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대지분석 및 조닝-2
여태까지 풀은 문제가 상당량 쌓이게 되자, 나는 유형화 작업에 착수했다. 15년치의 기출문제와 학원에서 2년 동안 나눠준 문제들을 모아보니 47문제가 되었다. 처음에 시작할 땐 앞서 1년치 쌓인 30여 개의 문제를 한 번에 분류했고, 나머지는 시험 전날까지 틈틈히 정리한 것이다. 시험 문제의 유형은 총 8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는데, 색깔을 정해서 오답노트 페이지마다 해당 유형 색깔의 작은 포스트잇을 귀퉁이에 붙여줬다. 아래는 그 8가지의 분류인데, 그간 3년간 창조적으로 추가된 유형이 없다면 그대로 참고하여도 무방할 듯하다.
A. 사선 유형: 2011, 2013년도
B. 2개동 계획 유형: 2012년도
C. 투상도 계획 유형: 2014년도
D. 주차계획 복합유형: 2015년도
E. 공동주택 세대 수 구하기: 2010년도
F. 벽면 지정 유형: 2016년도
G. 지표면 산정 유형
H. 대지분할 유형
기타. 공동주택 별도 표시: 2010, 2014, 2015년도 (위 유형의 포스트잇을 가로로 붙였다면 이 유형은 세로로 붙여서 별도 표시)
분류 작업 자체는 대단할 것이 없다. 오답노트의 목차를 보기 좋게 정리한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이 작업은 이렇게 분류된 문제들끼리 모아서 풀고 다 같이 분석해야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유형화 작업은 나무에 달린 가지 하나하나를 숙지하는 작업이다. 어느 한 유형 가지에 달린 문제 이파리들을 살펴보면, 이파리마다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배경 법규와 이론을 파악할 수 있다. 동시에 문제마다 세세하게 조금씩의 차이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유형이더라도 출제 위원들이 어느 범위에서 변주를 줄 수 있는지 기술적으로 예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제 유형별로 접근 방법을 파악하고 스스로 네비게이션을 장착할 수 있게 된다.
사선 유형이나 벽면 지정 유형 등은 단순 실수를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만점도 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면에 2015년도 기출 문제 같은 주차계획 복합유형은 풀 때마다 참 어렵다. 공동주택 기준의 법규를 제대로 인지해서 적용해야 하고, 지문 조건들도 제대로 충족해야 하는데, 주차문제까지 혼재되어 있으니 차분히 풀어나가기가 어려웠다. 건물의 1층 최대 면적은 주차계획에 따라 좌우되는데, 주어진 시간 내 최적의 해를 집요하게 찾아 나가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실전 때 두뇌 회전에 도움이 될까하여, 문제 조건 별로 주차 대안을 정리하여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다이어그램으로 그렸다. 도식화를 거치니 대안을 도출하는 시뮬레이션 하는 효과도 있었다. 모든 유형 가지는 그 한 주간의 테마로 잡고 돌아가며 그 유형의 문제만 몰아 풀었는데, (스케줄 수첩에 ‘이번 주는 OO유형 정복하기!’라는 유치한 문구를 적고) 주차계획 복합유형은 다른 유형보다 몇 번은 더 반복해서 공부했다.
대지 과목을 공부하는데 있어 숙지해야 하는 모든 법규는 직접 필기하며 정리했다. 한 눈에 쉽게 훑어볼 요량으로 A4 크기 빈 종이 몇 장에 모두 정리했는데, 이것만 하루 종일 붙잡고 작업하니 3-4일 이내로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리한 내용은 오답노트에 앞면에 붙여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틈틈히 보았다. 학원에서 해마다 나눠주는 이론 및 법규 요약지는 잘 갖고 있다가 필기 정리할 때 유용하게 참고만 했다. 이전에 어느 분께서 건축기사 시험 내용을 예쁜 손글씨로 노트에 잘 정리했는데 이를 일부 스캔하여 SNS에 공유한 걸 보았다. 댓글이 많이 달려 살펴보니, 본인 메일로 그 노트 전체 스캔 이미지 파일을 전송 부탁한다는 요청이 가득했다. 남이 잘 정리한 노트는 마음에 안정을 주는 역할을 하나보다. 그러나 단지 그 뿐일 것이다. 대학교 법규 과목 이수할 때, 건축기사 공부할 때 법규를 아무리 달달 외워도 시험이 끝나면 바로 까먹게 된다. 건축법 제119조를 항목별로 눈이 빠지도록 읽어도 내가 직접 정리한 것만 못하고, 노트필기를 아무리 잘 해도 허가도면의 면적 계산표를 직접 작성하면서 고민하는 것만큼 그 학습효과가 떨어지듯 말이다. 법규 정리 작업은 꼭 시험 전에 한 번쯤 직접 정리해 볼 것을 권한다. 심지어 미루고 미루다 시험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K학원은 배치계획보다 대지조닝 및 분석을 먼저 완료하는 것을 권했다. 배치계획은 실전에서 예상치 못하게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으니, 대지를 먼저 끝내서 남은 배치 풀 시간을 확보하라는 방향일 것이다. 그리고 대지조닝 및 분석 1시간 10분에서 늦어도 20분 안에 마무리 하는 것을 권장했다. 유형화 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되자, 나는 학원에서 권장한 시간보다 더 짧게 끝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최소 50분에서 늦어도 1시간 안에 끝내는 것이 목표였다. 세부 시간을 나눠보면 지문 숙독 5분, 트레이싱 지에 25~30분 내 풀이, 그리고 20분 동안 작도를 해야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배치계획에서는 가능하면 성의있고 괜찮아 보이게 답안지를 완성하고자 했다. 반면에 대지조닝 및 분석에선 작도 퀄리티 욕심을 좀 내려놓았는데, 차라리 거기서 쓸 시간을 배치 작도에 투자하는 것이 더 효능적일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대지 답안지에 꼭 써야하는 채점 포인트들을 빼먹었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아주 필요한 경우가 아닌데 샤프를 바꿔 써가며 더 표현하려 한다던가, 해치를 성의있게 한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나는 건물 해치를 프리핸드로 빠르게 그리는 연습을 따로 했다. 물론 삼각자를 대고 성의 있게 그린 것보다는 비주얼이 떨어지지만, 시간을 훨씬 더 단축할 수 있었다. 설마 조금 못생겼다고 점수를 깎지는 않겠지. 야박하게.
항상 배치계획에서 시간이 간당간당하고 모자르다면, 이렇게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다만 실전에서는 평소처럼 빨리 풀 수 있다 하더라도, 더 여유를 갖고 약간의 검토 시간을 추가로 포함하면 좋겠다. 만약 내가 그 때 10분을 더 써서 면적 계산을 한 번만 더 검토했더라면, 큰 감점 없이 40점 만점을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그 수 많은 채점 요소 중 총면적 합계 숫자 하나 틀렸다고 4.5점을 깎는 건 너무하다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실무에서 그런 실수를 하면 상사한테 등짝을 두들겨 맞아야 하는 정도의 일이니,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스스로 이런 큰 방향을 정해놓고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니, 언젠가부터 이 과목에서 만점이라는 목표가 그리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학원 문제를 풀면 만점이 자주 나왔다.) 대학교 때 학점 관리도 안(못) 했던 내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매달리다니, 내가 지금 하는 것처럼 그 때 좀 꼼꼼하게 공부했으면 교수님들께서 씨를 뿌리고 비를 내리진 않았을텐데, 하는 회한도 밀려오지만 그건 잠시 잊어보기로 했다. 아무튼 만점을 받겠다는 마음으로 임하자. 그래도 되는 과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