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물의 왕이 될 상인가
자기 새끼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엄마들을 볼 때
나는 극성이라 생각했다.
아직 직접 자식을
낳아보지 못한 사람 입장으로는
속으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 예쁘다 해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못생기면
예쁘다는 말은 안 나오지 않을까?
교회에서 유아부 교사를 하면서
요즘 느끼는 부모의 마음이 있다.
4-5살 아이들이라
가끔 부모님이
예배에 같이 참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부모님들의 시선을
관찰하게 된다.
부모님들은
아이가 어디에 있든
단 한 번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신다.
자신의 아이가
우는지 웃는지
조는지 말하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눈으로 귀로 담으려 하신다.
부모가 자기 자식이
가장 예쁜 건 정말
본능에 가까운 감정임을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도
지갑으로 키우는
자식이 하나 있다.
도도를 데려오기 전에는
특정하게 어떤 고양이가
귀엽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그저 '고양이'라는 존재가
귀엽고 사랑스러웠을 뿐이다.
하지만, 도도를
나의 자식으로 들인 이후
아무리 봐도 이 세상에서
도도만큼 귀여운 고양이가 없다.
인스타에서 예쁘다고
좋아요를 만개받는
인형같이 생긴 고양이도
그리 시선이 가지 않고
이제 막 태어난
귀여운 새끼 고양이도
그리 눈길이 가지 않는다.
난 그냥 도도가
제일 예뻐 보인다.
눈꼬리가 한껏 올라가서
사나워 보일지라도
새침하고 시크한 표정이
누구보다 도도해 보여 좋고
얼굴만큼이나 큼직하고
쫑긋한 귀도 마음에 든다
코에 점이 있어서
짜장이 묻은 것 같은
포인트도 귀엽고
무엇보다도
시크해 보이나
자주 멍청해지는
표정은 나를
무장해제 시킨다.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아님에도 도도가 자식만큼이나
사랑스럽고 예뻐 보이는 건
그건 아마도
도도와 함께 해온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하자고 다짐한 순간
난 그것을 '묘연'이라 이름 붙였고
내가 만들어 놓은 보금자리에서
다리 뻗고 잘 먹고 잘 자는
도도를 보면서
난 그것을 '행복'이라 정의 내렸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사랑은
보답을 받은 것이었기에
도도의 모습이 어떠하든
나는 그 대상을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존재보다도
애정하며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애정할 때 조건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혈육이어야 한다거나
매력적이어야 한다거나
이익이 되어야 한다거나
그렇지만
매일 도도에게
나의 작은 마음에 보답받는
소소한 일상으로 '애정' 생겼듯
생각보다 '애정'은
작은 마음만 있어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대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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