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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신드롬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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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휘 Sep 17. 2024

[연재소설] 1. 과민성 대장 증후군(1)

이모탈 호텔에서 고작 십 분을 걸었는데 첨단의 빌딩들은 온데간데없고, 낮고 낙후한 건물들이 들쭉날쭉 들어선 동네가 나타났다. 어디선가 음식물이 썩는 듯한 시큼한 냄새가 풍겨 왔다.


왜 두 사람을 따라나섰지? 송이가 등에 멘 총에 시선을 둔 채 동엽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총에 맞고 무언가에 홀린 게 분명했다.


약효가 떨어졌는지 아랫배가 콕콕 쑤셨다. 경험상 십 분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대참사가 날 터였다. 구레나룻을 따라 흐르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치고 동엽이 물었다.


“사무실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앞서 걷던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렸다. 송이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동엽을 쏘아봤다. 기가 죽은 동엽이 시선을 피하려는데,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눈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옆에서 지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동엽 씨, 이제 도착했어요.”


따라서 고개를 든 동엽의 입이 쩍 벌어졌다. 눈앞에 언제 지어졌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4층 건물이 

서 있었다. 외벽에는 때가 낀 흰 타일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열 개당 하나씩은 이가 나가 있었다. 더욱이 간판에 파란색 궁서체로 ‘신드롬’이라고 적힌 글자는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아, 그렇군요. 위치도 알았으니 내일 다시 올게요.”


동엽은 두 사람을 향해 꾸벅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화장실 상태가 어떨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아무리 급해도 비데가 없으면 쌀 수 없었다.


“동엽아!”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동엽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가 “엄마야!”하고 양손을 번쩍 들었다.

검은 총구가 자기의 미간을 노리고 있었다. 비록 장난감이지만 규격도 같고, 총신에 정교하게 만든 스코프까지 달려 있어서 얼핏 보면 실제 총처럼 보였다.


“들어가자.”


송이가 총구를 움직여 사무실 입구를 가리켰다. 동엽은 순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 여자는 쏜다면 쏘는 여자니까.


한 시간 전에도 동엽이 일하는 이모탈 호텔에 불쑥 나타나서는 동엽의 궁둥이에 냅다 총을 갈겼다. 동엽은 죽는 줄 알고 연회장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지만 총의 위력은 벌침에 쏘인 것처럼 따끔한 정도였다.


사무실은 4층이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탓에 계단을 오르는 게 만만치 않았다.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헉헉댈 때마다 코안에 들어차는 음습하고 퀴퀴한 곰팡내였다. 3층 층계참까지 올랐을 땐 창문으로 뛰어내릴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한 층을 더 올라 파란 철문을 열고 사무실 안에 들어서자 그 생각이 복통과 함께 싹 사라졌다.


동엽은 귀신에 홀린 듯 사무실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엔 책상 네 개가 모서리를 맞대고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책상 중에서 왼편에는 연식이 되어 보이는 컴퓨터와 두 대의 모니터가 놓여 있었고, 오른편에는 투명한 본체 케이스 안에 13세대 CPU와 4090 그래픽카드가 조립되어 있었다. 좌우 위아래로 설치된 네 대의 모니터까지, 동엽이 늘 소망하던 것이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LED 등에 꿈에 잠긴 듯 몽롱한 동엽의 얼굴이 반짝였다.


“야, 비켜!”


송이가 입고 있던 검정 롱 가죽재킷을 의자에 걸고 마우스를 흔들었다. 모니터 화면이 켜졌다.


“동엽 씨, 이리 오세요.”


지후가 현관 옆에 놓인 소파로 불렀다. 동엽은 송이가 앉은 왕좌처럼 우뚝 솟은 게이밍 의자를 아쉬운 듯 힐끔 쳐다보고는 소파로 갔다. 지후가 등받이 없는 의자를 끌고 와 동엽의 맞은편에 앉더니 노란색 정부파일을 펼쳤다.


“동엽 씨, 이제 계약서를 쓸 건데요, 그전에 뭐 하나 물어볼게요. 중요한 질문이니까 잘 대답하셔야 해요.”

“네.”

“이 일을 왜 하려고 하는 거예요?”


동엽은 이게 뭔 개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지후를 쳐다봤다. 호텔 연회장을 파티룸으로 꾸미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일자리를 제안한 건 자기들 아닌가? 하지만 지후의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동엽은 등을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우선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그리고요?”

“돈도 벌 수 있고…….”

“그게 다예요?”


지후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얼굴을 보자 불현듯 올봄에 면접을 본 순간이 떠올랐다. 가운데 머리가 벗어진 면접관이 심기가 불편한 듯 연신 고개를 비틀었었다. 그에 반응해 아랫배에서 강렬한 신호가 휘몰아쳤고, 동엽은 면접장에서 뛰쳐나갔다.


‘설마, 여기서도 까이는 거야?’


그날처럼 아랫배가 욱신거려 왔다. 동엽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후가 명함을 주면서 설명하기로 증후군을 겪는 사람을 찾아가서 도움을 줄 사람을 뽑는다고 했다. 자기만큼 증후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어딨단 말인가.


“……왜, 왜요. 저 잘할 수 있어요.”

“그게 아니고, 중간에 나가버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동엽은 사무실을 둘러봤다. 송이의 맞은편 책상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다른 직원은 없는 모양이었다. 입꼬리가 슬몃슬몃 올라가려는 걸 억지로 내리고 동엽은 통통한 다리를 억지로 꼬았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도망치지 않을게요.”

“네? 뭔데요?”


지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엽은 둥글게 튀어나온 아랫배에 얹은 손을 들어 컴퓨터 쪽을 가리켰다. 손길을 따라 고개를 돌린 지후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씁, 저 누나는 힘들 걸요.”

“누나요?”


지후가 얼굴을 동엽의 귀에 밀착하고 속삭였다.


“송이 누나가 하얗고 말라서 연약해 보이죠? 절대 속으면 안 돼요. 아까 봤잖아요. 동엽 씨한테 총 쏘는 거.”


그러더니 끔찍한 생각이 떠오른 것처럼 몸서리를 쳤다.


“아뇨. 저 사람 말고요.”

“그럼요?”


동엽이 송이의 살짝 옆을 가리켰다.

“그 옆에 총. 저거 갖고 싶어요.”

“총이요?”


“안 돼, 이건!”

송이가 의자에 걸어둔 총을 품에 안았다. 그러더니 두 눈썹을 치켜세우고 동엽에게 쏘아붙였다.

“너, 이게 뭔지 알고 말하는 거야?”


“그럼요. M4A1. 미 육군에서 M4의 3점사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서 완전자동기능을 추가한 모델로 휴대성을 인정받아…….”


“아니.”

송이가 말을 잘랐다.

“이건 스마일 건이야.”


그러고 보니 증후군 증상을 완화해 준다며 송이가 쏜 총을 맞고 동엽은 의지와 상관없이 실실거렸다. 탄에 마약 성분이 든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마약은 아니니까 겁먹지 마.”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송이가 말했다. 그러고는 고갯짓으로 정부파일을 가리켰다.


“계약서 써. 그럼 총 개조해 줄게. 네가 원하는 모델로.”

“와! 그게 돼요?”

동엽이 두 눈을 똥그랗게 뜨자 지후가 흥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천재 과학자 최송이 몰라요? 여덟 살에 카이스트 입학! 열 살에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자문! 열두 살에…….”

“야, 윤지후! 안 닥쳐?”

“전 세계가 탐내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저 새끼가!”


송이가 신고 있던 슬리퍼를 집어 던졌다. 지후는 날렵한 몸짓으로 슬리퍼를 피하고는 약 올리듯 책상을 빙글빙글 돌았다. 지후를 잡으려던 송이는 얼마 못 가 두 무릎을 짚고 헉헉댔다.


“저 자식 때문에 괜히 힘 뺐네. 하, 오늘도 작업할 게 산더미인데. 야, 똥엽! 빨리 계약서 쓰고 이리 와 봐.”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스트레스란 말이에요.”


동엽이 뾰로통한 얼굴로 계약서를 읽었다. 일주일에 40시간만 근무하면 될 뿐 정해진 출퇴근 시간은 따로 없었다. 계약 기간은 1년마다 갱신, 활동 지원금 명목으로 매달 백육십만 원이 지급된다고 쓰여 있었다.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서명하고 동엽은 송이에게 다가갔다. 송이가 구석에 놓인 관처럼 생긴 하얀색 기계 앞으로 동엽을 데리고 갔다. 기계 옆면에는 손바닥만 한 글씨로 ‘정신 능력 변환기’라고 적혀 있었다.


“안에 들어가.”


송이가 양손으로 기계의 문을 들어 올렸다. 태닝 기계처럼 벽면에 줄줄이 달린 등이 파란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동엽이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갑자기 태닝……?”

“갑자기 반말?”

“아, 아니에요. 이게 뭐 하는 거예요?”


“전자기파를 쏴서 네 정신 에너지를 자극 시킬 거야. 활성화된 에너지를 액체로 변환해서 물약을 만들 거고.”


동엽이 기계 안으로 들어가 어깨를 동그랗게 말고 양손을 배 위에 모았다. 요새 살이 더 불어서 그런지 안이 비좁았다. 밖에서 송이가 무언가를 조작하는 소리가 들리고 위잉—하며 팬 돌아가는 소리가 잇따랐다. 그 소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송이가 물었다.


“이름!”

“이동엽이요.”

“나이!”

“스물네 살.”

“과민성대장증후군, 맞아?”

“네.”

“그 증상이 왔을 때를 떠올려.”

“네?”


대답 없이 기계 문이 닫혔다. 온통 파란 불빛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 말고는 적외선을 쏘는 것처럼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이게 뭘 자극한다는 거야…… 동엽은 그렇게 의심하면서도 송이가 시킨 대로 배가 아프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매운 걸 먹었을 때, 많이 먹었을 때, 긴장했을 때…….


띠디디디― 띠디디디―. 


알람 소리에 동엽은 눈을 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깜빡 존 모양이었다. 기계의 문이 열렸다. 환한 불빛과 함께 빙긋 웃고 있는 지후의 얼굴이 보였다.


“수고하셨어요.”

지후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기계에서 빠져나온 동엽은 크게 기지개를 켜고 몸을 좌우로 비틀며 스트레칭을 했다.


“정신 차려. 이제 테스트할 거야. 네 물약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송이가 태블릿에 무언가를 적으며 말했다.


“능력이요?”

흐리멍덩한 동엽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이거 마셔요.”

지후가 손가락 마디만 한 약병을 건넸다. 

병 안에서 초록색 액체가 출렁였다. 마시면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색깔이었다. 동엽은 얼굴 잔뜩 구긴 채 물었다.


“부작용은 없어요?”

“아직 신체에는 없어요.”

“신체에는? 다른 건 뭐가 있는데요?”

“어서 마셔요.”

지후가 막무가내로 약병을 들이밀었다. 


괴상한 액체가 동엽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목 넘김이 물과 똑같고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괜히 속이 느글거렸다. 동엽은 얼굴을 찡그린 채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요?”

“정신 능력 변환기는 신경을 많이 쓸 때 발생하는 정신 에너지를 액체로 변환하는 기계예요. 액체를 마셨으니까 다시 그것에 대해 떠올리면 능력이 발휘돼요.”

“그것이요?”

“동엽 씨의 증후군. 배가 아픈 상황이라든가, 똥 싸는 순간이라든가…….”

“아아.”


 동엽이 잘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고 평소처럼 끙, 하고 힘을 주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정신을 잃었다. 


“뭐야?”


지후가 소리쳤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소파에 앉아 태블릿 화면을 넘겨 보던 송이가 고개를 돌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야? 어디 갔어?”

“동, 동엽 씨가…….”


동엽이 뿅 하고 사라졌다. 백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거구가 단숨에 사라진 것이다.


“이동엽! 이동엽!”


송이가 동엽의 이름을 외치며 정신 능력 변화기 주변을 뒤졌다. 온몸이 굳어 멀뚱히 서 있는 지후를 밀치더니 변환기에 단 디스플레이를 눌러 가며 설정값을 확인했다. 하지만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듯 방문을 죄다 열어젖히며 동엽을 찾기 시작했다. 


그제야 지후도 정신을 차리고 동엽을 찾아 나섰다. 목청 높여 이름을 부르면서 사무 책상 뒤편에 마련한 부엌과 화장실까지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어디에도 동엽은 없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다시 변환기 앞으로 돌아온 송이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이 눈동자가 사방으로 구르고 입술은 계속 뻐끔거렸다.


지후는 말없이 송이를 지켜봤다. 송이는 이제 1인극을 하는 배우처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두 눈동자가 공포와 자괴감으로 물들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누나, 핸드폰으로 전화해 볼게요.”


1년간 신드롬에서 지내면서 처음 겪는 상황에 지후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송이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의연한 척하며 계약서에 적힌 동엽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왜 안 받는 거야…….”


검지 손톱을 깨물며 지후는 한 번 더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역시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는 여자의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지후는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눈으로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 어느새 소파로 자리를 옮긴 송이가 얼굴을 양손에 파묻고 있었다. 원래도 하얀 손이 유난히 더 창백하게 보였다.


그간 여러 사람이 물약을 마셨다. 그 결과 어떤 주부는 십 분간 몸이 둥실둥실 뜨기도 했고, 한 여고생은 손짓으로 물건을 자를 수 있었다. 아무 변화가 없다며 집에 돌아갔지만 이틀간 잠을 못 잤다고 툴툴댄 회사원도 있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없었다.


위잉— 하고 기계들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지후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누나가 더 이상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 제 탓이었다. 동엽 씨에게 물약을 억지로 마시지 않게 했더라면, 아니 애초에 호텔에서 명함을 건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오늘 아침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송이의 컴퓨터 옆에 놓인 캐비닛으로 시선이 갔다. 저 안에 샘플 박스가 있을 테고 거기엔 지후의……. 


그때, 적막을 뚫고 띠리리링— 벨소리가 울렸다. 지후는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방금 걸었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그러니까 이모탈 호텔 화장실로 슝 날아가 버렸단 말이지? 아, 아하핫, 아학!”

언제 그랬냐는 듯 송이가 배를 잡고 소파 위를 뒹굴었다.


동엽이 부루퉁한 얼굴로 짜증을 냈다.\

“아, 웃지 말라니까요! 처음에는 벽에 머리를 박아서 잠깐 기절까지 했어요. 제가 못 일어났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일어나서 여기에 있잖아. 아하학!”

송이가 다시 폭소를 터트리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송이 누나, 능력 발동 조건을 분석해야죠.”

지후가 점잖게 타일렀다. 그러나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 맞다, 맞다. 아이고, 몇 년 만에 이렇게 웃어 보냐.”

송이가 눈꼬리에 맺힌 물기를 닦으며 물었다.

“동엽, 슝 날아가기 전에 무슨 생각 했어?”


“음……. 화장실에 있는 상상을 했어요.”

“혹시 이모탈 호텔 화장실을 떠올렸어?”

“맞아요. 직전에 간 게 거기였으니까.”

“너 이리 와 봐.”

송이가 소파에서 일어나 화장실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문을 열어젖히고는 동엽에게 지시했다.


“들어가서 구조를 머릿속에 박아 놔. 그런 다음 실험할 거야. 이동 장소가 직전에 간 곳인지 머리로 떠올린 곳인지 알아야 해.”

“그러다 이상한 데로 날아가면 어떻게 해요?”

동엽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또 택시비 줄게. 걱정하지 마.”

송이가 자기만 믿으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잖아요…….”

“잘 들어. 과학의 기본은 가설과 실험을 통한 검증이야. 너는 실험체로서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럼?”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동엽의 낯빛을 보고 지후가 끼어들었다.

“동엽 씨, 머리는 괜찮아요? 그거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동엽 씨 덕분에 새로운 능력이 발견돼서 좀 흥분했어요. 동엽 씨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라서 동엽 씨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요. 부탁합니다.”


지후가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동엽이 멋쩍은 듯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성큼성큼 화장실로 향했다. 그가 화장실 문을 닫자 지후가 송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당근과 채찍 몰라요? 다독일 줄도 알아야 한다구요.”

“채찍이 통하지 않으면 강도를 높여야지.”

“됐어요, 됐어요. 저는 물약 가지고 올게요.”


때마침 동엽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지후가 변환기에서 챙긴 물약을 동엽에게 건넸다. 물약을 단숨에 마시고 동엽이 끙, 소리를 내자 또다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긴장 가득한 침묵이 5초 정도 흘렀다. 딸칵, 하며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동엽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예스!”


지후가 주먹을 휘두르며 환호했다. 송이는 진지한 얼굴로 태블릿에 무언가를 적었다.


내친김에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화장실 이외의 장소도 되는지, 구조를 몰라도 되는지, 이동 거리는 얼마까지 가능한지, 조건을 달리하며 되풀이했다. 동엽이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물약은 네 개뿐이라 변환기에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해야 했다.


실험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가설이 틀릴 때마다 송이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그에 반해 동엽은 날아간 장소에서 사무실로 되돌아올 때마다 생기를 잃어 갔다.


마지막 실험은 자정이 돼서야 끝났다. 빈사 상태로 소파에 드러누운 동엽의 머리 위로 송이가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실험체 이동엽의 공간이동 능력 실험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화장실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둘째, 구조를 알고 있는 경우 1킬로미터 반경에 있는 화장실에 100퍼센트의 확률로 이동할 수 있다. 셋째, 화장실의 구조를 모르는 경우, 목표로 하는 화장실이나 건물을 눈앞에 두고 있어야 이동이 가능하며, 성공 확률은 약 70퍼센트이다. 이상.”


“증후인한테 접근하기가 수월해지겠는데요?”

지후가 들뜬 목소리로 의견을 냈다.


“맞아. 다음 증후인한테 어떻게 접근하나 했는데 딱 좋게 됐어. 그럼 출발할까?”


송이가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동엽은 시간을 확인했다. 밤 12시 10분이었다. 서둘러 눈을 감고 잠꼬대하는 시늉을 했다. 지후가 송이를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Image by Hans Ethole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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