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쥬스 Jan 17. 2021

며느라기와 B급며느리와 김지영을 쓴 분은 무사할까

며느리병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브런치에 쓰기까지 참 많이 고심했습니다. 이 매거진에 글을 올릴 때면 가끔 살얼음판을 딛는 기분일 때가 있습니다. 남편도 제 글을 보니까요. 그래서 다른 글을 쓸 때보다 정말 많이 고심해서 문장을 고르지만 어떤 날은 종일 기분 상해하며 화를 내는 날도 있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화를 내면 저도 말하죠. 진짜 있는 그대로 한 번 써볼까?


물론 있는 그대로 다 쓰지 못했습니다. 이 글이 공개됨으로 인해 남편도 일부 상처를 받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풀어내서 한번쯤은 그동안 저희 결혼생활에서 문제가 되어왔던 우리 부부의 문제이자, 대한민국 부부의 결혼과 착한 며느리병 관련 문제를 정리하고 극복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며느리병 매거진을 브런치북으로 바꾸면서 어느 글을 서두에 둘까 꽤 많이 고민했습니다. 꽤 긴 기간 글을 쓰면서 어떤 글은 처음 글을 시작했던 방향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어떤 글은 온통 하소연과 넋두리에 지나지않는 글에 그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남편과 좀 더 자세히 부부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다투기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름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거든요.


브런치 독자님들께 응원도 위로도 많이 받고 왜 그리 바보같이 사냐는 질책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어찌되었든 어느 형태의 이야기든 다 자기일처럼 공감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기에 마감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일처럼 속상하다 느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참 많이 힘이 되었습니다. 


이 브런치북이 다른 위기 부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2016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19년 영화화 되면서 그 기간 내내 페미니즘 소설 또는 영화라는 난리를 견뎌야 했습니다. 이 책을 감명깊게 봤다고 말한 여자 연예인은 가루가 되도록 까였고 이 영화를 봤다 하는 여자들에게는 니들이 페미니즘의 선두주자냐며 비아냥이 쏟아졌습니다.


참 이상한 현상이었습니다. 도대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왜 이리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기나긴 역사 내내 여성들이 받은 차별대우너무 컸고 그에 대한 보상요구가 아닌, 이제라도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찾겠다는 여자들의 요구가 그렇게 꼴보기싫은 일인지...  


남편은 이 책과 영화를 쳐다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같이 좀 보자 했더니 '되게 재미없네' 라고 하고 티비에서 영화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아, 이 때 알았어야 했는데. 내 남편 역시 가부장제가 학습된 연령대의 사람이라 저 내용이 불편하다는 것을.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보면서 남편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꼈는지 얘기도 하고 토론도 해 보고 싶었는데 정말 단 한 번도 저와 이런류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댁문제로 넌더리가 날 정도로 싸운 우리 부부인터라 굳이 저 영활 보고 말해봐야 싸움밖에 더하겠나 싶었던 것입니다.


이 영화와 책의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은 참혹했습니다. 영화와 책을 보고 감상평을 남겼더니 페미니스트라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이 되돌아오는 것이 과연 정상인 것일까요?  




B급 며느리는 2018년 다큐영화로 나오고 책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아주 파장이 컸습니다. 많은 며느리들이 나도 B급이 되어 기존 프레임을 깨겠노라 처절하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처절하게 욕을 먹었습니다.


또 다른 며느리 이야기인 며느라기는 2018년 웹툰으로 시작되어 2020년 드라마화 되었고 매 회 분노를 적립하고 있으며 많은 며느리들로부터 지상파 8시 방송을 요구받는 중입니다. 저도 제발 부모님들이 많이 보는 시간대에 무한반복으로 며느라기가 좀 나왔으면 싶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걸 보면 아마 다들 그러겠죠? "우리집은 안 저래. 요즘 저런 집이 어딨어? 저거 과장한거야"

https://news.v.daum.net/v/20210116110128909


하지만 많은 집들은 아직도 며느라기의 시댁과 유사합니다. 이 드라마에 대해선 오히려 너무 리얼해서 보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82년생 김지영과 B급 며느리 그리고 며느라기는 다 이 시대를 살아내는 불쌍한 며느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각자의 시선과 표현방법의 차이가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나라한  우리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조지던 댓글들은 B급 며느리의 흥행 기사에 달려와서 더 악랄해지더니 며느라기에 와서는 이런 시댁이 요즘 어딨냐며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82년생 김지영과 B급 며느리 김진영과 며느라기 민사린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습니다. 모든 며느리들은 공감하는데 그 외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는 정말 이상한 현상이죠? 아마 자신들이 며느리가 아니라서 그런걸까요? 아니면 알면서 불편한 현실은 피해버리는걸까요?




저는 저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표출한 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분들도 저 내용이 고심하고 정제해서 쓴 글인가 싶을 때도 있고요.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저 글을 쓴 분들은 과연 무사할까. 나는 그닥 무사하지 못한 것 같은데.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추궁하면 화를 냅니다. '그거 나 아니거든요?' 라면서. 그리고 찔리는 부분을 세게 찌르면 펄펄 뜁니다. 사실 내 일이 아니면 찔러도 화가 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82년생 김지영과 B급 며느리와 며느라기에 달려들어 욕에 가까운 댓글을 쓰는 사람들이 댓글 알바들일거라 생각지 않습니다.  이야기로 뼈 맞은 사람들이 욕이 가득한 댓글을 썼을 것입니다. 너무 세게 찔려서 그 찔림의 표출을 댓글로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 글을 쓴 분들은 저 컨텐츠로 활동을 하고, 큰 돈을 벌고 있으니 시댁에서 별말이 없을까? 아니면 나처럼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혹시 저 컨텐츠들로 인해서 이혼의 위기에 있지는 않을까? 하는 오지랖 넓은 생각도 듭니다. 왜냐면 저분들의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저 컨텐츠로 잘나가고 있다고 절대로 주위에 말하지 못할테고 다른 이유로 꼬투리를 잡아서 툴툴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니면 며느리들의 컨텐츠를 보고 깨달아서 좋은 시댁으로 거듭났을까요?


제가 며느리 이야기로 잘 나가고 있는 들에게 오지랖같은 이런 우려를 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건 어찌보면 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며느리 이야기를 쓰다 보면 먼저 남편으로부터 '굳이 왜 집안 이야기를 공개된 곳에 까발리냐' 라는 불만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불편한 내용이거나 동의하는 댓글이 달리면 달릴수록 그 정도는 심해집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는데,  남편의 허락과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건 참 의아합니다. 그리고 뭔가 민감한 사안이라도 나올라 치면 한바탕 싸울 일은 각오해야 하고요. 있는 그대로 다 써 봐? 하다가도 후폭풍처럼 오는 남편의 화를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럼 안 쓰면 되지 않냐고요? 이런 이야기를 쓸일이 없었다면 저도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만은 이렇게라도 숨쉬지 않으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니다. 아마 82년생 김지영이나 B급 며느리나 며느라기나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썼지 그 컨텐츠로 돈 좀 벌어보겠다고 쓴 글은 아닐겁니다.


사람들은 가족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누가 서울대에 갔다. 누가 1등을 했다. 누가 좋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등등. 자랑하고 싶으니 하는 집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며느리 이야기는 왜 집안 얘기를 밖에 떠벌리냐고 성화인 것을 보면 그 이야기가 어디 나가서 자랑할 일은 아니란 건데, 그럼 이야기를 한 사람을 타박하기 보다는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의 형태를 차용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소연한 것 같습니다. 시댁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없으니 우회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며느리가 시댁에 불편한 소리를 직진으로 하면 잘잘못을 떠나서 '싸가지 없는' 또는 '되바라진' 인간이 되니까요. 그리고 B급 며느리는 다행히 남편이 한 편입니다. 감독이었으니까요. (여전히 같은편이신가요?) 며느라기는... 지금 돈을 끌어모으고 있을테니 아마 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news.v.daum.net/v/20210116110128909

다들 힘겹게 견디고 있을겁니다. 시대가 여전히 잘못 되어서 이상한걸 이상하다고 말하니 '극성이다, 유난떨지 마라, 그럴거면 혼자 살지 결혼은 왜 했냐' 등등의 폭언을 들어야 하는 것이 며느리들의 현실입니다. 불편해서, 이상해서, 싫어서 고쳐달라 말했더니 '왜 쟤는 유난이냐?' 라는 반응이라니요.


며느리들도 할 말 습니다. 나는 며느리 하려고 결혼한 것이 아니고 그냥 내가 좋은 사람이랑 결혼을 한건데 갑자기 나에게 원치도 않는 며느리라는 굴레를 씌웠잖아요? 그럴거면 결혼을 왜했냐는 개드립은 사양하겠습니다. 며느리가 되려고 결혼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으니까요. 

 

잘못된 부분은 바뀌어야 하고 공론화 시켜서 수정해 나가는 것은 좋은 일인데 왜 꼭 가부장제와 고부갈등을 고쳐나가자고 하면 애먼 며느리들이 배로 두들겨맞아야 되는 일이 된건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다들 생각합니다.

'너만 맞추면 우리 가족이 두루 편안한데 어디서 저런 드센게 집에 들어와서. 남의 집 며느리들은 잘만 하는데 왜 넌 남들같지 않게 유난이니?'


그리고 며느라기의 무구영 같은 남편은 와이프한테 말합니다. "나도 최선을 다했어. 부모님 고집이 저런걸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이번 한 번만 그냥 니가 참으면 안돼?"


그 '이번 한 번만'이 대단히 여러번 벌어진 다는 것은 남편이 되면 매번 눈감고 모른척 하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최후의 한 방이 나옵니다. "우리 부모님 늙어가시는 것을 보는게 마음 아파"


많은 며느리들은 내 부모의 늙어감이 가슴 아프다는 남편의 말에 전의를 상실합니다. 여기서 더 시시비비를 따지면 며느리는 늙어가는 시부모에게 개기는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며느리는 늘 그렇게 나쁜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그렇게 며느리들은 홧병을 얻습니다.  부모님의 늙음에 나도 마음 아픈데...


그렇게 부조리함과 불합리함과 싸우는 과정에서 부부는 서서히 멀어져갑니다.


이런 과정을 지나고 나면 결혼 생활에서 '부부'는 없고 '며느리와 남의 편'만 남습니다.




수많은 가정이 고부갈등과 역할 딜레마로 흔들립니다. 부부싸움의 이유가 3가지인데 1위가 돈, 2위가 시댁, 3위가 자식이라고 하잖아요. 그 부부의 시작은 '너와 내가 사랑해서 행복한 우리의 가정을 만들고 싶어' 였는데 어느 순간 그게 아니게 되는거죠. 그럼 많은 이들은 남편에게 어차피 부모자식은 못 끊으니 너 하나 믿고 온 와이프 편을 들어서 네 가정을 지키라는 조언을 합니다.


이 조언은 매우 현명해 보이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남자들은 그렇게 해보려 하다가 부모님한테 욕먹고 싫은 소리 좀 듣고나면 그냥 무구영이나 무미영의 남편처럼 와이프가 그냥 숙이고 맞추길 바라게 됩니다. 나이든 부모님과 싸워서 바꾸느니 그냥 와이프랑 싸워서 대충 평화로워보이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과연 진짜 평화일까요?


82년생 김지영도, B급 며느리도, 며느라기도 무너지지 않고 싸워서 지킨 자신들의 가정 속에서 마음이 평안했으면 하는 바람은 모든 며느리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제 마음도 그러니까요. 그들이 열심히, 더 잘 싸워줘야 며느리인 나의 상황도 조금은 더 괜찮아 지지 않을까요. 그 전에 모든 며느리들이 지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