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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Nov 07. 2024

내가 작별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를 읽고

Ⅰ. 들어가는 말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는 내년 미국에서 <We Do Not Part> 제목으로 출간된다고 한다. 한강의 유명세를 익히 듣고 있었지만 한강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로서 이러쿵저러쿵 뭐라 감상을 말하기 어렵다. 더구나 노벨상 수상이 한강 작품을 선택하게 만든 계기라서 읽기도 전에 독자로서 주눅 드는 느낌도 있다. 제목을 처음 접하고 든 생각은 ‘왜 작별하지 않는다 일까?’였다. 아내에게 작품을 거론하다가, “한강의 헤어지지 않는다를 먼저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조언을 들었어”라고 말한 후 온라인 서점에 검색하니 나올 리가 있나. 할 수 없이 한강으로 검색하고 그의 작품 목록을 보고 <작별하지 않는다>로 기억을 수정했다. 

네이티브 스피커로서 <작별하지 않는다>와 <헤어지지 않는다>의 차이를 고심하는데, 영역 제목이 We Do Not Part라니, 김이 빠지는 느낌. 그리고 천천히 읽고 꼭꼭 씹어 목을 넘겼다. 읽으면서 독후감을 써야 하는 숙제를 동시에 생각하게 됐다. 아, 이런 표현이 소설을 시 세계로 데려왔다고 하는구나. 1부와 3부는 과거 시제를 쓰는데, 2부는 현재 시제를 써서 긴장감을 높이고 독자를 텍스트에 딱 붙여서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한강의 여성성도 소설에서 도드라진다. 여성 작가라고 해도 중성적 톤을 유지할 수 있는데, 1인칭 주인공 경하의 머리칼이 진검정의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일 것 같다는 생각은 나의 편견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암튼 그랬다.

       


장갑 낀 손등에 방금 내려앉았다가 녹은 눈송이가 거의 완전한 정육각형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뒤이어 그 곁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삼분의 일쯤 떨어져 나갔지만, 남은 부분은 네 개의 섬세한 가지들을 본래 모습대로 지니고 있었다. 부슬부슬한 그 가지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소금 알갱이같이 작고 흰 중심이 잠시 남아 있다가 물방울이 되어 맺힌다. 



이런 서술이 한강의 아이덴티티로 느껴지고, 특정 장면을 꼭 최대한 줌인을 해서 묘사해야 한다는 소설가 특유의 의무감으로 보이기도 해서 저항감을 느꼈다. 물론 이것도 나만의 편견이겠지만. 한강은 우직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우듬지’ 낱말을 밀고 또 밀었다. 우듬지의 뜻과 이미지가 77년 전(한강이 소설을 쓸 때는 대략 70년 전)과 지금이 하나의 생명으로, 영역 제목처럼 part 되지 않는다는 주제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개별적 느낌이라기보다는 국어 참고서에 나오는 클리셰 같고, 암튼 내 자신이 초라한 생각만 쌓인다.

어찌 월말 독후감 숙제를 웰메이드할 것인가. 이런 생각은 독자로서 참으로 방해 요소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걸리적거리고, 그런 상황이 한강 작가에게 송구하기도 하고. 참….

그러다가 갑자기 둑이 터진 것처럼 여러 기억이 기어 나왔다. 기어 나오기보다 공포영화의 흔한 장면처럼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악령의 부상(浮上)이 더 가까운 이미지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봉인이 풀리자마자 뒤섞여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이 불편함, 이 불쾌감, 이 우울감을 글로 쓰는 것이 나에게 엑소시즘이 될 것임을 깨닫는다.

한강은 작품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2014년 6월에 첫 두 페이지를 썼고, 2018년 세밑에 다시 쓰기 시작해서 3년이 걸렸다고 한다. 2014년 6월은 <소년이 온다> 출간 직후이다. 한강은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극을 보고 4.3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 반대일수도) 나 혼자서 분명 그랬을 것이라 짐작한다. 세월호는 2014년 내내 뉴스로 소비되고 있었다. 70년 전 4.3에 혼을 빼앗긴 한강이 '지금 여기'의 세월호 참사에 제정신으로 살기 힘들지 않았겠는가.

그런 생각이 순서 없이 휙휙 내 머릿속에서 날아다니다가 작정했다. 독후감이지만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감상이 아닌 <작별하지 않는다>에 영감을 얻은 내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고 말이다. 이거 일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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