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이 결석했다. 영이는 그걸 행동 개시의 신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민준에게 슬며시 다가오더니 학교를 마치고 태영의 집에 가자고 말한다.
학교가 끝나고 둘은 평소 가는 길의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쪽으로 가는 거 오랜만이다.”
영이가 감상에 젖어 말한다.
“가 본 적 있어?”
의외라는 듯 민준이 묻는다.
“응. 원래 저쪽 동네에 살았어.”
호강 중학교에 전학 온 첫날, 교무실에서 영이와 마주친 일이 떠오른다. 불과 넉 달 전인데 기억 속의 영이가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것 같다.
“근데 왜 이사 왔어?”
“전도하려고.”
“아…….”
“그 여자를 못 견디고 아빠가 집 나간 게 3학년 때니까…….”
영이가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보더니 말한다.
“한 네 번째인가? 거의 매년 옮겨 다녀서 친구랄 게 없어. 어릴 땐 친구랑 멀어지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더라. 마음은 편해. 애초에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으니까.”
그 말 하나에 늘 옹골차게 보였던 영이가 어딘지 모르게 텅 비어 보인다. 안타깝다. 자신이 한국에서 칠십 년간 살면서 알게 된 걸 고작 열네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벌써 깨달았다니. 쓸데없이 빨리 배웠다.
“너는 왜 이사 다녀?”
영이가 묻는다. 민준은 여러 차례 이사 다녔다고 제 입으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으나 티가 난 모양이다. ‘먹이 구하려고’하고 영이처럼 솔직하게 밝히고 싶다.
지금이 제가 하고 다니는 ‘짓’을 털어놓을 절호의 기회인 것 같다. 그런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된다면 영이가 등을 돌릴 것 같다는 염려가 민준을 막아선다.
“아버지 때문에…….”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어 그렇게만 말한다. 하지만 영이는 잘못 알아듣고 다시 묻는다.
“아버지 일 때문에?”
“응…….”
그제야 영이가 캐묻기를 그만둔다.
어느덧 아파트 이름이 커다랗게 박힌 정문이 보인다. 정문 안쪽으로 높은 아파트가 불쑥불쑥 들어서 있다. 민준이 5학년 때는 강변인가, 강가인가, 하던 한글 이름을 영어로 바꾸고 나서 명품 아파트로 불리는 곳이다.
“아, 떨린다.”
그 말과 함께 영이가 배시시 웃어 보인다. 긴장한 영이의 모습은 처음 보는데 꽤 귀엽다.
“태영이한테 다 털어놓고 앞으로는 진짜 친구로 지낼 생각이야. 태영이는 나한테 진심으로 대해줬거든. 나도 그러고 싶어.”
그 말이 민준은 서운하다. 진심을 나눌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게. 자신은 영이에게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지만 구태여 묻지 않는다. 영이의 얼굴을 매일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아파트 정문을 지난다. 그러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어린이집도 있고, 편의점도 있고, 공원도 있고, 산책로도 있고, 심지어 분수까지 있다. 부지가 이렇게 넓은데도 영이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태영의 집을 찾아간다.
금세 도착한 103동은 유리문으로 막혀 있다. 영이가 문 옆에 달린 번호판을 누른다. 잠시 후에 “누구세요?”하고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둥근 렌즈에 대고 영이가 말한다.
“태영아, 나 영이야. 민준이랑 놀러 왔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진다.
“영이구나. 잠깐만.”
툭, 하고 소리가 끊기더니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1층에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린다. 오른쪽 집 문이 벌컥 열린다.
“어서 와.”
태영이 반긴다. 두 눈엔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앉아 있고, 볼은 움푹 패 있다.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생기가 없다.
“어머니는?”
현관에 들어선 영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묻는다.
“교회 가셨어.”
“아, 금요 예배 가셨구나.”
민준은 영이의 흡족해하는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 일이 순조롭게 풀릴 거라는 기대감에 찬 듯하다.
신발을 벗고 집 안에 발을 들인다. 그러자 태영이 복도를 가로막고 옆에 달린 문을 연다. 문틈으로 세면대와 변기가 보인다.
“얘들아. 미안한데 손발 좀 닦고 와 줄래?”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태영이 부탁한다. 민준과 영이는 군말 없이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손발을 씻는다.
화장실에서 나와 거실로 들어서자 익숙한 싸늘함이 민준을 휘감는다. 영이네서 봤던 십자가들이 집안 곳곳에 있다. 거실 발코니로 뛰쳐나가 호강 중학교 일대를 내려다보며 더운 바람을 쐬고 싶지만 꾹 참는다.
“얘들아. 방에 들어가 있어.”
민준과 영이는 먼저 태영이 가리킨 방에 들어간다. 이 방도 영이의 방처럼 어지러울 정도로 하얗다. 책장, 책상, 옷장, 침대까지 모두 다. 침대 프레임은 최근에 새로 샀는지 비닐이 벗겨져 있지 않다.
둘은 바닥에 앉는다. 잠시 후에 태영이 쟁반 하나를 들고 와 바닥에 놓고 말한다.
“이 쟁반도 너희 어머니가 주신 거야.”
고전 명화가 그려진 쟁반에 비스킷과 과일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너도 먹어.”
영이가 방울토마토를 포크로 찍어 건넨다. 하지만 태영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난 금식 기도 중이야.”
“며칠 짜리야?”
영이가 묻는다.
“칠 일.”
태영이 답한다.
“지금 며칠 째야?”
“오 일.”
영이가 눈을 모로 뜨고 잠시 생각하더니 조그맣게 “월요일부터구나.”하고 혼잣말한다. 그러고는 다시 태영에게 묻는다.
“다음 주엔 학교에 나올 거야?”
“잘 모르겠어. 엄마가 허락해 줄지.”
영이의 양 볼이 꿈틀하면서 어금니 부근이 불쑥 튀어나왔다가 들어간다. 영이가 입을 다물자 방 안에 불편한 정적이 흐른다. 일 분 정도를 그렇게 있다가 영이가 침묵을 깬다.
“태영아…….”
“왜?”
태영이 입꼬리만 겨우 올려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힘없이 뜬 눈이 흐리멍덩하다.
“아니야.”
영이가 시선을 쟁반 쪽으로 돌린다.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방에 차오른다. 민준은 비스킷을 하나 씹으면서 영이와 태영을 번갈아 훑는다. 영이는 누가 봐도 죄를 짓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고, 태영은 물에 젖은 곰 인형처럼 축 처져 있다. 이 일에 껴들고 싶지 않지만 여기서 빨리 나가려면 중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윤태영. 나 물 좀.”
태영이 바닥에 손을 짚고 겨우 일어선다. 태영이 방을 나가자마자 민준이 영이에게 묻는다.
“내가 말해 줄까?”
“아니야. 내가 벌인 일인데 내가 해결해야지.”
금세 태영이 물 한 잔을 들고 온다. 목이 마르지 않지만 민준은 물컵을 받아 마시면서 영이의 안색을 살핀다. 영이가 큰 결심을 한 듯 숨을 길게 뿜어낸다.
“태영아.”
영이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낮고, 무겁고, 비장하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뭔데?”
“나, 네가 이렇게 될 걸 알면서 우리 교회에 초대했어.”
태영은 말없이 듣기만 한다. 영이가 이어서 말한다.
“우리 엄마가 너희 엄마한테 선물 준 것도 다 꼬시려고 한 거야. 거기 깊이 빠지면 나올 수 없어. 사람들 죄다 엮여 있고 심지어 감시까지 해. 지금 나와야 해.”
“그게 무슨 말이야, 영이야. 무서워. 하지 마.”
태영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영이가 태영의 양어깨를 움켜쥐고 거칠게 흔들며 소리친다.
“거기 사이비라고! 그것 때문에 네가 이 개고생하는 거라구! 나 때문에!”
태영은 멍한 얼굴로 앉아 있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영이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민준은 그 모습을 보는 게 괴롭다. 하지만 영이를 믿고 기다린다.
“영이야.”
태영이 나지막이 영이를 부른다. 친절이 배어 있던 그 목소리가 아니다. 잘 벼른 도끼처럼 날카롭고 묵직하다. 생기 없던 눈동자에는 잔뜩 힘이 들어 있다. 그 눈으로 영이를 매섭게 흘겨본다.
“그건 절대 입 밖에 꺼내선 안 되는 말이잖아, 영이야. 너 우리 아버지 말씀을 어기는 거야?”
“뭐……?”
영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너 믿음이 이렇게 약해서 어쩌려고 그래. 기도방에서 기도 좀 하고 갈래? 힘을 길러서 뱀파이어를 잡아 죽여야지.”
이어서 태영이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낸다.
“나 승모를 봤었어. 학교 뒷산에서. 수풀 뒤에서 웬 성인 여자랑 껴안고 있는 거야. 처음에는 야리꾸리한 짓을 하는 줄 알았다니까? 멀찍이 떨어져서 그 장면을 지켜봤어. 학교에서 좀 놀릴 생각이었거든. 조금 뒤에 여자 혼자만 수풀에서 나왔어. 한참을 기다려도 승모는 나오지 않았어.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가까이 다가갔지. 거기에 승모가 누워 있었어. 육포처럼 쪼그라든 채로.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승모인 줄도 몰랐을 거야. 그 여잔 마귀야. 마귀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어. 아버지의 이름으로 잡아서 죽여버릴 거야. 너도 같이 할 거지?”
태영이 웃는다. 이번엔 눈과 입, 모두가 활처럼 휘어있다.
“가자.”
민준이 일어선다. 영이는 돌처럼 굳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민준은 영이의 팔을 잡아끌어 억지로 일으킨다.
태영이 거실까지 따라 나온다. 빠른 말로 기도를 하자느니, 예배를 드리러 가자느니, 그딴 말을 지껄인다. 민준은 다 무시하고 도망치듯 아파트를 빠져나온다.
103동의 유리문을 빠져나올 때까지도 영이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민준은 한시라도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포기하고 근처 편의점으로 간다.
보라색 파라솔이 설치된 테이블 옆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영이를 앉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과일음료 두 개를 사서 나온다.
영이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민준은 그런 영이에게 음료를 건넨다. 영이는 그것을 양손으로 감쌀 뿐 마시지 않는다. 보다 못한 민준이 병뚜껑을 열어서 건넨다.
“마셔.”
“나 때문이지?”
“아니야.”
민준이 단호하게 부정해 보지만 영이의 얼굴이 더 일그러진다.
“태영이가 저렇게 된 거 다 나 때문이잖아. 밝고 활기찬 애였는데. 내가 전도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전도만 하지 않았어도…….”
결국 말끝에 울음이 섞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민준은 만두를 묻던 날이 생각난다.
피를 다 빨린 만두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껍질만 남았다. 민준은 그것을 제 손으로 묻었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방에 틀어박혀 만두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짧은 시간 동안 몇 가지를 후회했는지 모르겠다. 집에 혼자 두지 않았더라면. 집에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말을 걸어도 아는 체하지 않았더라면. 거기로 전학 가지 않았더라면……. 후회 끝에 다짐했다. 다시는 친구를 사귀지 않겠노라고.
영이가 엎드려 울기 시작한다. 잇새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가 민준의 마음을 쓰라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이가 이 일로 상처 입고, 더 텅 비어 버릴까 봐, 또다시 자신의 한계를 그어버릴까 봐 그게 걱정이다.
영이가 더 이상 성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어른 흉내도 내지 말고 무엇이든 가져보려고 욕심냈으면 좋겠다. 놀이터의 애들처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시끄럽게 굴었으면 좋겠다.
민준은 영이의 옆으로 의자를 옮겨 앉는다. 가늘게 떨리는 영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한참을 그렇게 있는다. 노을이 지고, 곳곳에 설치된 인도등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한참을 운 영이는 시름에 잠긴 얼굴로 집으로 향한다. 퉁퉁 붓고 벌게진 눈과 앙다물어진 입술이 민준을 안절부절못하게 한다. 영이만큼이나 복잡한 마음으로 걸으면서 민준은 영이의 옆을 지킨다.
영이의 집이 가까워진다. 민준은 아랫입술을 연신 뜯는다. 영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만두를 떠올리며 자책하던 민준에게 간절하게 필요했던 말이다.
하지만 민준에게 아무도 해주지 않은 말. 철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영이에게 민준은 그 말을 건넨다.
“네 탓이 아니야.”
민준은 힘을 주어 다시 한번 말한다.
“네 탓이 아니야. 그건 우리가 한 짓이야. 우리 탓인 거야. 나도……. 나도…….”
영이가 민준을 올려다본다. 그 눈동자를 통해 민준은 상처 입은 영이의 마음을 읽는다. 거기에 대고 자기의 죄를 밝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민준은 결국 말을 멈춘다.
영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대로 집으로 들어간다. 유독 작아 보이는 영이의 뒷모습에 대고 민준은 빌어 본다.
영이가 끝없는 죄책감에 매몰되지 않게 해달라고. 28년 전의 민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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