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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n 06. 2019

니 마음대로 나를 판단하는 겁니까?

그럼 나는 패스


“디자이너들 성격이 별로 라던데, 또라이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디자인 직군에 대한 오해, 하루 이틀 들어온 게 아니라 익숙하다. 가끔 나조차도 그런 생각을 하니까. 그런데 또라이가 어디 직업 가릴까. 소개팅에서 직업이 디자이너라고 말하는 여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건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일 이유가 99.9% 겠지만 오해만은 풀고 싶었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오해다, 아닌 사람도 많다"라고 말해줬지만 카더라 통신의 편협한 정보만으로 눈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성격까지 판단하는 남자의 오해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직업이 초등학교 선생님 같다는 말을 많이 듣나 봐요”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그 남자는 “아닌 데에- 성격 괴팍하다던데에”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니 성격이 더 괴팍해 보인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말을 꺼냈다간 역시 디자이너들은 괴팍하다고 오해에 오해를 더할까 봐 커피를 두 잔 먹이고 급하게 소개팅을 마무리했다.


불금, 혼밥, 비혼, 금수저 흙수저, 인싸와 아싸.... 하루에도 몇 개씩 새로운 ‘규정’의 단어들이 생긴다. 덕분에 우리는 손쉽게 나와 타인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규정어에 딱 한 번의 경험이 더해지면 강한 믿음이 생긴다. “그 여자 아싸래”라는 말을 들은 후 여자의 혼밥을 목격하면 그 순간부터 그 여자는 아웃사이더로 보인다.


누가 높고 낮은지 빠른지 늦었는지 쉽게 분류하고 판단하는 사람들 속에서 오늘도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규정짓느라 피곤해진다. 이 규정의 단어들에 대한 가장 큰 피로는 타인을 쉽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내 속도 모르면서 보이는 모습만으로 내가 평가되는 것 말이다. 나를 너무 규정짓고 싶으면 속으로 평가하고 간직하든가.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는 타인에 대한 ‘자기 평가’는 꼭 팩트처럼 공유된다. 이 ‘평가 에러’가 공유되면 수많은 오해를 낳고 관계를 긴장시킨다. 쉬운 시작이 어려워지고 편한 관계는 불편한 관계가 된다.


“아싸 구나 요즘 인싸들은 이런 거 해”

“불금인데 집이야? 친구도 없어?”

“그 나이시면 결혼은 하.... 셨.....?

“결혼 안 하셨구나, 비혼 이신가 부다”

“자존감이 낮으신 것 같아요, 이 책 추천해요”


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름 붙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싸와 아싸로 구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못하고 잘하고를 계산하고 높고 낮고를 측정하며 살다 보니 자꾸 나와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오해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대체 어디쯤인지, 그래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느라 오늘도 너무 피곤하다. 나 자신을 규정하기도 어려운데 타인을 어떻게 규정짓고 평가할 수 있을까.


타인에 대한 자기 마음대로의 규정을 우리는 “편견”이라고 부른다. 자기가 가진 편견이 세상의 전부인 사람과의 대화는 안 그래도 지친 내 영혼을 닳게 한다. 자신의 편견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결정짓는 사람의 대전제는 "내 말이 맞다" 이기 때문이다.


자기 말이 다 맞는 편견의 세상에서 남을 규정하며 사는 사람은 과감하게 패스해도 좋다.

니 마음대로 나를 판단하려면 부디 나를 패스하시길.






쓰는 아도르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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