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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재 Oct 30. 2022

시험의 끝이 지나면

4.0 에필로그-2

여느처럼 집 앞 까페에서 타이핑을 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이 시리즈를 기획하고 자처해서 쓰고 있는가. 그저 합격 수기라는 걸 써보고 싶었던 것일까? 이렇게 공부하라, 저렇게 살지마라 잔소리하면서 남들에게 모처럼 갑질할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일까. 인생에 얼마 없었던 고도의 노력 후 성취감에 도취되어, 그 보상 심리로 아주 정성들인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시험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 수기를 읽는 독자층은 매우 적을 지는 몰라도 수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들 블로그 같은 곳에 있는 힘껏 자랑하면, 남들도 많이 알아봐 주지 않을까. 근본적으로 그런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간장종지 같은 내 영혼이 참 보잘 것 없이 부끄럽다.



대체 왜 공을 들여 이 글을 쓰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재밌게도 ‘나라는 사람은 당췌 왜 이 모양인가’라는 자아 탐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2022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쓴 박해영 작가가 그 해에 했던 인터뷰를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중 어느 대목이 떠오른다.

 “이전에는 나의 특별함을 증명하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이었다면, 그게 지옥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목적으로 놓고 글을 쓴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제가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고작 글쓰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작가의 성찰은 내 직업인 건축 활동을 포함한 기타 모든 창조적인 작업에 임하는 마음가짐, 가치, 목적 의식과 깊게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내가 즐겨하는 작문, 드로잉, 피아노 연주, 건축 활동은 (정도와 시기의 차이일 뿐) 모두 타인과의 연결을 위한 작업이다. 시작은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조용히 하더라도, 그 완결물은 타인을 만나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은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 짓기를 원하는가. 어떤 방식의 연대를 꿈 꿀 수 있는가.



대학 입시를 준비했던 시절 서울대학교 합격 수기를 읽는 것을 굉장히 즐겨했다. 나도 꼭 서울대학교에 들어가 저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오히려 반대로 '수기를 쓰기 위해서' 꼭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다. 공부를 하다가 힘이 들면, 나보다 형편이 좋지 못한 후배들에게 강연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스러진 전투 의지를 다시 세우곤 했다. 굴지에도 힘을 다 해 공부했다는 다른 이의 얘기를 접하게 되면 나 또한 저절로 불이 지펴졌다. 물론, 거기서 얻는 에너지는 며칠을 가지는 못하기에 수시로 땔감을 찾아야만 했다. 공부하기 싫을 때 읽는 글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그건 지금이나 그 때나 똑같다.



그러니까 나는 촌스럽게도, 누군가와 연대할 수 있는 땔감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방과 후 자발적으로 스터디 그룹을 모집하여 여러 친구들과 이 길을 함께하면서 또 이끌어주려 했던 기억이라던가, 대학교 시절 과외했던 학생들에게 (정작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공부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설파하고자 했던 바보 같았던 시도들을 떠올리면 그런 확신이 좀 더 분명해진다. 어디에선가 얻은 것들을 다른 형태로 다시 기여하려고 하는 욕망이 원래 오래전부터 내재되어 있었는가 보다. 반면, 그와 동시에 내 자신이 특별한 땔감이라는 믿음과 환상, 남들한테 칭찬과 인정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 욕망을 실현하려 들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연대감을 상실하여 자의식만 넘치는 세상에 도래했던 지옥의 시간을, 이미 역사로 알고 있으니.   



내가 좆밥임을 아는 것. 더러운 단어에 표현도 다소 자학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내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미물임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또한 현실의 나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수치심을 인지하고 내 자의식란 건 결코 혼자 특별하고 소중한 무언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학원 첫 수업 때 선 긋기를 하면서 괜시리 밀려왔던 부끄러움과 자격증을 딴 후에도 여전히 보잘 것 없는 자신에 대한 한 없는 부끄러움을 생각한다. 건축을 하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기만 한 이 감정에서 나는 언제쯤 해방될 수 있을까? 내 소중한 자존심을 방어하는 오만의 껍질을 과연 언젠가 깨고 나와 허물 없는 미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을 알고 사람을 이해하며 세상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미물로.





건축인들과 건축사 자격시험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면 거의 대부분은 다짜고짜 욕을 하게 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육아 휴직 중 아이를 돌보다가 문득 시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한 편으로 갸우뚱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이 지겨운 공부 얘기를 왜 또 하려는 거지, 미처 다 하지 못한 욕을 마저 공개적으로 하고 싶은 건가?' 하고 생각했다. 혹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아직도 회한이 남은 건가 싶었다. 그만큼 건축사 자격시험을 준비했던 과정은 정말 괴로웠다. 특히 첫 번째 시험을 본 후, 실패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 잡으려 노력하면서도 이 짓을 1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의 그 좌절스러움은 아주 말도 못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그 때를 다시 돌이켜보니, 그 괴로운 와중에도 분명히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소소한 배움의 기쁨, 손도면을 그리는 동안 찾아왔던 평안과 안온함, 분명 어느 구석은 아주 조금씩 발전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의 희열도 있었다. 또 학교 선배들과 연대했던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은 지금까지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건축사 자격시험도 결국엔 내가 사랑하는 건축의 어느 한 연장선상일 뿐이고, 단지 더 자유롭게 내 일을 사랑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기꺼이 힘내서 감수하리라는 의지가 다시 불타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수험생활 일상 속에서의 꿈과 유희를 나만의 언어로 기록하고자 했음을, 그 언어들을 묶어 내 마음에 나무 한 그루를 심고자 했음을, 이 글을 쓰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  



건축사 자격시험이 변했으면 좋겠다. 도면 수작업에서 컴퓨터 작성으로 바꾸는 그 이상의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바쁜 일상과 생업을 뒤로 하고 자격시험에 매달리는 건축인들이 좀 더 즐겁게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연히 어떤 건축가의 작품집을 꺼내 보다가 저도 모르게 뭉클해지거나 감동이 벅차 올랐던 순간처럼, 건축을 업으로 선택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이 시험이 선사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힘든 수험 끝에 더 성장한 건축인이 되어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시험이 되면 좋겠다. 현실과 교육의 괴리에서 더 나은 비전을 던질 수 있는 시험이 되면 좋겠다. 평생의 업으로 건축을 선택한 것이 꼭 나쁘지는 않았다는 위안과, 우리는 더 선진화 된 방향으로 계속해서 항해 중이라는 메세지를 아주 가끔은 전해줄 수 있는 시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건축사 자격시험에 대한 글을 마무리 한다. 언젠가는 내 본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길 스스로 무척 고대하는 중이다. 앞으로도 아마 영리하게 요령 부리는 삶을 살지는 못하겠지만,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탐색하며 지금을 미련하게 사랑해 나가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매일을 유희하시길 기원한다.  




무거운 작도도구 대신, 서랍에 넣어놨던 그림도구를 다시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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