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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신드롬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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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휘 Sep 19. 2024

[연재소설] 2. 입스 증후군

다음 날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향한 곳은 서울 근교에 있는 2군 야구장이었다.


땅! 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 푹! 공이 글러브에 박히는 소리, 선수들의 기합과 응원 소리가 맑은 가을 하늘을 가로질렀다.


“증후인이 누구예요?”


텅 빈 관객석에 들어서면서 동엽이 물었다. 지후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답했다.


“임승우라고, 스물두 살이고 현 TQ드래곤스 포수예요. 지금은 2군에서 뛰지만 6개월 전만 해도 1군 리그를 뛰었어요.”


동엽은 타자 뒤에 쪼그려 앉아 있는 포수를 바라봤다. 하얀색 유니폼을 입어서 그런지 웅크린 북극곰처럼 보였다.


투수가 던진 공이 승우의 글러브 안에 들어갔다. 그 순간 1루에 나가 있던 주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승우가 재빠르게 자세를 바꿔 2루 쪽으로 공을 던졌다. 투수의 키를 훌쩍 넘긴 공이 중견수 쪽으로 떼구루루 굴렀다. 2루수와 유격수가 허망한 눈으로 공을 쫓았다. 1루에서 2루로 도루를 성공한 주자가 활짝 웃으며 벤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2군이라 그런지 실력이 형편없네.”


동엽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지후가 말했다.


“2군도 엄연히 실력을 갖춘 프로예요. 임승우 씨는 입스 증후군을 겪고 있어서 그래요.”

“입스요?”

“심리적인 원인으로 평소 잘하던 동작도 제대로 못 하게 되는 거예요.”

“야구 선수가 야구를 못해요? 그럼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닌가?”

동엽이 동의를 구하듯 지후의 눈치를 살폈지만 지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경기 끝났다.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데리고 와.”

송이가 동엽에게 말했다. 동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저 혼자요?”

“응. 네 능력을 쓰면 되지.”

“락커룸엔 관계자만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줘.”


송이가 턱 끝으로 지후가 메고 있는 가죽 가방을 가리켰다. 지후가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고는 이것저것 꺼낸 다음 동엽의 손에 쥐어주었다. 초록색 물약, 삼각형 모양의 안경집, 조약돌만 한 무선 이어폰 케이스, 그리고 형광색 안전 조끼였다.


동엽이 환희에 찬 얼굴로 손에 든 물건들을 훑어봤다. 그러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안경과 이어폰을 착용했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형광 조끼까지 입고 나서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대박! 이 조끼는 위장 조끼에요? 아니면 최첨단 소재의 방탄조끼?”


“뭐, 비슷한 거야. 스마트 안경을 통해서 네가 보고 있는 장면이 이쪽에 전송되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귀에 꽂은 건 초소형 무전기니까 위급할 때 도움 요청해. 알겠지?”


“총은 없어요?”

동엽이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하더니 허공에 대고 쏘는 시늉을 했다.


“오늘은 이걸로 가지고 왔어요.”

지후가 가방 속에서 글록26 권총을 슬쩍 꺼내 들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제가 보관하고 있을게요.”


동엽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초록색 물약을 마셨다. 미량의 액체가 목구멍을 따라 흘러 내려갔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지 이때다, 하면서 양 주먹을 쥐고 똥 누는 자세를 취했다. 끙 소리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눈앞에서 동엽이 사라지자 지후가 물었다.


“조끼는 처음 보는 건데 어떤 기능이 있는 거예요?”


“없어. 인터넷에서 봤는데 저거 입고 있으면 안전 요원인 줄 알고 아무도 제지를 안 한대. 진짜로 그런지 실험해 보고 싶었어.”


지후는 한숨을 쉬면서 스마트 안경과 연결된 태블릿을 켰다.     


동엽은 슬며시 눈을 떴다. 사방이 검은색 칸막이로 막혀 있고, 자신은 무언가 위에 앉아 있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양쪽 다리를 벌렸다. 둥그런 대변기가 보였다. 성공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려는데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동엽은 숨을 죽이고 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아이 씨, 임승우 새끼. 오늘도 저 모양이네.”


“형님, 아까 승우 손잡고 위로해 주실 때 살짝 눈물 났는데, 하하하.”


“박 코치. 한두 달 그럴 땐 나도 안쓰러웠지. 벌써 6개월이야. 팀에 손해가 막심해. 신인 드래프트 때 다른 애들 다 포기하고 1순위로 데리고 온 건데 2년도 못 써먹고 고장났네, 고장.”


“좀 길어지긴 하네요.”


“요새 애들 멘탈이 약해서 그래. 빠다 맞고 뺑뺑이 돌아봐라. 공 못 던지겠다고 징징댈 수 있나. 쟤 계속 저러잖아? 곧 방출이야. 아니면 내가 장을 지진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소변을 누는 듯 물줄기 소리가 났다.


“짜증 나는데 끝나고 술이나 한잔하자.”

“사주시는 거죠, 선배님?”

“이럴 때만 선배지, 새끼. 알았어, 가자.”


손 씻는 소리가 나고 발걸음 소리도 멀어졌다. 동엽은 문에 기댄 채 1분을 더 기다렸다. 그래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자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첩보 영화의 주인공처럼 무전기를 꽂은 귀에 손을 대고 사주를 경계하며 세면대까지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속삭였다.


“대장, 잠입 완료했습니다.”

무전기 너머에서 “누가 대장이야?”하고 송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변기 칸 문이 벌컥 열렸다.


“오우, 씨!”


동엽은 입을 틀어막아 욕지기를 겨우 참았다. 문밖으로 나온 사람은 임승우였다.


손을 씻는 척하며 동엽은 거울 너머로 승우를 힐끔댔다. 그의 눈빛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심기를 건드렸다간 돌덩이 같은 주먹에 사정없이 맞을 것 같았다.


괜히 비누칠을 두 번이나 하면서 승우에게 접근할 방법을 모색했다. 귀에서는 송이가 빨리 말을 걸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필 여기서 임승우를 만날 건 뭔가, 탄식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쩌면 이건 신이 감독한, 동엽이 주인공인 영화의 한 장면일 수도 있었다.


“임승우 씨.”


동엽이 목소리를 최대한 깔고 승우를 불렀다. 옆에서 손을 씻던 승우가 거울 너머로 동엽을 노려봤다.


“스물두 살, TQ드래곤스…….”

“당신 뭐야?”


북극의 얼음처럼 냉랭한 승우의 말투에 동엽은 얼어붙었다. 자기를 찾아온 지후를 흉내를 내본 건데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임승우 씨가 입스로 고생 중이라고 해서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


얻어맞을까? 무시하고 가려나? 걱정하며 슬그머니 한쪽 눈을 떴다. 예상과 달리 승우의 눈빛이 말랑해져 있었다.


화장실을 나온 동엽은 고개가 자꾸만 빳빳해졌다. 어깨가 축 처진 임승우가 자신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었다. 신장이 일 미터 팔십오 센티미터에 백 킬로그램은 족히 넘어 보이는 거구를 말 한마디로 제압한 것이다. 엉덩이가 자꾸 들썩이는 걸 참으며 야구장 입구로 향했다.


오늘도 종아리까지 오는 가죽 재킷을 입은 송이와 타이를 매지 않은 검은 정장 차림의 지후가 보였다. 동엽은 그곳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커지는 것을 빠르게 캐치하고는 가슴을 주욱 내밀고 당당하게 말했다.


“임승우 씨입니다. 제가 모셔 왔어요.”


“반갑습니다, 임승우 씨.”


동엽을 그대로 지나친 송이가 승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승우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송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래도 송이가 물러서지 않자 거대한 손으로 송이의 손끝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어떻게 도와주신다는 거죠?”


승우가 공격적으로 물었다. 스물두 살답지 않은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든 듯 송이가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지후의 가방에서 글록26을 꺼내 들었다. 그걸 본 승우가 재빨리 두 주먹을 쥐고 싸우는 자세를 취했다.


“놀라지 마세요. 이건 총 모양의 주사기에요. 총알이 아니라 침이 나가요. 한 번 보세요.”


송이가 대뜸 동엽의 엉덩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에 맞은 동엽이 펄쩍 뛰더니 엉덩이를 손으로 문댔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송이 앞에 섰으나 치솟았던 눈매가 대번에 둥글게 휘더니 이내 흐흐흐, 하며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저는 약물을 하면 안 됩니다.”

승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금지된 약물이 아니에요. 심리적 안정을 도와줄 겁니다. 속는 셈 치고 맞아 보세요.”

송이의 말에 승우가 순순히 뒤돌았다. 송이가 총을 쏘자 그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는 정도로 고통을 묵묵히 참아냈다. 


“이걸 꾸준히 맞으면 치료가 됩니까?”


승우가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고개와 양팔을 돌려보는 그의 얼굴에 어느덧 의구심은 사라지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경탄의 표정이 떠 있었다.


“아뇨.”

송이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일시적인 안정감을 줄 뿐 치료를 해줄 수는 없어요.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에요.”

승우가 생각이 많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후가 대뜸 노란색 명함을 건넸다.


“저희는 승우 씨처럼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신드롬이란 단체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해요. 혹시 함께해 주실 생각이 있습니까?”     




사무실에 들어선 승우는 LED 불빛으로 가득한 공간을 눈동자로 훑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정신 능력 변환기에 들어갈 때까지도 침묵을 지켰다.


“엄청 과묵하네요.”


지후가 작동하는 변환기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동엽은 팔짱을 낀 채 영 마음이 안 든다는 표정으로 같은 곳을 노려봤다.


삼십 분 후에 승우가 변환기에서 나왔다. 지후가 재빨리 가서 약병을 들고 왔다. 승우의 물약은 피보다는 맑은 붉은색이었다. 미심쩍은 눈빛으로 약병을 쏘아보는 승우의 시선을 느낀 지후가 말했다.


“승우 씨의 증후군에 대한 두려움이 이 병에 담긴 거에요. 어떤 능력이 발휘될지,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마셔 봐야 알지만요.”


잠시 주저하던 승우가 약병을 가져가더니 신중하게 냄새를 맡았다.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물약을 단숨에 삼켰다. 커다란 목울대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그러더니 3초 후에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뭐야?”


지후와 동엽이 동시에 소리쳤다. 컴퓨터를 하던 송이가 달려와 승우의 코밑에 손가락을 댔다.


“살아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초조함 가득한 눈은 임승우의 가슴팍에 꽂혀 있었다. 다행히 흉통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렸다. 그를 소파로 옮기고 싶었으나 지후와 동엽이 달라붙어도 한 발짝도 옮길 수 없었다. 송이와 지후, 동엽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불안에 떨며 승우를 지켜봤다.


십 분이 지났다.


“헉!”


승우가 숨을 몰아쉬며 깨어났다. 화들짝 놀라며 용수철처럼 바닥에서 튀어 오르더니 양팔을 휘휘 돌렸다.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자 천둥 같은 고함을 쳤다.


“저에게 뭘 먹인 겁니까!”

“죽지 않는다는 건 확인했네요. 정확한 기능을 알려면 몇 번의 실험이 더 필요해요.”

송이가 동엽을 쳐다봤다. 동엽은 핸드폰을 만지는 척하며 시선을 피했다.


“제가 해 볼게요.”

지후가 나섰다.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승우가 만든 물약을 들이켰다.


3초가 지나자 몸을 흔들거리던 지후가 픽 쓰러졌다. 옆에서 대기하던 승우가 지후를 번쩍 안아 들고 소파에 눕혔다.


십 분 후에 지후도 숨을 몰아쉬며 깨어났다. 노트에 경과를 기록하던 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이건 신체 능력을 십 분간 마비시키는 물약이야.”

“놀라운 능력이네요. 근데, 어디에 쓸 수 있을까요?”

지후가 회의적으로 물었다.


“상대팀한테 먹여버려요. 그럼 승우 씨 팀이 이기잖아요.”

동엽이 상기된 목소리로 의견을 냈으나 승우가 단호하게 막아섰다.


“전 그런 짓은 안 합니다.”

“어찌 됐든 승우 씨 덕분에 새로운 물약을 만들었네요.”


송이가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그 말을 들은 동엽이 “치, 개나 소나 아무한테나 하는 말이잖아?”하고 투덜거렸다.


“저…… 송구스러운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승우가 으음, 하고 무거운 신음을 내뱉었다. 의아해하는 여섯 개의 눈동자가 승우를 향했다.


“저는 운동을 그만둘 생각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팀에 더 이상 피해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때 내 몸이 괜찮은지 먼저 체크했습니다. 야구를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요. 몸뚱어리가 말을 들었을 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승우가 오른손 엄지로 왼손 엄지의 거스러미를 긁으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저…… 야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계약서까지 쓴 마당에 죄송합니다. 제가 야구장으로 돌아가는 걸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사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지후와 동엽이 송이를 바라봤다. 송이는 쯧, 소리를 내리고는 말했다.


“다시 의지가 생겼다고 하니 저희의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하지만”


송이가 말을 끊자 승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송이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남은 물약 두 개는 저희가 보관하겠습니다. 괜찮죠?”

“그건 어차피 이 사무실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송이가 검지를 치켜들었다.

“일 년간 활동한다는 계약을 위반하셨으니 저희가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빌려주셔야 합니다.”


“경기만 없다면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승우가 모자를 벗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어깨를 곧게 펴고 사무실을 나가는 승우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동엽이 송이에게 물었다.


“정말 도와주러 올까요?”

“오든 안 오든 상관없어. 그냥 가슴에 책임감 하나 심어놓는 거야.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지 모르니까.”


송이가 정신 능력 변환기에서 붉은색 물약 두 개를 꺼내 컴퓨터 옆 캐비닛으로 갔다. 문을 열고 샘플 박스를 꺼냈다. 새빨간 물약 옆에 승우의 물약을 조심스럽게 꽂았다.


Image by OpenClipart-Vector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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