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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l 21. 2018

나는 당신의 막내가 아니예요

내 수저는 놓지마

나는 사회초년생일때 부터 '막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응당 해야하는 수저 먼저 놓기, 커피타기 같은 것들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해야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해서 그런 일이 있을때마다 번번이 사소한 실랑이가 있었다.


디자이너로 첫 취직한 작은 회사, 막내였지만 뭐든 할 수 있을것만 같았던 희망덩어리였던 나에게 주어진 첫번째 미션은 다른 직원들보다 20분 일찍 출근해서 10명남짓한 직원들의 각 자리에 있는 커피잔 설거지와, 커피 타놓기 였다. '어라?'....... 그 미션을 준 사람은 다름아닌 그 회사에서 가장 많은 실무를 맡고 있는 서른살 남짓의 여자 디자인 과장님 이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녀의 첫 대사는 "나 경력 8년이고 결혼도 했고 이 회사 다닌지 5년째야, 막내는 당연히 알아서 기어야 겠지?"


알아서 긴다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었고, 나는 왜 그녀의 결혼소식을 들어야 하는지 몰랐으며, 하사해주신 미션은 내가 왜 해야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무 몰랐기에 용기백배 였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나는 바로 나를 뽑아놓은 사장님 방으로 달려갔고 커피를 타는 업무를 디자이너인 내가 왜 해야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다.


당돌한 직구에 어벙해진 사장님은 그 여자과장에게 살살 하라는 투로 커피심부름은 시키지 말자고 당부했고 그렇게 나는 다음날 정상적인(?) 출근을 하게 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회경험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 여자과장은 갖가지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했는데, 도시락 점심시간엔 항상 라면이 있어야 한다며 라면심부름은 기본이었고 본인의 스타킹 사오기, 직원들 컵 설거지등을 "사회경험"으로 둔갑시켜 그야말로 '커피타기'만 빼놓고는 모조리 부려먹었다. 그 뿐인가. 나의 대장과 방광활동까지 카운트 당해야 했다. 나는 똥도 빨리 싸는데.....  


대한민국의 막내란 엄동설한 찬물에 걸레를 빨아서 화요일 목요일이면 높으신분들의 책상을 닦아야 하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등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바닥 걸레질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 덩어리 여야만 그놈의 사회경험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참 살기 힘든 대한민국임을 제일 먼저 배운 나는 더이상 걸레질을 하기 싫어 한달만에 회사를 옮겨야 했다. 알고보니 그회사, 한달만에 일곱명이 나갈 정도로 위상이 대단했던 회사였다. 그따위 걸레질, 설거지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며 버텨내기에 나는 사회에서 정의하는 '착한 막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받아먹으려는 정신'을 거지근성 이라고 한다. 나는 그 거지근성이 너무 싫었다. 대접해 드리려는 마음도 없거니와 받아먹으려는 정신이 1도 없는 나는 팀장이 되어서도 뭇 시선들과 싸워야만 했다. 내가 신입 이었을때부터 13년이 훌쩍 흐른 지금도 막내들은 바빠 보였다. 오히려 몇 명 없는 회사에선 더했다. 전통꼰대와 젊은 꼰대가 합세하면 막내들은 실체 있는 펀치와 실체도 없는 펀치에 맞아 늘 너덜거리는 정신으로 출퇴근을 반복했다. 팀장인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오히려 나서서 도와주기 보다 하나라도 일을 덜어주는 것과 지금은 내가 막내가 아닌것에 기뻐하는것 밖에 없었다. 막내 직원에게 한치라도 더 마음을 줄라 치면 중간에 끼인 젊은 꼰대들이 자기 일을 뺏기기라도 한 듯 시키지도 않은 시누이 역할을 도맡아 막내직원을 더 괴롭힌다. 무슨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십삼여년이 지난 지금도 막내의 사정이 이런것에 대해 집에서도 첫째이며 지금은 팀장이라는 직급을 달고 있는 내가 왜 분개하는지 알수 없는 일이지만, '빛나는 발전'의 대표주자인 대한민국, 왜 음지의 것들은 변치않고 곰팡이처럼 번식하고 오래도록 쾌쾌하게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언제나 말한다.

"내 수저는 놓지마"

"내 책상은 내가 닦았어"

"내 쓰레기통은 내가 나중에 비울게"

"내 커피는 내가 고를게"

"막내가 이름이야? 왜 막내라고 불러"


커피는 내취향대로 내손으로 타먹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 타먹기 싫으면 사먹으면 된다. 커피공화국 대한민국 아닌가. 그리고 자기 책상은 자기가 닦는걸 꼭 말로 해야 아나? 닦아 달라는 사람은 꼭 닦아줘도 깨끗이 안닦았다고 지적질 한다. 남의 쓰레기통 비우라면 짬밥 얘기 꺼내는 사람 꼭 있는데 짬밥 있는 사람이 청소도 잘하더라.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기자. 밥그릇에 딸린 수저도 마찬가지.

막내들아 내 수저는 놓지마라, 내밥그릇은 내가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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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http://blog.naver.com/jwhj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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