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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재 Oct 30. 2022

프로좌굴러의 꿈

3.2 구조계획-2

그래도 구조설계를 공부하는 과정은 즐겁고 유익했다. 나는 고등학교  이미 물리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 대학교 들어와서 수강해야 했던 일반물리학이나 구조 역학의 성적 역시 좋을리가 없었다. 분명히 중요한 학문이기는 한데 설계하는 건축쟁이로서 실무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닿지 않았다. 구조 부재에 걸리는 하중을 계산기 두들겨가며 도출해내는 것은 구조 업체의 업역이니 말이다. 사실 감각도 별로 없다. 실무 회의를 하다가 누군가 “여기 보에 모멘트가 걸릴테니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하는 식의 의견을 내고 있다면 나는 “저스트  모멘트 외치고 이해를 돕기 위한 시간을 벌어야  것이다. 아무튼 구조에 대한 소질이 없는  자신이  아쉽다. 남이 지은 건축물을 공부하다보면 간혹 구조설계 자체가  건물의 기능과 미학적으로  맞물리면서 마치 현실적 제약을 초월하는 듯한 사례들이 있다. 이런 건축물들은 여지없이 감동을 주며 진정한 구조미란 무엇인지를 곱씹게 한다.  같은 프로좌굴러는 아마 이런 디자인을  번이라도   수는 있을까 의문이 드니 오늘도 기분이 무척 좌굴된다.



비록 건축사 시험의 점수 또한 아쉬운 결과로 끝났지만, 설계쟁이가 그간 궁금해했던 구조 설계의 기본 원칙이라던가 이론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선 어느 정도의 해갈을 했다고 생각한다. 저연차 때는 어쩌다 구조 도면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가 없어, 건축기사를 따기도 할 겸 구조 및 시공 과목을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암기해던 이론들은 대부분 실물 지식이 되지 못한 채 머릿 속에서 소멸됐지만, 아주 몇 가지 기본적인 구조 지식은 남아 구조도를 조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건축사 공부를 거친 지금은 이제 겨우 구조 전문가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 전까지 나와 구조업체와의 역학 관계는 매우 단순했는데, 우리 소장님이 기둥을 하나라도 더 없애고 싶어한다는 의견을 내가 직접 업체에 전하면, 구조 담당자는 안 된다고 답변 하거나 아니면 기둥 하나 뺀 것을 보완하기 위해 뭔가 더 무지막지한 요소를 몇 배로 집어 넣는 식이었다. 그 중간에 아무 생각없이 통화했던 뻐꾸기 시절보다야 나아졌겠지만, 구조 관련 문제에 있어 내가 스스로 아이디어나 처방전을 제시하는 능력에 도달하기까지 아직도 요원하다.



길지 않은 경력 동안 구조업체와 협업을 하면서 느낀 건 이들이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나와 일했던 대부분의 구조 기술 담당자들은 건축과 긴밀하게 협력하려고 애쓰시는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설계를 대하는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방어'의 자세였다. 스스로 업역을 제한적으로 규정짓고 그 범주를 넘어서는 요청을 (그들 밖에 할 사람이 없는데도) 거부당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보수적인 설계를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니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를 대하는 태도에도 그 일의 성격이 영향을 준 거라 이해하고 있다. 보수적인 마음은 어쩌면 보수를 두둑히 드리면 활짝 열릴지도 모른다. 그럴 형편이 못되면 아쉬운 내 쪽에서 구조적 역량을 갖추고 이들에게서 진정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처방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나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설계쟁이의 이상한 요구' 프레임에 곧잘 갇혀버릴 뿐이다.



프로좌굴러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결국엔 훌륭한 사례를 많이 접하고 공부해보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 또 공부구나. 내일의 내가 하겠지. 화이팅.  



건축사를 딴 후 (개소를 제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던 중에, 건축사협회에서 주관하는 건축물 해체 감리 교육을 발견하고 수강한 적이 있었다. 건축사도 이 교육만 들으면 해체 감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30년 동안 감소하고 있는 설계비에 지친 건축인들이 꽤 높은 가격의 해체 감리비를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매달 몇 백 명씩 우르르 신청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빠질 수 없었다. 그렇게 장기간의 교육도 아니었다. 하루 8시간 정도씩 일주일 동안 비대면 줌미팅으로 참석하면 됐다. 교육 끝에 본 시험도 그닥 어려운 편은 아니었기에,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쉽게 해체 감리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



할 수 있으니까 일단 하기는 했는데, 사실 원칙적으로 따지면 건축사가 아닌 구조기술사의 업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주변에서 해체 감리를 다니는 건축사들은 지금도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할 만한 영역이기도 하고 걱정하는 것보다 안전 사고에 대한 리스크가 낮은 현장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자격을 부여해도 건축사 중에는 구조적인 역량이 딸리는 나 같은 프로좌굴러도 있다. 대학교 5년제 인증 교육 하에서 딱히 그 역량이 강화가 된 것도 아니고, 자격시험까지 연계되는 교육 제도 하에서 딱히 태만했던 것도 아닌데도, 어쨌든 나는 건축사 자격시험에서 구조설계 6점을 맞고 겨우 턱걸이 합격을 했다. 만약 내가 감리자로서 보고서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시공 및 구조에 대한 변경 사항을 즉각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해 안전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면, 아마 사회 1면에는 내 구조설계 점수가 장식할지도 모른다. “6점짜리 건축사, 예견된 사고……”



이것 저것 기웃거릴 것 없이, 그냥 할 수 있는 일만 제대로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도 턱 없이 모자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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