데 커리어가 쌓일수록 글 쓰는 일이 싫어졌다. 동시에 같이 일하는 사람도 자주 싫었다. ‘그냥 대충 써도 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그런 말 하는 동료에게 정말 대충 써줄 뻔했다. ‘브런치나 블로그 글은 잘 쓰는데, 왜 일하면 노잼 되는 거야?’ 네가 검열을 빙자한 피드백을 하는데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이겠니, 그리고 네가 수정하라고 한 대로 쓴 거야. 처음엔 나도 글에 대한 곤조가 있어서 설득하거나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계속되자 지쳤고 고집세서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이란 말을 들었을 땐 ‘그래, 난 작가나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직장인’이지’라며 현실 판단을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똑같이 클라이언트 대표를 인터뷰하고 글을 썼다. 그 글은 정말 어려웠다. 인터뷰이가 한참 뒤에야 약속시간에 나타났으며, 사전질문을 보지 않고 온 데다가, 똑같은 말만 계속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카톡으로 누군가와 계속 연락하고 있었다. 이도저도 안 되는 인터뷰 끝내버리고자 사전조사해 온 것으로 어떻게든 답변을 거의 구걸했고, 여러 미사여구를 붙여서 인터뷰 글을 갈음했다. 그리고 완성된 글을 클라이언트 대표에게 보여줬는데 화를 내면서 ‘너 글 못쓴다고, 없는 말을 지어내면서 글 쓰는 사기꾼이고, 네 회사는 사기 회사’라고 말했다. 근데 나도 담담하게 ‘맞다. 나 글 못쓴다’라고 바로 인정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 일과 다른 여러 일이 섞이면서 퇴사하게 됐다.


퇴사를 하면서 엄청 울었다. 잘려서 슬픈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나한테 몹쓸 짓을 한 게 미안했다. 돈 벌겠다고 꾸역꾸역 글 쓴 게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나에게 글쓰기란 큰 정체성이다. 어렸을 적 유치원 그림일기부터, 어른이 돼서 쓴 토막글 까지도. 문장 하나하나 정성을 담아 다듬었기 때문에 글은 어쩌면 나 자신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자진해서 글을 못쓴다고 덤덤하게 인정하는 처지가 됐을까. 더 슬픈 건, 스트레스받고 야근해가며 글 썼는데 시장에 아주 티끌만큼이라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는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마케터로서 떳떳한지 생각해 보면 모르겠다는 거다. 마케팅이 아니라 무슨 떴다방에 남 것 베끼다가 끝난 경력 같았다. '배달의민족에서 이거 해서 떴으니, 우리도 비슷하게 카피라이팅을 해서 광고를 뿌리자', '요즘 이런 콘텐츠가 좀 있어 보이니깐 레퍼런스 찾아서 우리도 이렇게 쓰자' 그런 지시가 한심하면서도 또 순응했고, 나도 일을 해치우고 싶어서 그런 식으로 자주 일했음을 고백한다.


나는 마케팅이란 ‘시장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배달의 민족이 마케팅을 잘하는 건, 배달 시장을 만들어냈기 때문이고, 토스가 마케팅을 잘하는 건 기존의 수수료와 어려운 주식시장 문제를 해결하는 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살펴 정의를 내리고, 관점을 달리 한 글은 세상을 분명 바꾼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마케팅을 한 적이 없다. 내 글이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언정, 여러 시도라도 해보고 퇴장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기자나 마케터 친구가 ‘왜 그렇게 순진해’라고 콧웃음을 쳤다. 근데 어차피 잘린 마당에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었다. 다 떠나서, 7년 동안 남이 원하는 글만 썼으면 이젠 내 멋대로 해도 되지 않나.


그게 ‘생활 체육인의 대화’의 시작이다. 이 프로젝트를 하는 내내 가난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구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무엇보다 7년여 만에 처음으로 마케팅을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금메달을 따거나, 프로 선수급만 돼야지 체육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매일 꾸준히 소소하게 하는 운동은 바디프로필 체형 만들기, 엄청난 무게의 데드리프트, 화려한 골프 스코어보다 별 볼 일 없는 행위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다. 항상 운동을 곁에 두는 사람들을 보면서 소박하지만 꾸준히 하는 운동은 올림픽 금메달 못지않는 승리라는 걸, 이를 독려하는 생활체육 시장이 커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딱 10개만 쓰고 안 쓸 거야라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잘 끝냈다.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게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2시간 동안 어떤 대가도 없이 이야기해 준 인터뷰이들에게 제일 고맙다. 회사를 다닐 때, 피드백을 빙자한 검열 코멘트, 여러 수정요청, 빠르게 잘 써야 하는 게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이번엔 쓰고 싶은데로 썼고, 모든 원고를 일주일 내내 읽고 또 읽었다. 조회수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고, 질문도 그냥 하고 싶은 거 했다. 인터뷰이에게 컨펌 요청 없이 발행했다. 속이 시원하다.


지난 8개월 내내 가난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살면서 가장 우아한 시간으로 기억될 거다. 내가 믿고 사랑하는 것을 탐구하며 진실된 문장을 썼기에 ‘나는 명백하게 아름답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다른 사람들의 어떤 인정이나 피드백 따윈 필요 없다. 지난가을부터 올여름까지 나는 정말 아름답고 자유로웠다. 살면서 누린 최고의 럭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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