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대지분석 및 조닝-1
제2종 혹은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땅에 지을 수 있는 건물의 최대 규모를 찾는 것이 이 게임의 미션이다. 이 시험은 디자인의 영역보다는 ‘데이터 스케이프’를 파악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다. 건축주의 재산권을 면적 확보로 지켜주고자 하는 취지가 너무 뚜렷해서, 모든 과제들 중에서 제일 현실적인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과제들 중에서 대지조닝 및 분석을 공부하는 과정이 실물 지식으로서 제일 많이 남게 된 것 같다. 규모검토와 주차계획을 연습했던 과정은 실무에서 고스란히 써 먹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험이 현실을 반영해서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이 국가자격시험이 제시하는 비전이랄까, 건강한 건축시장에 대한 메세지도 담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대학교 건축학과 5년간 디자인의 공공성 어쩌고 배워온 나로서는 학교와 현실의 엄청난 간극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설계 스튜디오에서는 매 학기마다 국내 외 여러 건축 사례를 배우고 분석했다. 건축물의 최대 면적 확보가 꼭 최대 투자수익으로 직결되는 것만은 아니며, 도시와 공공에서의 역할을 고려하는 개개인의 훌륭한 디자인은 사업주의 수익성 또한 구원해줄도 수 있다는 결론을, 그 사례들은 함의하고 있었다. 도시에 활짝 열려 적극적으로 쇼핑객들을 유인한다거나, 면적의 일부를 공공의 영역으로 비움으로써 행인의 시선과 동선 유입을 유도함으로써 결국 그 장소가 활성화가 되었다는 멋진 이야기들과 함께.
다시 생각해보니, 건축 기획과 더불어 사업 및 운용 검토 및 전략을 공부할 기회가 학교 교육 과정에 좀 더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수업도 한 두개 있었으니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전반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어차피 취업하면 실컷 접하게 될테니 굳이 학교에서는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디자인에서 맘껏 펼칠 수 있는 상상력을 위축시키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와 비슷한 교육을 받았을 젊은 건축가들 중, 훌륭하게도 그 현실적 제약을 이용하여 유연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작업을 몇 번 접하였다. 어떤 시장과 문화의 생태계가 다채로워지고 건강해지게 만들려는 철학을 교육에 담아야 한다면, 적어도 특정한 요소를 아예 없는 듯이 배척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되지 않을까. 시험이든 학교 수업이든 작은 요소들의 파편으로만 산재되어 있는 것 같다.
다시 현실의 공부로 돌아와서.
첫 번째 시험을 얼마 앞두고 학원 실전 문제를 풀었을 때, 40점 만점인 경우 득점이 30점대 초반 내에서 왔다갔다 했었다. 배경 법규도 다 외운 것 같고 점수도 얼핏 양호한 느낌이 들지만, 뭔가 어디 한구석이 찜찜하고 석연치 않다.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닌 것’이었다. 대체 어디에 잔구멍들이 있는지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속으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 과목을 한꺼번에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잔구멍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결국 1교시는 첫 해에 불합격했는데 유부초밥 까짓 1년 더 싸줄 수 있다는 남편의 위로에 슬픈 마음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뒤 몇 달의 휴식 기간 동안에 나는 1교시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곤 했다. 아무래도 두 번째 해는 그 전략을 달리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전에는 전략이랄 게 없었다.)
1교시와 같이 두 과제가 모두 부진한 경우에는, 나한테 조금이라도 더 자신있는 쪽을 하나 먼저 골라 마스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의 경우, 대지조닝 및 분석을 우선 확실하게 안정권에 진입시키는 것이 더 능률이 높으리라 판단했다. 주변을 보면 배치계획이 약한 사람이 단기간에 그 점수를 올리는 경우는 드물어보였다. 대지조닝 및 분석부터 먼저 점검을 시작하는 동안, 배치계획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긴 호흡으로 여유를 갖고 천천히 풀어나가기로 했다.
대지조닝 및 분석은 수학에 가깝다. 정량적인 답이 정해져있다. 욕망의 솔직함이 면적 합계로 반영된다. 배경 법규를 놓치지 않고, 실수 없이 문제를 풀어가는 훈련만 제대로 거치면 점수는 오르게 되어있다. 일단 숫자가 맞으면 채점위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도 다른 과목보다 현저히 적었다. 요지는, 대지는 만점을 노릴 수 있는 과목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시험은 1교시만 석 달 남짓 준비했었다. 스스로 정비 기간을 잡고 내 허점을 천천히 살펴 볼 여유가 충분했다. 그 기간을 거치고 나니, 이 과목에 대한 느낌이 확연히 달라졌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겼고, 1년 전과 겨우 몇 점 차이지만 도약이라고 할 만한 성과가 보였다. 시험 한 달 전부터는 웬만하면 정답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두 번째 시험 후, 학원에서 공개한 가답안을 확인해보니, 내가 그려낸 답안지와 그림이 완벽하게 같았다. (최종 면적표 작성할 때 합계에서 덧셈 실수를 하는 바람에 점수가 크게 깎였지만.)
스스로 했던 정비 작업이라는 것은 별 특별한 것은 없고, 오히려 단순 작업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전체적으로 여기저기 흠결이 있는 부분을 살펴보고, 메꿀 수 있는 것들은 보수해 나가는 것이다. 그 기간에 했던 것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태까지 푼 문제들을 유형별로 정리한다.
법규는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숙지한다.
학원에서 권고하는 시간보다 빠르게 푸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