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다 큰 것 같아
제이가 벌써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내가 고등학생 학부모가 되었다니, 조금은 비현실적인 기분이다. 제이의 성장은 생각보다 고요하게 진행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키가 훌쩍 자라거나 목소리가 변하는 게 아니라, 어제와 같은 얼굴로 매일 집을 나서고 들어오던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 이미 커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식이다. 그래서 부모가 오히려 늘 한 박자 늦는다.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 뒤에 남은 흔적을 뒤늦게 확인하는 쪽에 가깝다. 가끔 부모님이 “우리 제이가 언제 이렇게 컸냐”며 놀랄 때마다 의아했다. 그대로인 것 같은데, 뭐가 컸다는 거지?
이런 둔감한 나조차 제이의 성장을 즉시 체감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빨래를 갤 때다. 우리 집 빨래 담당은 나다. 맞벌이 부부답게 신혼 초부터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눴다. 나는 빨래와 청소, 분리수거처럼 주로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쪽을, 아내는 요리와 생필품 구매 같은 소위 생산적인 일을 맡았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면 누구라도 요령이 생긴다. 특히 빨래를 할 때면, 색깔과 소재, 그리고 ‘사람’ 별로 분류한다. 누구의 옷인지에 따라 개는 방식과 쌓아 두는 위치가 다르다. 나만의 나름 효율적인 규칙은 꽤 오랫동안 완벽하게 작동해 왔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빨래를 개다 멈칫하는 순간이 잦아졌다는 점이다. 티셔츠 하나를 들고도 제법 오래 바라본다. 제이 옷인지 아내 옷인지 도통 결론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제이 옷은 항상 작고 가벼워 한눈에 들어왔으니까. 당연히 스타일도 달랐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계가 흐려졌다. 속옷도, 양말도, 티셔츠도 바지도 전부 마찬가지다. 분명 다 갰는데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이거, 정말 누구 거였더라.’
대개 답은 라벨에 있다. 예전엔 눈길조차 주지 않던 목 뒤나 허리 안쪽의 작은 글씨들. 이제는 그걸 확인해야만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태그를 펼쳐 숫자를 읽고 브랜드를 확인한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손바닥으로 옷의 질감을 한 번 더 쓰다듬어본다. 조금 더 좋아 보이면 아내의 옷으로 판별한다. 그렇게 빨래 더미 위에서 혼자 멍하니 멈춰 서 있는 시간이 늘었다. ‘제이가 이렇게 큰 바지를 입는다고?’와 같은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약간이라도 떨떠름하게 분류를 마친 뒤에는 어김없이 민원이 이어진다. 아내 옷장에서는 제이 옷이, 제이 옷장에서는 아내 옷이 튀어나온 덕분이다.
“아빠, 이건 엄마 거잖아.” 제이의 말투엔 짜증이 섞여 있다.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잘 보면 구별 가능해”라고 핀잔을 주지만, 나는 “이건 이제 내 판단 영역을 넘어섰어”라고 칭얼거릴 뿐이다. 속으로는 ‘그럴 거면 여러분들이 직접 하든가’ 하는 문장을 조용히 접어 삼키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옷의 행선지를 바꾼다.
문득 제이가 아들이었으면 덜 헷갈렸을까 생각하다 고개를 젓는다. 문제는 성별이 아니라, 여전히 옛 기준으로 구분하려는 내 고정관념에 있을 게다. 이미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애써 예전 기억에 끼워 맞추려 했던 건지도 모르니까.
중요한 변화를 이토록 사소한 순간에 체감한다. 나는 빨래를 개며 제이가 이미 한 단계 더 자라 있다는 사실과, 나 역시 그만큼의 연식이 쌓여 가고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확인한다. 어느 쪽도 요란하지 않지만, 조용히 무게를 더해 간다.
나는 또 어떤 변화 앞에서 멈칫하게 될까. 놀라지 않기 위해 나는 빨래를 조금 더 천천히 갠다. 누구의 옷인지 성급히 결론 내리지 않고, 한 번 더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오늘도, 다 갠 빨래를 다시 정리한다.
(아, 피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