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신드롬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서휘 Sep 24. 2024

[연재소설] 4. 리스트 컷 증후군

사무실 문이 열리고 지후가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다. 컴퓨터를 하던 송이가 문 앞까지 나와서 인사했다.


“지후야, 잘 다녀왔어?”

“네.”

“보고 싶었어.”

“아, 네…….”


밋밋한 반응을 보인 지후가 송이를 지나쳐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이건 송이가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다. 평소의 지후라면 왜 그러냐며 제발 그러지 말라고 머리를 쥐어뜯었을 거였다. 그걸 기대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인사한 인사였는데 재미난 장면을 하나 놓친 것 같아 아쉬웠다.


“앗!”


소파에서 손톱을 깎던 동엽이 작은 비명을 질렀다. 동엽의 검지에 붉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걸 보고 송이가 불쑥 물었다.


“오늘 며칠이야?”

“9월 30일이요.”

“벌써 그렇게 됐어?”


송이가 신난 발걸음으로 작은방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지후야! 연지한테 가야겠다.”


잠에 든 것 같지도 않은데 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문 앞을 서성이던 송이가 돌아서려 할 때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좀 쉴게요.”


어쩔 수 없이 동엽과 사무실을 나섰다. 동엽은 쓸모가 없을 게 분명했지만 일을 가르쳐야 하니 놓고 올 수도 없었다. 연지와 원활하게 대화하기 위해서는 지후가 필요했다. 그런데 고향에 가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여독이 덜 풀린 건지 평소답지 않게 방에 틀어박혀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떨어진 호강고등학교에서 내렸다. 정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의 새하얀 교복 셔츠가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셨다. 재잘재잘 떠들며 밝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뭐가 저렇게 좋을까? 열여덟 살 때 송이는 위성 발사에 실패한 후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꺄르르 웃는 아이들이 부러울 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즐거움을 훔쳐 오고 싶었다.


아차차! 송이는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연지를 찾았다. 아이들 무리를 3분 정도 노려보니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저기 있다.”

“쟤요?”


동엽이 중단발을 한 갈래로 묶은 여자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쟤 맞아요? 쟨 엄청 모범생 같은데? 저 치마 길이 보세요. 무릎 밑으로 오는데…….”

“응. 다녀올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송이가 “오연지!”하고 소리쳐 불렀다.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린 연지가 송이를 발견하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속도를 올려 걸으면서 픽 쏘아붙였다.


“학교엔 오지 말라니까. 가죽 재킷 입고 총 메고 다니는 여자를 누가 안 쳐다보겠어?”

“그러니까 전화 받지 그랬어.”

“왜 또 왔어?”

“두 달에 한 번씩 온다고 했잖아. 안 그었니?”

“응.”

“아니긴 뭘 아니야.”


송이가 연지의 손목을 잡고 치켜들었다. 와인색 카디건 아래로 손목에 둘린 붕대가 드러났다. 연지는 손을 잡아 빼고는 서둘러 감췄다.


“빨리 쏘고 가.”

“여기서 쏠까?”


연지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여긴 안 돼.”

“조용한 카페로 갈까?”

“저기 뒤에 따라오는 뚱뚱한 아저씨도 같이 가는 거야?”

“응. 새로 들어왔어.”

“지후 오빠는 어디 가고?”

“사무실에 있어.”

“그럼 사무실로 가.”




신드롬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연지가 익숙한 발걸음으로 소파로 가더니 제집 안방처럼 풀썩 앉았다. 송이는 동엽을 시켜 지후를 불러오게 했다. 잠시 후에 동엽과 지후가 거실로 나왔다.


“연지야, 왔어?”


지후가 손을 흔들었다.


“오빠, 안녕하세요.”


연지가 수줍게 웃으며 지후를 힐끔거렸다. 그 꼴을 지켜본 송이는 기가 찼다. 독기 가득한 눈으로 자기를 쏘아보던 악바리는 어디 갔단 말인가? 지후가 그렇게 좋은가? 쟤를 대체 왜 좋아하는 거지? 


송이는 물건을 감정하듯 지후를 위아래로 훑었다. 키도 제법 크고 얼굴도 반반하게 생겼지만 성격이 물러터져서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은 전혀 없었다. 송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연지에게 말했다.


“야, 오연지! 온 김에 물약 만들고 가.”

“헐. 이거 아동 착취 아니에요?”

“들어갔다 나오면 개운할 거야.”


송이가 연지를 정신 능력 변환기에 밀어 넣었다. 연지가 변환기 안으로 들어가자 동엽이 속삭이듯 물었다.


“쟤는 증상이 뭐예요?”

“리스트 컷 증후군이야.”

“그게 뭔데요?”

“습관적으로 손목을 긋는 거야.”

“저렇게 바르게 생긴 애가요? 왜 죽으려고 한대요?”

동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죽으려는 게 아니야. 살아있다는 걸 느끼려는 거지.”

송이가 말했다.


“손목을 그을 때 느껴지는 통증과 솟아나는 붉은 피를 보면서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거야.”

“안 그어도 살아있는데…….”

“어린 나이에 경주마처럼 목표만 보고 달리게끔 강요받으면 그럴 수 있어. 내가 누구고, 왜 존재하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런 걸 잊게 되는 거지.”

“누나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나도 그랬었으니까.”


동엽의 시선이 송이의 손목을 향했다. 송이가 황급히 말을 정정했다.

“손목 긋는 거 말고. 그렇게 살았다는 거야.”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동엽이 투덜댔다.

“쟤 손목 보면 한두 번 한 게 아니던데요? 어차피 안 죽는다면서요. 그럼 취미생활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계속 관리하는 건 인력 낭비, 시간 낭비 아니에요?”

“아니야. 저건 살려달라는 가장 큰 외침이야. 나 여기 있어요, 누가 날 좀 봐주세요, 이렇게. 네 장기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처럼.”

“제 아픔을 자꾸 건드실 거예요?”

“그게 너의 아픔이듯 연지한테는 그게 아픔인 거야.”

“저도 이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송이와 동엽이 입을 다물었다. 지후가 독백처럼 말을 쏟아냈다.


“증후인들 대부분 그러잖아요. 스마일 건을 맞아도 잠시뿐이지, 금세 또 우울해하잖아요. 어차피 도돌이표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거랑 차이가 있을까요? 달라지는 게 없는데 남을 돕고 지켜봐 주는 일이 정말 쓸모가 있는 일일까요? 차라리 그 시간에 좀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송이가 놀란 눈으로 지후를 바라봤다. 그간 봐 온 지후는 저런 말을 할 아이가 아니었다. 함께 일하면서 한 번도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던 데다가, 증후인 뿐만 아니라 머리 좋은 것 빼고는 죄다 허술한 송이를 챙겨주는 듬직한 존재였다.


“연지한테 인사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을 던지고 지후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후 형 오늘 좀 이상하지 않아요?”


동엽이 물었다. 송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두 눈을 감았다.

20분이 지나고 정신 능력 변환기에서 알람이 울렸다. 연지가 손부채질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어휴, 더워. 근데 지후 오빠는요?”


질문을 들었지만 송이는 지후가 한 말을 곱씹느라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이젠 달라져야 하는 걸까……. 이대론 안 되는 걸까…….


“언니! 지후 오빠는 어디 갔냐니깐요?”


송이가 눈을 번쩍 떴다. 벌떡 일어나 변환기로 가서 갈색 물약을 꺼내 왔다.


“야, 오연지! 이거 마셔.”


연지가 미심쩍어하는 표정으로 물약을 받았다.


“미성년자라고 못 마시게 하더니 웬일이래?”

“됐어. 그냥 마셔.”


연지는 끝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물약을 마셨다. 액체를 다 삼키고 나서는 맛이 없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능력이 뭔지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동엽아, 종이 한 장 들고 와 봐.”


동엽이 컴퓨터 책상 위에서 아무 종이나 들고 와서는 송이가 시키는 대로 종이의 위와 아랫부분을 잡았다.


“이 물약을 마시면 물체를 자르는 능력이 생겨. 검지랑 엄지를 맞붙인 다음 목표물에 대고 주욱 늘리면 발동돼. 스마트폰에서 사진 확대할 때 제스처 알지? 그거처럼.”


연지가 송이가 한 대로 종이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종이의 하단부가 5센티 정도 스윽 잘려 나갔다. 깜짝 놀란 동엽이 길길이 날뛰었다.


“아오! 이렇게 위험한 거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죠!”

“잘 잡고 있어. 안 그러면 손가락 날아간다.”


동엽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다시 해봐. 가운데를 정확하게 노리고, 더 자신 있게 그어.”


송이의 말에 따라 연지가 두 손가락을 더욱 크게 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종이의 가운데 부분이 정확하게 잘려 나가더니 두 동강이 났다.


“방법 알았지? 나가자.”

“어디를요?”

“그냥 따라 나와.”


밖으로 나가려던 송이가 사무실 문고리를 쥔 채로 돌아서서 동엽에게 말했다.


“너는 지후 좀 지켜보고 있어.”




송이와 연지가 탄 택시가 도심을 벗어났다. 비포장도로를 덜컹대며 달리다가 멈춰 선 곳은 사격장이었다.


“오셨어요, 박사님?”


검은 반소매 티에 붉은색 조끼를 덧입은 용우가 이를 드러내며 반겼다. 그의 왼팔 가득 그려진 타투를 보고 송이가 말했다.


“타투가 좀 늘었다?”

“처음엔 상처를 가리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이것도 중독되더라고요.”


대나무 숲이 그려진 팔을 손으로 문지르며 용우가 말했다. 대나무 이파리 사이로 칼로 벴다가 아문 상처가 곳곳에 보였다.


“사람들 없지?”

“그럼요. 박사님 오신다고 해서 싹 비워놨습니다.”

“서른 발 넣어 줘.”

“옆에 분은 여동생이십니까?”

“여동생 아니야.”

“그럼 저랑 같은……?”

송이는 무시하고 붉은색 귀마개를 연지에게 건넸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야외 사격장이 나왔다. 송이가 초록색 인조잔디 위에 서서 용우가 들고 온 라이플을 받아 익숙한 손놀림으로 탄 두 발을 장전하고는 연지를 향해 소리쳤다.


“하는 거 잘 봐. 슛!”


산등성이 위로 붉은색 접시 두 개가 날아왔다. 송이가 방아쇠를 당기자 우레 같은 총성과 함께 접시가 산산조각이 났다. 연이어 날아오는 접시도 족족 박살 났다.


목표물을 모두 맞힌 송이가 귀마개를 벗고는 연지에게 라이플을 건넸다.


“잘 봤지? 네가 해 봐.” 


연지가 라이플을 받아들었다. 자신 있게 총알을 장전하려고 시도하더니 결국 송이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송이가 피식 웃자, 뒤에 서 지켜보던 용우가 달라붙어 이것저것 설명했다.


연지가 라이플을 들어 견착했다. 두 팔이 후들거리는 게 송이가 선 자리에서도 훤히 보였다.


“슛.”


탕! 슛! 탕! 슛! 탕!


결과는 처참했다. 접시 스무 개 중 다섯 발만 맞혔고, 나머지 열 발은 아무 데나 갈겼다. 총을 내려놓은 연지가 팔뚝을 주무르며 다가오더니 송이를 향해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망했네요.”

“고작 그런 거 가지고 안 망해. 처음 하면 못 하는 게 당연한 거야.”

송이가 용우에게 말했다.

“한 번 더 넣어줘.”

“네, 박사님.”

“그 박사님 소리 좀 집어치우면 안 될까?”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누나라고 불러.”

“네, 박사…… 누님.”

용우가 사라지자, 송이가 주머니에서 물약을 꺼냈다.


“이번엔 네 능력을 사용해서 접시를 맞출 거야. 요령은 없어. 네가 터득해야 해.”


그러고 말하고 송이는 사격장 밖으로 나갔다. 팔짱을 끼고 연지가 하는 걸 지켜봤다. 연지가 물약을 마시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시 눈앞에 붉은색 접시가 공중에 떠올랐다. 연지가 목표물에 대고 두 손가락을 벌렸다. 하지만 손동작과 물체에 반응하는 시간 사이에 미세한 차이가 존재해서 번번이 빗나갔다.


“저 한 번 더 넣어 주세요.”


사격장 문틈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연지가 말했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송이는 어디 맘껏 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용우에게 손짓했다.


연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네 번이나 더 연장을 요청했다. 맞는 개수가 점점 늘더니 마지막에는 서른 개 중에서 스물여덟 개의 접시를 맞혔다. 승부욕뿐만 아니라 집중력도 어마어마한 게 괜히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마지막 접시 조각이 공중에 흩어지고, 연지가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접시에 원수 얼굴이라도 그려져 있어?”

송이가 놀리듯 물었다.

“응. 엄마 아빠 얼굴.”


연지가 말했다.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 송이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두 달 뒤에 다시 테스트할 거야. 네 몸 괴롭히지 말고 이거나 박살 내. 택시비, 체험비 다 내가 내줄 테니까. 알겠어?”


송이는 연지의 능력 물약을 용우에게 맡기고 연지가 오면 주라고 했다. 그리고 연지가 왔다고 자신에게도 보고하라고 했다. 용우는 충성스러운 신하처럼 맡겨만 달라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택시를 타고 연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나서 송이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컴퓨터 게임을 하던 동엽이 문까지 마중 나왔다.


“잘 다녀오셨어요?”

“지후는?”

“그 뒤로 한 번도 안 나왔어요.”

“밥도 안 먹었어?”

“저만 먹었어요.”

“쯧, 알겠어.”


자리로 돌아가던 동엽이 뭔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


“연지란 애는 좀 어때요?”

“뭐, 한 번에 달라지겠어?”

“한 방에 후딱 고쳐지는 게 있으면 좋겠네요.”


“마음은 나도 그렇지. 지후 말도 일리가 있어.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이 있는 건 아주 가끔이고, 대체로 증후인의 변화를 눈으로 보지 못하잖아. 그래서 회의감이 생길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의 역할은 민들레 씨를 후, 하고 부는 일이라고 생각해. 잘 정착하고 꽃을 피우는 건 그들 몫이야. 그렇게 돼서 예쁜 꽃이 피면 누군가는 꽃이 피고 지는 길을 계절마다 오가며 구경하겠지? 거기에 감명받은 누군가는 또 꽃을 심을 거고. 난 그렇게 선순환될 거라고 믿어.”


동엽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표지 Image by Gordon Johnson from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