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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지급은 우파의 해결책

열 나흘 째 경북 영양군 검마산 자연휴양림

by 박달나무

검마산 자연휴양림에서 2박을 한다. 오늘이 이틀째다.
가벼운 산책길이 마련됐지만 아이들은 산책을 '산에 오른다' 표현하며 거부..... 차라리 도서관에 가겠단다. 산보다 책이라나^^
뭐 그래라 그럼~
숙소에는 바둑판(뒷면 장기판)과 바둑알, 장기알이 있다. 그 외 오락거리가 없다.
먹을거리도 오늘로 바닥났다. 포도농장에서 2만 원어치 사온 포도를 다 먹었다. 주먹보다 큰 천도복숭아 여섯 알도 여기 와서 해치웠다. 미니 초코바도 바닥냈다. 초코파이 5 봉지 남은 것도 솔드 아웃.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젤리 과자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쌀 이외 부식거리가 하나도 없다. 밥에 뿌려 먹는 김 양념 부스러기와 일본에서 가져온 소고기 분말 후리카케도 깨끗이 먹어치웠다. 비상용 사발면도 증발됐다. 있는 건 참기름과 고추장, 된장.
밥을 지어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휘휘 비벼 내놓으니 맵다면서도 다 먹는다. 내가 먹을 게 남지 않을 정도.(참기름이 일등 공신~ 덕풍계곡 민박집 아주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참깨를 하루 전에 짜 놓은 참기름이라 향과 맛이 전혀 다르다)
아이들은 2주일 동안 (예외적 상황도 잠깐 있었지만) 탄산음료와 공장 제조 과자에서 멀리 있었다. 밥과 보수적(?) 반찬만 섭식했다. 특히 고기류에서 멀어지고 된장과 채소반찬을 먹었다. 짧은 보름 정도지만 데이터로 잡히지 않는 변화를 느낀다. 성정이 순해지는 느낌적 느낌이랄까..... 바라는대로 보이거나 느껴지는 현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반찬투정은 확실히 없어졌다.
그래서 결국 오늘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지냈다. 전원 만화책(마법천자문 따위)과 WHY 시리즈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래도 종이책을 붙잡고 있다. 이것도 환경의 뒷받침이 없다면 불가능한 상황이다. 숲 속 도서관 이용자가 전혀 없다. 종일 우리만의 독점 공간이라 좀 떠들고(진짜 조금만 떠든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수준) 뛰어다녀도(잔소리 없어도 거의 뛰지 않는다. 헐~) 부담이 없으니까 내 잔소리도 없다. 저녁 7시 현재도 아이들은 도서관에 있다. 배고프다는 아우성 때문에 저녁을 5시에 먹어서 문 닫는 9시까지 있을까 싶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거의 끝낼 무렵 전화가 왔다. 시민운동가이고 교육문제에 천착하는 분이다. 주유천하 시리즈를 보고 계셨나 보다.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아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고.... 그 아이의 가정환경은 특별한 점이 있냐고 물었다. 전화니까, 특정 아이의 가족 얘기니까 평범하고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사실 그 아이의 가정환경은 매우 평범하다. 전화통화를 계기로 떠오르는 점이 있어서 써보자면....(나랑 생활하는 아이들과 관계없이)
결국 불안이 주범이다. 하나마나한 얘기다. 누구나 알고 있다. 불안하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불안하면 배도 아프고, 밥맛도 없고, 집중도 안된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어린이 청소년 문제의 주범이고, 고갱이고, 엑기스고, 알파이며 동시에 오메가이다.
그런데 아이의 불안 뒤에는 엄마의 불안이 있다. 한국 상황에서 엄마의 불안은 남편의 불안정에 있다. 남편은 돈이 없거나 저녁이 없거나 정신적으로 황폐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건강을 잃었다. 통칭하여 리스크를 안고 있는 남편이자 아빠인 한남은 리스크를 분산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없다. GDP 규모로 보면 최악의 국가다. 당연히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리스크로 몰아가서 자폭만이 탈출구라고 세뇌한다.
이 문제가 깔때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한 곳으로 모이는데, 엄마라는 중간단계를 거쳐서 종말단계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받아 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교사로 일하며 항시 분노모드에 젖어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문젠가? 세상에 온 지 10여 년 된 아이들이 망가지면 얼마나 망가지나. 설마 어른보다 더 망가졌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해결책이 기본소득제공이다. 이 주장을 위해 무수한 부연이 필요하겠지만 건너뛰고, 성인 1인당 월 120만 원, 청소년 50만 원, 초등 이하 30만 원을 지급하면 된다. 데이터나 저명한 학자들의 설명을 인용한다면 한국은 이 정도가
가능한 경제력이 있다. 기본소득은 무조건 지급하는 정책이 아니다. 성인의 경우 월 소득 120만 원 이상이면 지급하지 않는다. 전업주부라면 월 120만 원을 지급하고, 소득이 없는 노인이라면 똑같이 지급한다. 당연히 어린이 청소년은 전원 정액 지급한다.
우치다 타츠루의 말처럼 교육은 달리는 버스를 멈추지 않고 고장 난 엔진을 고치는 것과 같기에 우리 사회 혁신이 이뤄지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느라 교사 역할을 해왔을 뿐이다. 엔진의 피스톤이 무서운 속도로 왕복 운동하는데 무슨 수로 고장 난 부분을 고친다는 말인가. 교육으로 우리 사회가 바뀐다는 주장은 오래전 안창호 선생님에게서 멈춰도 된다.
불안하면 '남'이 보이지 않는다. 불안하면 이웃과 얘기하지 않는다. 불안하면 타자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다면 나는 지금 불안에 빠졌다. 아이들도 똑같다. 야스토미 아유무 도쿄대 교수(우치다 타츠루 다음 세대 학자로 우연히 발견한 일본의 경제학자이자 사상가; 곧 야스토미 교수의 저서가 번역돼 나온다)의 말처럼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자립한 사람이다. 의존은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타자를 인식하는 안정된 상태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은 옆 친구에게 '부탁'을 할 줄 모른다. 자신이 필요할 때 그냥 떼를 쓰거나 양해 없이 강탈하거나 일방적으로 요구한다. 엊그제 말한 대로 조작을 위한 거짓말도
한다. 타인의 배려와 친절을 요청할 줄 모른다.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늘 이렇다.

(2017.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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