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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재 Oct 30. 2022

작도 능력 강화 퀘스트

3.1 단면설계-2

3교시 단면설계에서 답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보완해야 하겠다.  

 


답안 오류의 최소화.   


모든 과목에서도 공통되는 하나마나한 얘기겠지만, 지문을 여러 번 체크해서 누락시키는 조건이 없도록 하는 것이 일단 제일 기본이다. 답안지에 그릴 단면도를 트레이싱지 위에 미리 도식화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작업이 제일 핵심이라고 본다. 이 다이어그램 안에 주요 치수, 단열, 마감, 계단 정보, 슬라브 다운과 보 위치 같은 주요 구조 요소 등 최대한의 정보를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크고 넉넉하게 그리는 것이 좋다. 지문을 읽고 도식화 작업을 하기까지의 시간은 보통 30~40분을 목표로 잡는데, 만약 하루에 3시간 연속으로 공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 단면 도식화 훈련만 별도로 해 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대중교통 이용 중 틈틈히 하기 딱 좋고 마치 일간지의 스도쿠 퍼즐을 푸는 것 같은 소소한 재미도 있다.   



완도.   


또 하나마나한 얘기겠지만, 완도는 건축사 자격시험 최대 미덕이요, 기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도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봐야 한다. 공부 초기에 시간 제한을 두지 않고 학원이 작성한 모범답안을 그대로 따라 그려본 적이 있었다. 아무리 못해도 작도만 1시간 50분 이내에는 끝내야 할 도면을 3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고 그날 밤 나는 ‘앞으로 이 짓을 어떻게 해나가지’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탈진한 듯 침대에 털푸덕 쓰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때, 선생님이 작도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셨다. 작성해야 할 양이 많은 기출문제 하나 골라서 작도만 10번을 반복해 보라는 것이었다. 듣다보니 정말 그렇게 하면 작도 실력이 많이 늘 수 밖에 없어 보였다. 그 때 이상하게도 의욕이 마구 솟구쳤는데 마치 RPG 롤플레잉 게임을 한참 하다가 퀘스트를 새롭게 시작하게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학원 수강생들에게 퀘스트를 제안하고 있는 선생님은 NPC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퀘스트 방법은 간단했으나 워낙 노가다 성격이 짙어 실제로 퀘스트를 성공하는 플레이어의 수는 그닥 많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기필코 완수하고 싶어졌다.



도장 열 개를 찍어가는 작도력 강화 퀘스트. 윗단 왼쪽이 샘플도면이고 이 도면의 퀄리티를 목표로 10번 작도해 나갔다.



2017년 기출 단면설계는 건물의 주요 단면과 추가 상세도의 작도량이 다른 기출에 비해 많은 편이었다. 나는 거기에 몇 가지 주석을 덧붙여 쓰는 것까지를 완성으로 보고, 작도만 1시간 30분 안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말 그대로 2017년 문제만 10번 넘게 작도를 했다. 회수가 거듭될수록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중간에 늘기도 하고 정체되기도 하다가 막판에 몇 분씩 점차 줄어들더니, 시험 직전 마지막 작도할 때가 되어서야 겨우 목표 시간 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겨우 안도하고 2018년 자격시험에 임했을 때, 현장에서 마주친 문제는 의외로 작년에 비해 작도량이 적었다. 평소의 강도 높은 훈련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정작 시험을 볼 때는 체감상 너무 널널해서 어리둥절 할 정도였다. 그래서 작도가 너무 빨리 끝나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어딘가 실수한 곳을 발견해 다행히 잘 수정해서 제출할 수 있었다.



노가다 퀘스트를 수행하다보니 분명히 하나씩 도장을 찍어나가는 맛이 있었다. 이와 동시에 찍힌 도장이 늘어나면서 나는 점점 인간 프린트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전에는 선의 위계에 따라 그리는 순서를 다르게 했다. 얇고 흐린 가선을 가로 세로 그리고 나면, 가장 굵은 구조선을 각각 가로 세로순으로 그렸다. 그 다음 마감과 단열선 등을 가로 세로 그리고 마무리를 하는 식이었다. 그러자 어느 시점부터인지 나는 마치 기계가 된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가로 세로 가선에 전체 윤곽이 보이면, 선의 위계와 상관없이 위에서 아래로 모든 가로선을 그어내려오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로선을 그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계음처럼 입으로 ‘지잉’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퇴실 당할까봐 참았다.) 이제 답안은 다 외울 정도라 프린트 방식을 시도해봤던건데 나중에는 이 방법이 체화가 되어 모든 과목의 작도를 이런 식으로 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전후 비교를 측정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인간 프린트기가 되고 나니 전체 시간의 10%는 세이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도면 완성에 걸리는 시간은 아직까지 불안불안하여 마음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10번째가 곧 눈 앞인데 도장만 겁나게 찍고 실질적인 발전은 미미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즉 ‘맥거핀’에 대한 위기감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나는 좀 더 기계가 될 필요가 있었다. 마치 공각기동대에나 나올 법한 대사인 것 같아 뭔가 요상하긴 한데 마음 만큼은 쿠사나기 소령처럼 필사적으로 각개전투를 해나가는 자세로 임하기로 했다.



작도 방식을 전체적으로 개선했으니 이제는 작은 공정을 부분적으로 반복 연습해서 조금씩 시간을 줄여나가야 했다. 제일 시간을 대폭 줄여할 것이 바로 계단이었다. 계단은 깔끔하게 정성들여 그리려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오래 걸리게 된다. 득점의 효용성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조금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중요한 채점 요소들은 빠짐없이 기입하되, 전체적인 이미지가 견고한 계단 구조로 무리없이 보이는 수준으로 작도 퀄리티를 조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계단의 꺾임은 무조건 프리핸드로 빠르게 그렸다. 단수 따위 정확하지 않다 해도 어차피 심사위원들은 쥐뿔도 관심이 없을테니 나도 일말의 노력조차 안 하기로 했다. 이런 방향으로 딱 1시간 반 잡고 계단을 10번 반복해서 그려보았다. 그리는 것은 똑같은 계단 모양이었지만 ‘이렇게 하면 더 빠르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궁리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이렇게 연습을 하고 나니 무려 계단에서만 5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번의 계단 작도 연습. 아래로 갈 수록 소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그 외 옥상조경이나 지하 DA(Dry Air)와 같이 상습적으로 나오는 확대 단면 상세도는 아예 외워서 따로 연습하기도 했다. 마감재도 학원 답안에서 제시하는 것 외에 나만의 마감재를 몇 개 만들어놓고 팔레트처럼 꺼내 쓴다. 고민하느라 멈칫 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실무 경력이 짧아 애초에 팔레트가 많이 빈약했기 때문에 회사에 참여했던 프로젝트들을 다수 뒤적거리며 참고했다. 가끔 실내재료마감표 따위를 보고 업무노트에 생각없이 따라 그리는 것이 업무 스트레스를 풀었던 거의 유일한 행위였는데, 도면 덕질이 의외로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싶었다.  



상세도 및 마감재와 마찬가지로, 도면에 쓸 각주도 미리 준비해서 외웠다. 도대체 무슨 목적과 의도로 도면 외에 기타 텍스트를 써야하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답안지가 전체적으로 꽉 차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니 이것저것 쓸만한 것들을 발췌해봤다. 각주는 오히려 실무에서 쓰는 것들이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시험 답안지 처럼 지어지지 않을 (지어져서도 안 되는) 건물에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본 건물은 비록 가상의 건물이지만 기어이 시공을 해서 혹시라도 마감재를 바꾸겠다면 설계자와 사전협의 후 감독관과 감리자의 승인을 득한 후 시공한다.’라고 적으면 이 시험의 위신이라는 것이 좀 우스워지지 않겠는가. 이왕 그렇게 소꿉장난을 해보겠다면 두 번째 각주로 다음과 같이 이어 달 수도 있겠다. ‘단, 설계자인 본 수험생에게 건축사 자격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설계자와의 사전협의를 진행할 수 있음.’



결국 주석 내용으로 시공 관련보다는 실제 실무 도면에서 별로 쓸 일이 없는 친환경 아이템에 대한 부연 설명이나 이론적인 얘기를 쓰게 된다. 어차피 심사위원들은 그 깨알같이 작은 텍스트를 일일이 읽을 것 같진 않아 보였기에 나는 좀 더 용기를 갖고 말이 안 되는 내용들의 각주를 잔뜩 준비해놨다. 예를 들면 실제 단면에선 표현을 대충 해 놓고, 당신들한테는 잘 안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여기 창호에 베네시안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다고 우기는 식이었다. (실제로 나는 베네시안 블라인드를 실물로 보거나 직접 고려해서 도면에 계획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또는 여느 건물의 실내처럼 평범하게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놓고는 외부로부터 반사광을 많이 유입하기 위해서 일부러 하얀색을 쓴 것이라는 건축가의 깊은 의도를 주절주절 써대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평소에 8개는 만들어 외워놓고 있다가, 그 해 시험장에서 모조리 쓰고 나왔다.



그 때 지문을 읽고 굉장히 놀랐었는데, 여태까지의 시험과는 달리 2018년 단면설계에서는 각주 작성을 아예 채점 요소로 간주하겠음을 처음으로 지문에서 지정했던 것이었다. 그 전까지 기출에서는 지문에서 각주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시험 답안지의 완성도가 높아보이기 위한 한 방편 정도로 모든 학원에서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수준이었다. 나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나는 준비했던 8개의 각주를 쓰고 메마른 걸레를 짜내듯 즉석에서 2개를 더 만들고 나왔다. (이쯤되면 10이라는 숫자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것 아닌가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해 단면설계 문제와는 ‘궁합’이 맞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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