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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재 Oct 30. 2022

혼돈으로 빠지는 4와 6사이 승강장

3.2 구조계획-1

“엥? 나는 중심선만 그리고 나왔는데 4점 주던데.”



같이 스터디를 했었던 주연 언니가  구조설계 점수를 듣고 놀라며 말했다. 언니는 공부와 생업을 병행했기 때문에   3교시를 거의 준비하지 못했다. 표현이 다소 자조적이어서 그렇지 언니가 실제로 중심선만 그렸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준비를 열심히 했던 말던 상관없이 2018 구조설계는 모두에게 정말 당혹스러운 문제였던 것은 분명하다. 구조설계 문제에서 뜬금없이 주차계획을 하라는 것도 놀라웠는데, 삐뚤빼뚤 요상하게 생긴 비정형적인 대지 경계선도 답안지에 정확히 따라 그려야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조와 별로 상관이 없는 1 답안을 작성하느라 제한 시간의 반을 쏟았었다. 그리고 갸웃거리면서 배근까지  채워 가며 2 구조 평면도를 겨우 시간에 맞춰 작성했는데, 나중에 학원 답안과 비교해보니 2층은 오답을  성실하게 그려내서 제출한 셈이 되었다. 그래도 1 평면도는 맞았고 전체적으로 완성을 해서 냈으니 10점은 넘을  알았다. 대체 나는  6점을 받았던 것일까. 4점과 6 사이에 대체 내가 모르는 어떤 심오하고 광활한 우주가 있었던 것일까.



들인 노력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은 살다보면 늘상 겪게 되는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질적인 무대공포증이 있어(이상하게도 내 주변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제일 빛을 발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진땀을 빼고는 했다. 신경을  쓰고 대충 요령있게 준비한 것들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  커리어가 달린 일과 같이 가치를 두고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것들에는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일정 시간 동안 고도의 정성과 노력을 들이게 되는데,  끝에 선보여야 하는 제일 중요한 평가 자리에서는 우황청심환   날름 통째로 먹고도  여지없이 바들바들 떨고는 했다. 무대  두려움에 스텝이 꼬이고 수습도   돼서 그간의 수고가 무색하게도 도미노처럼 주체할  없이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실패는 다른  어떤 종류의 실패보다 쓰라렸는데,  번이라도 겪게 되면 자기 혐오에 빠져버려서 다시 헤어나오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완전히  반대의 에피소드도 인생에서   있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인데, 대학교를 다닐 때는 내심 이런 행운이 기말마다 찾아오길 바라곤 했다. 건축학과 설계 수업에는  학기마다 중요한 발표회인 중간 크리틱과 최종 크리틱이 있. 크리틱의 시간에는 그간 각자의 설계 내용에 대해 피피티 혹은 판넬과 모형을 만들어 모두 앞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교수들과 초청된 외부 강사들이 평가를 한다. 3학년 1학기는 설계가 힘들게 느껴졌던 학기였다. 도대체 설계란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어서 속으로 고민이 많았었다. 그렇게 수업 초반부터 갈피를  잡고  달을 내리 헤매고 있었는데 중간 크리틱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결국, 나도 처음 보고 담당 교수님도 처음 보는 모형을 들고 발표 자리에 짜잔 등장해버렸다.



다른 친구들은 두 달 동안 자신만의 생각을 차곡차곡 형태와 공간으로 구현하고 있었는데, 일주일만에 들고 온 설계안에 뭐 어떤 대단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겠는가. 형태는 그럴듯 해 보였지만 내부는 전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미술관이 설계 주제였는데, 동선도 엉망일 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 문제가 매우 많았다. 중간 크리틱 때 내가 가져간 모형 그대로 미술관을 짓는다면,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 모두 강제로 관람하지 않을 시 그 손님은 절대로 집에 돌아갈 수 없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건물이 될 것이었다. 나는 내 설계안의 문제를 알고 있었고 혹시라도 교수님들 반응이 너무 안 좋으면 “최종 때까지 보완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설계안을 들고 가볼 작정이었다. 역시나, 내 모형을 본 교수님의 동공은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다른 교수님들이 먼저 멘트를 주기 전까지 함구하기로 결심하신 것 같았다. 그러자 옆 반 교수님이 자리에 일어나 허리를 굽혀 내 모형을 이리저리 찬찬히 살펴보더니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3학년 학생 설계에서……네오 꼬르뷔지안의 사조를 계승한 작품을 만나다니.”



그게 대체  말씀인가 싶었지만(사실 지금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때는 그냥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여러모로 현명할 것이라 판단했다. 과연 기류는 묘하게 흘러갔다. 본인을 포함해  담당 교수님이나 동기들이나 모두 당혹스럽게 지켜보는 가운데,   교수님은 계속 ‘이럴 수가 이런 비슷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분위기만 봤을  거의 건축 천재를 발굴한  같았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다는 안도감을 넘어 예상치 못한 칭찬에 얼떨떨했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난 도취감에 취해 집에 돌아가는 내내 가슴이 계속 뛰었다. 어리둥절하고 개운하지 못한 구석이  켠에 분명히 있었으나   하루만큼은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기로 했다.



‘뭐야. 알고보니 나 잘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뭘까. 이런 게 건축설계인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잘 얻어 걸리면 되는 건가?’



그 당시엔 행운과 같았던 그 중간 크리틱이 과연 내 건축 인생에 좋은 영향을 주었을까. 14년이 지나 뒤늦게 자문해보니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것 저것 따질 것도 없이 오히려 실패보다 못하다. 비록 자기혐오는 무척 쓰라리고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성찰과 깨달음,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는 자기 정비의 기회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별다른 고심 없이 운 좋게 얻어 걸린 좋은 평가들은 결국 또 다른 요행을 바라는 헛된 희망과 근거 없는 자신감에 젖게 한다. 내 자신에 대해 냉정히 바라보고 배움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때때로 내 노력의 정도와 거의 상관없이 세상으로부터 요상한 평가를 받게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차가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고 문득 다짐한다. 그러나 14년 전 그 크리틱 같은 과찬을 어쩌다 또 듣게 된다면 나는 그 사카린 같은 달콤한 유혹을 떨쳐 내고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구조 6점이라는 박한 점수에 더 이상 연연해 하지 않겠다는 내 소박한 마음가짐은 이렇게 너무 긴 상념으로 이어져버렸다.





2년차 때 공부했던 건축기사 구조과목. 실물 지식이 되기까지 공부와 망각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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