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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재 Oct 30. 2022

N년의 건축 생활

4.0 에필로그-1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하게 될 때 보통 ‘N년차 건축설계인’으로 나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곤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와, 건축이라니 멋있으세요.’라던가 ‘앗, 저 건축가가 하는 그 프로그램 즐겨보고 있어요.’ 정도의 관심을 표하며, 형식적이긴 하지만 예의있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가끔은 ‘사실 제가...’하고 운을 조심스럽게 떼며 언젠가는 자기와 가족들이 살 집을 지어보는 게 꼭 소원이라는, 수줍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의 버킷리스트 1순위를 초면에 고백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지금 당장 짓고 싶다고 달려드는 사람은 왜 여태껏 만나보질 못한 것일까.) 그 분께는 어차피 먼 미래의 일이라고 하니, 요새 평당 시세는 어떻게 되는지, 자본은 얼마나 준비해놔야 하는지, 최근 공사비가 얼마나 상승했는지 따위의 사실 나도 잘 모르는 내용들을 마치 내일 날씨에 대해 조잘거리듯 가볍게 응수한다.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시라는 말과 함께 이 멘트를 뒤에 덧붙이는 뻔뻔함을 잊지 않는다. “제가 지금은 어디 직원이긴 하지만, 건축사가 있어서요.”



본인은  직종과 전혀 상관이 없으나 바로 가까운 주변에 건축업계에 종사하는 가족 등이 있어  생활 실태를 직간접적으로 아는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전에 뵈었던 어떤 분은  직업을 듣자마자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고 나를 동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셨는데,  입에다   먹을거라던가 고까페인 음료라도 당장 부어 넣어줘야 하는  아닌가 고민하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분은 내가 이전에 자취했던  근처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점주였는데,  분의 작은 편의점은 동네 가로등이 별로 없는 어둑한   골목을 항상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비춰줬기에, 종종 밤 늦게 일과를 마치고 돌아왔던 나로서는 그 편의점이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여느 때와 똑같이  늦게 돌아와 불닭볶음면을 사기 위해 편의점을 들렀던 어느 , 점주 내게 아주 오래전부터 궁금했었다면서 내가  하는 사람인지, 잠은 대체 언제 는 건지 집요하게 물었다. 분명 놀다가 들어오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라고 점주는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고 했다. 꾸민 것과는  거리가  옷차림에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컵라면 코너를 기웃거리는  꼴을 보면 누구나 쉽게 예측할  있긴 했었을 것이지만, 사실  놀라웠던 것은 ‘이렇게 일은 열심히 하지만 박봉인  같은데?’라는 질문 형식을 빌린 그의 직설이었다.  정체(?) 이렇게 쉽게 들통나다니.  대화 시도를 하는 상대에게 그의 접근은 분명 예의있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또한 강한 호기심이 동해 개의치 않고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알고보니,  점주 편의점 운영을 하기  토목업체를 운영했던 사장이었는데 건축설계사무소와 협업을 숱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쪽의 실상을 너무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  나는 편의점 사장님의 측은한 눈길을 뒤로 하며 불닭볶음면과 공짜로 받은 핫도그를 비닐 봉지에 넣고 신나게 들고 집에 갔다.





나는 일을  하는 타입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언제나 내 일을 사랑. 체력과 의욕 모두 넘쳤던 신입 때는 월요일 아침이  설랠 정도였다. 직급이 낮아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있기도 으나, 스스로도  가벼움을 즐길  있는 인생의 유일한 시기라는  한편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연차가 조금씩 붙고 직책의 책무도 점차 무거워졌다. 어렸을 때부터 있던 전화공포증은 여전히 극복되지 않았지만, 모르는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며 매일 비빌언덕을 찾아 열심히 부벼댔다.  와중에 프로젝트는 전혀 두서 없이 던져졌다. 누군가 허가까지 완료한 기본계획을 내가 덜컥 실시설계부터 맡게 된다던가, 프로젝트 중간부터 투입돼서 허가 업무만 맡게 되는  나의 포트폴리오는 짧은 호흡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아직 저연차니까 괜찮았다. 언젠간 시간이 해결해  것이라는 낙관이 있었다. 그렇게  곳을 점차 메꿔가도 좋으니 시공 감리 업무도 언젠가 두서없이  던져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리는 공이 오질 않는다. 대표님께    다른   던져달라 강력하게 항의를 해봤지만 투수는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게다가 납품까지 완료한 실시설계 프로젝트들은 각양각색의 이유로 착공이 불발되었다. 탄생될 건물을 씨앗처럼 품고 있던 납품도서는 결국 세상 밖으로 싹트지 못한 , 회사 NAS 서버에서 다른 프로젝트를 위한 참고 자료로서만 살아  쉬게 되었다. 5년차에 접어든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시간이  수록 단단하게 굳어져야  내면의 무언가가 되려 물러 문드러지고 있었다. 중요한 경험의 부재는 다른 업무에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당장 주어진 실시설계 업무를 진행할 때만 해도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가능한 , 어느 단계에서 무엇이 고민 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힘든 경우가 허다했다. 공사 과정, 행정 절차와 관련 제반 법규에 대한 인지, 알아야 할 각종 체크리스트  시공 관련 경험과 지식이 없으니, 내가 작성한 실시도면은  구성부터 통합적이고 입체적인 사고를 담아내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지적 당할까봐 무서워 어설프게 구색 맞추기 바쁜, 어딘가 반쯤 죽어있는 도면이었다.



건축사 수험 생활을 모두 마치고 입사하게  ‘I’건축사사무소는 업계에서는 하이엔드 디자인으로 이름이 있는 역사가 오랜 아뜰리에였다. 전부터  회사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었지만 대표인 S소장님이 페이스북 친구인  말고는 연결점이 전혀 없어서  곳으로 구직을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S소장님으로부터 메세지를 받게 되었을 때는 무척 놀랄  밖에 없었다. 아뜰리에 ‘I’사무소라면  부족한 경력의 농도를 높일  있지 않을까? 면접날 S소장님께 반갑게 인사를 드리며 준비했던 선물로 준비했던 백건우 신보를 드렸다. 바로 앞에 인왕산이 보이는 테라스의 테이블에 앉아, 나는  짧은 경력에 대한 고민과 ‘I’회사에서 무얼 얻고자 하는지를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뜰리에에서 꾸준히 3 근속한 직원보다   있는 것이 훨씬 없을 것이라 당당하게  자신을 폭로했다. SNS 과대광고만 보여드린  같아 속으로  찔리던 차였다. 그러나 S소장님은,  경력에 대해선  알아들었고, 요새 사무실이 적막해서 마침 시끄러운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페이스북으로   모습이 매우 합당해 보였다고했다. 그래서  사람 아주 제대로 찾으신  맞고,  계약조건대로 이수하겠노라 안심시켜드리며 근로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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