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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진영 Dec 12. 2022

예방은 티가 나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를 예방하려면

하인리히 법칙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글을 정말 오랜만에 쓴다. 요새는 논문을 제대로 쓰느라 사실 블로그에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오늘은 조회수가 브런치에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길래 생각하고 있던 주제를 오늘 써야겠다 싶어서 펜을 들었다.


우선 이태원 사건에 대해서 할 말이 좀 있다. 이태원 사건은 이미 발생한지 1달이 넘었고 이제는 국민들의 뇌리에서도 많이 잊혔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말을 꺼내기 쉬운 측면이 있다. 이태원 사건의 문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하인리히 법칙 (Heinrich’s law)를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즉 1의 중대 재해 (major injury)가 나타나기 전에 29의 경미한 재해 (minor injury) 가 나타나고, 300번의 아차사고 (near miss)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수 없이 많은 징후 (sign)들이 있었다. 매년 있어왔고, 조금이라도 안전관리 예방이란 컨셉에 대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넘길 수가 없는 징후들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당일날에도 3시간여 전부터 계속해서 징후 및 아차사고, 경미한 재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경찰서든 소방서든 작은 신고들이 있었으며, 아마 기업 안전관리자가 작업현장을 통제하는 상황이었으면 100% 작업 중지를 요청했을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군중을 앞에 두고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다 .


여기서 생각해볼 주제는 예방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둔감함이다. 예방은 티가 나지 않는다. 돈을 써도 티가 나지 않기에 예산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쪽에서는 이쪽에서 돈을 줄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당장 티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어느 부분에서 예방을 위해 예산을 집행하고, 훈련하고, 돈을 쓰는 것이 정말 비용-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고, 검증된 연구는 적기 때문에 어쩌면 어떤 예방을 위해 쓰는 돈을 낭비라고 인식할 수 도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낭비인지 아닌지 판단조차 어렵기 때문에 함부로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좀 생각해볼 핵심 문제는 어떤 예상되는 일련의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쓰는 돈이 정말 비용-효과적인지 아닌지를 의사결정자들이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 일단 다 줄여보고 사건이 크게 발생하는 곳에만 돈을 앞으로 쓰기로 하자 이렇게 결정할 수도 있다. 이 방법은 정말 보수적인 방법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이 부분은 각 사안 별로 비용-효과 분석 연구용역을 수행해봐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많다.)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일본의 국제공항에 붙은 에너지 유틸리티 안전관리회사의 광고 모토를 보고 감명 받은 적이 있다. ‘오늘도 전력을 다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이라는 광고 문구였다. 필자는 예방에 쓰는 예산의 성격을 이 문장보다 더 잘 나타내는 표현은 없다고 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매우 성공적인 예방이다. 그게 예방하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다. 즉, 일반 대중이 예방을 위한 노력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 일도 없지만 사람들은 예방을 위해 돈을 썼다는 것조차 모르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일반대중이 예방의 효과성에 대해 둔감해지고, 예산절감의 압박이나 유혹을 받게 되면, 예방에 대한 예산을 쉽게 삭감해 버린다는 데 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비용-효과적인 예산 투입과 누군가의 노력들이 결합되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는 걸, 정말 모르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1) 하인리히법칙을 기억하고 작고 사소하지만 alarming sign을 분명히 울리는 사건들에 대해 더 예민해져야 하며 (극도로 예민한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예민하면 대중의 감정을 거스를 수도 있다.), (2)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만드는 데에는 각종 예방 분야의 예산과 인력 투입이 빙하의 수면 아래 부분처럼 거대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3) 어떤 예방 분야에서 예산을 삭감하고 인력 투입을 줄일 지에 대해서는 매 사안에 대해 극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한번 일본 국제공항에 붙어있는 에너지 유틸리티 안전관리회사의 광고모토를 반복하며 끝 맺어보자. ‘오늘도 전력을 다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이 말만큼 예방 분야의 성격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문구도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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