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이틀째 경북 영양군 일월면 구 오리초등학교
경북 영양군 일월면에 왔다. 22년 전에 폐교된 오리초등학교 자리고, 현재 주인은 6년 전에 매입했다고 한다. 멋지게 집을 짓고, 교실 한 칸은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했고(장작 때는 황토방으로) 교사 지붕은 전체를 개비했다. 운동장은 포도농원이 됐다. 유기농 캠벨을 재배하는데 바로 수확한 걸 먹으니 진짜 꿀맛~ 아이들은 1인당 2송이씩 먹더니 더 못 먹더라.
여기에 오기 전에 우포늪에서 출발했다. 동선이 합리적이진 않다. 내일 영양의 검마산 자연휴양림에서 2박을 한 후 울산으로 다시 내려가는 일정이다. 우리의 여행 중 이곳 옛 오리초등학교를 소개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가 매물로 나왔는데 관심이 있냐고 하길래 돈은 없지만 관심은 있어서 이리로 발길을 돌렸던 사연이다. 건물은 되살려 쓰기가 어렵지만 땅이 넓다. 2500평 정도.... 하지만 빼곡하게 포도나무가 들어서 있어서 운동장을 쓰려면 다 캐내서 버려야 하는데, 아깝다는 생각만 들어서 다시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아침을 먹고 우포생태체험장을 한 바퀴 돌았다. 숙소인 생태촌 유스호스텔과 이어진 시설이라 걸어가는데 부담이 없다. 토요일이라 아침부터 스텝들이 나와서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를 맞이하더라. 스텝들 덕분에 오늘이 토요일인지 알았다. 체험용 연못에서
미꾸라지 잡고, 모형 늪에서 쪽배 타고, 논고동 잡기 체험 3가지를 묶어서 1만 원을 받는다. 체험시간이 1시간이 넘는다. 가성비 우수한 프로그램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시간 조절을 해서 참가했을 텐데, 일정상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크게 돌며 산책을 하는데, 어제도 똑같은 일로 꾸중을 들은 녀석(A)이 또 같은 일을 저지른다. 가만히 있는 친구(B)에게 다가가서 "왜 날 발로 차냐!"라고 따진다. 곧바로 B를 발로 찬다. 순간의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B가 도발을 했고, 기분이 상한 A가 참지 못하고 응징을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교사나 어른이 장면을 목격했다고 해도 A는 강하게 반발한다.
"B가 먼저 날 발로 찼다구요"
그러면 내가 보지 못한 순간에 B가 먼저 발로 찬 것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A의 조작에 의한 도발일 뿐이었다. B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억울한 마음에 바로 A를 공격하고, A는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뒤돌아 뛰었다. 그러나 바로 뒤에 몸이 불편한 분이 탄 휠체어가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휠체어와 부딪치며 크게 넘어졌다. 이런 경우에 다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 과정을 내가 모두 지켜봤다. 화가 나는 일이다. 사실 어제도 거의 같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내 비난의 꾸중을 들었으면서 오늘 또 같은 일을 벌인다. 뭐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동안은 심증만 갔지 직접 목격을 하지 못해서 갈등 당사자의 엇갈린 주장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었다.
어이없는 A의 행동에 마음 불편하지만, 그리고 안타깝고 걱정되지만, 대안교육을 고민하고 사는 교사로서 행동의 원인이 무엇일지 냉정하게 짚어가는 기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마침 4년 전 일기를 페이스북이 보여준다. "과거의 오늘"이 매일 화면에 뜨는 것 말이다. 일기는 우치다 타츠루 「하류지향」 서문의 일부를 인용했더랬다.(4년 전 글이라 꼭 남의 글을 처음 읽는 느낌이다) 우치다 선생은 과거 교육은 백년지대계였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즉 지금도 백년지대계로서 교육을 말하는 이는 시대의 변화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백년지대계의 폐기가 옳다는 말이 아니고 사회적 주류 이데올로기가 변했다는 얘기)
기업의 입장에서 '글로벌 인재'라는 자원은 "능력이 높고 임금은 낮고 체력이 있고 권리의식이 희박하고 비판정신이 결여되어 있어서 상사의 말에 순종하고 어떠한 공동체에도 귀속하지 않고 누구로부터도 의존받지 않는 자로서 회사 명령 하나로 다음 날부터 해외의 지점과 공장에 부임할 수 있는 청년"을 말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공동체에도 귀속하지 않고 누구로부터도 의존받지 않는 자"라는 규정이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기업이 원하는 청년의 모습은 기업에게 다음 분기 이익률이 중요한 것이지 국민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어른으로 성장할 젊은이의 모습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라고 우치다 선생은 진단한다. 글로벌 기업이 주도해서 국민국가는 해체돼가고 있다는 것. 교육에 있어서 국민국가의 지향점과 글로벌 기업의 지향점이 대립하고 힘겨루기를 하는 국면이라는 것. 형세는 글로벌 기업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 그런 흐름의 현실태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영리한 젊은이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의 논리를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래서 노동과 학습으로부터 도망가는 니트족이 일본에서 급속하게 늘어난다는 해석이다.
「하류지향」이 출판된 것은 10년이 넘었고(일본에서 2005년 출간) 우치다 선생도 스스로 「하류지향」에서 언급한 내용 중 일부를 폐기하고 새롭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글로벌 기업의 논리가 교육과정에 깊숙이 들어왔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한국의 이야기이다.
현재의 학교교육은 더 이상 백년지대계를 말하지 않는다. 홍익인간/국가의 미래/다음 세대 주인공이 될 어린이 청소년 따위의 말은 사어가 됐다. 실제는 "지금 공부한 내용으로 다음 달 기말고사에서 얼마나 등급을 올리는가"만이 교실 공기와 학생의 머리를 채우고 있다. 1년 미만의 가까운 미래에 획득할 이익을 위해 공부한다는 것이 이미 안착돼있다. 그럼 2년 후는? 10년 후는? 이런 건 아예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주류적 사고는 대학 진학률이 급속하게 높아진 30년 전부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급기야 초등학생이나 그 이하 연령의 어린이들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위에서 말한 A는 집단에서 자기 소외를 막으려는 적극적 제스처이다. 즉 자기중심으로 놀이를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다. 한마디로 내 요청에 응답해서 같이 놀자는 호소다. 그 호소가 매우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문제가 됐다. 이 경우 호소의 전제부터 조작이다. 매우 부도덕하다. 아이는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고(안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한다.
베트남 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미국이 조작한 통킹만 사건이나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 보유에 대한 조작은 그나마 사후에 알려진 것이다. 알려지지 않고 묻힌 역사적 조작들이 얼마나 많겠는가.(한국의 근현대사는 조작의 백화점이다) 당장의 세태도 조작, 그리고 또 조작이다.
나는 주장한다. 세상의 작동원리를 어린이들이 학습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세상의 흐름대로 행동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어찌 보면 신비롭다.
A의 황당무계한 창의적(?) 놀이는 설득으로 고칠 수 없다.
A는 자신의 행위를 고쳐야 할 항목에 추가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로직이 "교육 불가능의 시대"의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