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서휘 Oct 02. 2024

연재소설_13화 그 여자가 알아버렸어.

영이를 걱정하며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학교. 영이의 자리가 비어있다. 조회에 들어온 담임은 좌석을 눈으로 스윽 훑고 나서도 아무 말이 없다. 


담임이 나가고 민준은 출석부를 들춰본다. 영이의 이름 옆에 질병결석을 뜻하는 동그라미 표시만 있을 뿐 더 이상의 정보가 없다.


금요일에 밖에 오래 있어서 몸살이 난 건가? 아니면 주말 동안에 사고라도 난 건가?


민준은 학교를 마치고 영이의 집 앞에 가 본다. 거대한 철문이 굳건하게 닫혀 있다. 고개를 비죽 빼 안을 살피려고 하지만 높다란 담장이 가로막는다.


다음날도 영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벌써 이틀째다. 영이가 없는데 아이들은 웃고 떠들고 밥을 먹는다. 영이의 빈자리를 보고도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는다. 담임조차 아무 말이 없다. 


기가 막히게 빼낸 젠가 블록처럼 영이가 없어도 세상은 너무나도 잘 돌아간다. 아니, 영이라는 아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껏 영이와 보낸 시간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이 아닌가 싶다. 백사십 년을 살면서 이렇게 혼란스러운 적은 처음이다.


민준은 성마른 손으로 출석부를 들춰본다. 학생 명단에 영이의 이름이 분명히 있고, 교시마다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다. 잠깐 안도한다. 


하지만 이내 영이가 말도 없이 이틀 연속이나 결석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냥 몸살감기가 걸렸겠거니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이가 오지 않은 수백만 가지 이유를 떠올리느라 머리가 터질 테니까. 


포기하고 출석부를 덮는다.


잠깐만.


민준은 덮었던 출석부를 황급히 다시 편다. 월요일까지만 체크되어 있던 동그라미가 금요일까지 늘어나 있다. 영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금요일. 토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총 칠 일이다. 칠 일. 태영의 집에서 영이와 태영이 나눈 대화가 번뜩 생각난다.


‘난 금식 기도 중이야.’

‘며칠 짜리야?’

‘칠 일.’


민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눈앞에 태영의 핼쑥한 얼굴이 그려지고 귓가에는 영이 엄마의 독기 가득했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영이가 어딘가에 갇혀 금식 기도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길로 교무실로 달려간다.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며 타자를 치는 담임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불쑥 묻는다.


“영이는 왜 안 나와요?”


담임이 화들짝 놀라며 민준을 바라본다. 눈앞에 있는 아이가 민준인 걸 알고는 눈이 더 동그래진다.


“민준이구나. 영이는 아프대.”

“누가 그랬는데요?”

“어머니한테 연락이 왔어.”


진짜 엄마 맞아요? 하고 따지려다가 멈춘다. 진짜 영이의 엄마인지, 아니면 중문에 서 있던 여자인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면 담임이 그것까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언제 온대요?”

“잘 모르겠네. 일단 이번 주까지는 집에서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


영이가 금요일까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건 확실하다.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영이 번호 좀 알려주세요.”

“음…….”


담임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컴퓨터를 뒤적인다. 화면을 보며 노란색 포스트잇에 핸드폰 번호를 적는다.


“요새는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함부로 알려주면 안 되는데 민준이가 요새 영이랑 자주…… 어머!”


담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준은 포스트잇을 낚아채듯 움켜쥐고 교무실 빠져나온다.


민준은 발을 덜덜 떨면서 칠판을 노려본다. 그렇게 하면 마치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라도 한다는 듯이. 마음 같아선 조퇴를 하고 싶지만, 조퇴를 하려면 아버지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에게 연락이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하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뛰어서 정문을 나선다. 미친 듯이 공중전화를 찾는다. 분명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은데 막상 필요하니까 보이지 않는다. 


학교 주변을 한 시간 동안 뒤지다가 지하철역으로 두 정거장 떨어져 있는 큰길에서 공중전화를 발견한다. 서둘러 동전을 넣고 영이의 번호로 전화를 건다. 하지만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영이의 집으로 가서 철문 앞을 서성인다. 벨을 누를지 말지 고민한다. 영이의 안위를 확인하고 가야 일상생활이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벨을 눌러 영이를 찾는 순간 악마 같은 그 여자가 영이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른다. 자기의 섣부른 행동 때문에 영이가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영이에게 안부 인사라도 남기고 싶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모가지를 꺾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산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심도 없고, 작은 화면 속에 갇혀 산다. 그 덕에 사냥이 한결 수월해졌다며 아버지가 멍청한 기계라고 불렀었다. 


그 멍청한 기계가 오늘만큼은 간절하다.


거대한 집을 등지고 걷는다. 그러다가 깨닫는다.


아! 닌텐도!


민준은 달린다.


집에 들어와 잠든 아버지가 깨지 않게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간다. 주룩주룩 땀이 흐르는데 선풍기보다 닌텐도를 먼저 켠다. 


게임에 접속해 영이의 집으로 간다. 매일 다르게 방을 꾸미는 영이의 집이 지난주와 다른 게 없다. 

재빨리 캐릭터를 움직여 게임 속 책상에 놓인 달력을 본다. 영이의 접속 기록이 뜬다. 마지막 접속 시간은 지난주 금요일 저녁 7시 32분. 영이가 그 좋아하는 게임을 나흘이나 접속하지 않았다.


민준의 머리가 빠르게 돌기 시작한다. 그건 닌텐도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란 뜻이고, 그렇다면 영이가 어딘가에 갇혀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 사실일 확률이 높다. 그 여자가 영이를 감금한 것이다! 순간 머리끝까지 분노가 일지만 금세 그보다 더 큰 무력감이 민준을 덮친다.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아무것도 없다. 민준은 의기소침해져서 닌텐도 속 영이의 집 안을 의미 없이 맴돈다. 그러다가 달력 옆에 놓인 방명록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자 닌텐도 화면이 노트 모양으로 바뀌고 자판이 생겨난다. 무슨 말을 남겨야 하나 고민하며 닌텐도 화면 위에서 두 엄지를 빙빙 돌린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마저도 부질없게 느껴져서 방명록을 끈다. 이어서 닌텐도를 끄려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결국 양 검지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며 메시지를 남긴다. 이렇게라도 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     


토요일에는 아버지가 집을 나가더니 일요일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흔치 않은 행운이었으나 민준의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좋은 점은 있었다. 마음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 


종일 영이의 흔적을 찾아 게임 속 마을을 헤맸다. 그럴수록 영이가 더 그리워졌다. 그리움을 참기 힘들 땐 영이의 진짜 집으로 가서 그 앞을 기웃거리다가 돌아왔다.


월요일에 학교에 가자, 기적처럼 영이가 자리에 앉아 있다. 전학 온 첫날처럼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찐빵처럼 뽀얗고 둥글던 볼이 움푹 팼다. 눈자위는 쏙 들어가서 병색이 짙은 환자 같다. 


민준은 분노가 치민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영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지만 꾹 참는다.


종례를 마치고 영이가 집에 같이 가자며 다가온다. 그것만으로도 민준은 눈물이 날 것 같다.


민준은 영이의 보폭에 맞춰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뜨거운 볕이 맹렬한 기세로 민준을 할퀸다. 하지만 수척해진 영이가 더 걱정이다. 민준은 캡 모자를 벗어 영이에게 씌운다. 영이가 손을 내저으며 벗으려고 하지만 단호한 손길로 모자를 넘긴다. 그러고는 모르는 척 묻는다.


“어디 아팠어?”


“기도실에 감금당했어.”

영이가 솔직하게 대답한다.


“왜?”

“그 여자가 알아버렸어.”

“뭘?”

“CCTV로 다 본 모양이야. 내가 너랑 집 앞에서…… 아니다. 이건 됐다.”

“뭔데 그래?”


“아니야. 무시해.”

영이가 완강하게 고개를 젓고는 이어서 말한다.

“태영이한테 찾아간 것도 알더라고. 무슨 말 했는지도 당연히 알았겠지. 바로 기도방에 잡혀들어갔어.”


“죽여버리겠어.”

민준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다. 그러자 영이가 민준의 손을 잡고 달랜다.


“진정해, 민준아. 나 스무 살 될 때까지는 그 여자가 필요해.”

민준은 화를 누그러뜨린다. 영이가 그렇게 말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나, 너 봤어.”

영이가 고개를 돌려 민준을 바라본다. 야윈 얼굴로 여릿한 미소를 짓는다. 빛이 나게 아름다웠던 미소가 사그라든 게 마음 아프다.


“어디서?”

“CCTV로. 그 여자가 보여주더라고. 네 친구 왔다면서. 매일 찾아왔지?”

“응…….”


벨도 누르지 못하고 서성이기만 하는 바보 같은 모습을 영이가 봤을 거라고 생각하니 어딘가에 숨고 싶다.


“고마워.”

영이가 또 미소 짓는다.


“뭐가…….”

“날 찾아줘서.”

“아무것도 못 했어.”


바보같이, 이 말은 속으로 삼킨다.


“내일부턴 계속 오는 거야?”

“응. 원래 열흘짜리인데 그 여자가 시킨 거를 다 해버렸거든.”


영이가 입꼬리를 겨우 들어 올려 웃는다.


“뭘 시켰는데?”

“성경 백 장 쓰기. 열 장 외우기. 그리고 그동안 전도 실패한 애들한테 다시 전화 돌리기.”


그게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영이를 힘들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인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 무력함이 민준을 또다시 분노케 만든다.


“그래도 좋다.”

영이가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뭐가…….”

“너랑 집에 가니까.”

“…….”

“야! 너 왜 그래? 울어?”


민준이 소매로 눈물을 훔쳐낸다.


“안 울어.”

“눈이 벌건데? 남자 새끼가 왜 울고 난리야.”


영이의 집 앞에 도착한다. 굳게 닫힌 철문이 감옥의 쇠창살처럼 느껴진다.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갈 수도 없다. 


집에는 영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악마가 산다. 그런 아버지를 두었다는 게 원망스럽다.



표지: Image by Rabia029 from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