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엽은 엄마를 태운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좌회전 신호를 받은 택시가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제야 아랫배를 누군가가 움켜쥐고 있는 듯한 통증도 사라졌다.
어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동엽의 집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드롬 사무실에서 죽치다가 집에 안 간 지 5일째였다. 동엽은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양손에 장 본 비닐봉지를 들고 원룸 문 앞에 서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하필 배달해서 먹은 치킨 상자가 입구에 놓여 있었다. 엄마가 환기 좀 하라느니, 벌레가 생기니까 바로 버려야 한다느니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 한 달 전에 방문한 엄마가 준 반찬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게 동엽의 눈에 들어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엄마가 배달 올 때마다 동엽이 모아놓은 탄산음료를 죄다 꺼내더니 싱크대에 하나씩 부으며 말했다.
“이럴 거면 집에 들어와. 혼자서도 잘 챙겨 먹겠다고 해서 나가서 살게 해준 거잖아.”
캔을 모두 비운 엄마가 이번에는 냉동실을 열었다. 얼려둔 피자 조각과 마라탕이 동엽의 시야에 걸렸다. 그 순간 엄마가 머리끄댕이를 잡듯이 봉지를 채가더니 가차 없이 밖으로 꺼냈다.
갑자기 아랫배에 누가 짓밟고 있는 듯한 통증이 퍼졌다. 동엽은 배를 쓰다듬다가 황급히 손을 내렸다. 엄마 앞에서 배가 아픈 티를 내면 본가로 끌려 들어갈 게 뻔했다.
엄마는 텅 빈 냉장고를 장 봐 온 야채들로 다시 채워 넣었다. 그다음 소매를 걷어붙이고 요리를 시작했다. 집에 음식 냄새가 배는 게 싫어 동엽은 요리를 안 했으나 엄마의 횡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집밥이라니 내심 기대하며 뭘 만드나 슬쩍 봤으나 잡곡밥에 나물투성이였다. 아마 어느 프로그램에서 본, 소화가 잘되는 음식일 것이다. 동엽은 전혀 좋아하지 않는.
물티슈로 빌트인식 식탁의 먼지를 닦고 엄마와 마주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반찬들은 하나 같이 간이 거의 배어 있지 않아 맛이 밍밍했지만 동엽은 꾸역꾸역 다 먹었다. 밥상을 치우면서 이제 엄마가 빨리 갔으면 했다. 하지만 엄마는 자고 가겠다고 선포했다. 침대도 싱글 사이즈고, 여분의 이불이 없다고 말했으나 방바닥에서 옷을 덮고 자면 된다고 아득바득 우겼다.
결국 바닥에서는 동엽이 자게 됐다. 겨울 패딩을 꺼내 덮고 눕자 신드롬 사무실의 소파가 그리웠다. 낡은 회색 소파는 비록 제 한 몸 누이기 비좁고, 변환기에서 나는 고주파 소리와 사시사철 켜 두는 송이의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수면을 방해했지만 어쩐지 그곳이 더 좋았다.
지후 형이 며칠째 저기압이긴 해도 송이 누나까지 셋이 복작거리는 맛이 있었다. 이상하게 거기에 있다 보면 배도 안 아팠다.
엄마 몰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겨우 잠이 들었으나 부산스러운 소리에 때문에 새벽 6시에 깼다.
엄마가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하지 말라고 말려봐도 소용이 없었다. 청소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온 엄마는 누워 있던 동엽을 기어이 일으켜 세우고는 바닥을 쓸고 닦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침과 점심까지 손수 만들어서 동엽을 챙겨 먹이고 난 후에야 개운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온갖 대접을 받았지만 이상하게 정신이 피폐해진 동엽은 엄마가 탄 택시가 사라지자마자 택시를 한 대 더 불러 곧바로 신드롬 사무실로 향했다.
“네 선물.”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송이가 바닥을 가리켰다.
송이의 손끝에는 동엽의 키만 한 물건이 황금색 보자기로 덮여 있었다. 동엽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황금색 보자기를 걷었다. 양각대에 거치된 검은색 스나이퍼 라이플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아아악!”
동엽이 두 주먹을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쾅쾅 뛰었다. 송이가 바닥 무너진다고 꽥 소리를 질렀지만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테스트 해 봐.”
송이가 턱 끝으로 라이플을 가리켰다. 동엽은 재빨리 바닥에 납작 엎드려 총신을 돌리며 스코프로 사무실 내부를 싹 훑었다.
“너는 어디 부대를 나왔길래 이런 걸 써 봤어?”
엎드려 있는 동엽의 머리 위에서 송이가 물었다.
“저 공익 나왔는데요?”
“뭐? 공익이었어?”
“네.”
“근데 군대에 관심이 왜 이렇게 많아?”
“군대 안 가도 관심 있을 수는 있죠.”
“뭐, 맞는 말이긴 하네.”
송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엽은 벌떡 일어나서 양각대를 접고 스나이퍼 건을 견착했다. 고개를 꺾고 목표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척하며 입으로 푸슝, 푸슝 소리를 냈다.
“이 김에 혼자 출동해 보는 거 어때?”
송이가 스마트폰의 반만 한 크기의 소형 우울 측정기를 내밀었다. 동엽은 싱글벙글 웃으며 주소지를 확인했다. 지중중학교.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세차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저 안 갈래요.
“왜? 증후인은 중학생이야. 그냥 상태가 어떤지만 보고 와도 돼. 너 잘하잖아.
”
송이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지만 그래도 그곳에는 발을 디디고 싶지 않았다.
“네가 딱이야. 증후인 애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래.”
총을 어깨에 메고 자리를 정리하던 동엽은 멈칫했다. 총 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알았어요.”
“잘 생각했어. 이것도 받아.”
송이가 검은색 명함 지갑과 뿔테 선글라스를 건넸다.
“너도 정식 직원이니까 명함 줘야지. 선글라스는 총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준비했어. 우울 감지 센서가 탑재되어 있어서 근처에 가면 증후인이 누군지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네. 다녀올게요.”
“근데 그 후줄근한 검은 티 말고 다른 옷 없어? 그것만 며칠째 입는 거야?”
“어제랑 다른 옷인데요.”
동엽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택시비 줄게. 택시 타고 가.”
“아니에요. 물약 마실게요.”
“거기 가 봤어?”
지중중학교의 화장실은 잘 알고 있다. 잊을 수 있을 리가……. 화장실 문 앞에 모인 아이들의 왁자지껄 놀리는 소리…… 발로 문을 쾅쾅 차는 소리…… 그리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물…….
동엽은 물약을 마시고 지중중학교 교사용 화장실로 이동했다. 리모델링 했는지 중학생이던 동엽이 몰래 쓸 때보다 멀끔해져 있었다. 변기 칸에서 나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선생님처럼 보이는 나이 든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동엽이 교사인 척 묵례하자 그 사람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갔다. 수업이 끝난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땐 꽤 커 보였는데 어른이 돼서 다시 오니 그리 크지 않았다.
운동장을 따라 걸었다. 학생 때도 안 한 일을 나이 다 먹고 하려니까 새삼스러워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학창 시절에는 급식을 먹으면 항상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느라 바빴다.
걷다 보니 등나무 아래에 놓인 벤치가 보였다. 거기에 교복을 입은 학생이 혼자 앉아 있었다. 키가 작고 포동포동하게 살이 찐 남자아이였다.
동엽은 선글라스를 켜서 우울 감지 센서를 작동시켰다. 아이 주위에 푸른빛이 자기장처럼 번져 있었다. 증후인인 균상이가 맞는 듯했다. 동엽은 운동장 반 바퀴를 더 걸어 균상에게 다가갔다.
“이 학교 학생이야?”
“네. 그런데요? 아저씬 누구세요?”
균상이 눈을 치뜨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동엽이 어깨에 멘 스나이퍼 건을 힐끔거렸다.
“난 이 학교 졸업생인데 오랜만에 학교에 왔어. 너는 몇 학년이야?”
“2학년이요.”
“그렇구나.”
동엽은 균상과 조금 거리를 두고 옆에 앉았다.
“학교는 재미있어?”
“아뇨.”
균상이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운동장 흙을 발로 툭툭 찼다.
“나도 진짜 재미없었는데.”
동엽이 말했다.
의외라는 듯 균상이 동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바닥으로 고개를 박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장이 예민했거든. 근데 너도 알지?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똥 싸면 전교에 소문나잖아. 그래서 아픈 척하고 조퇴해서 집에 가서 해결했는데 자주 그러니까 담임 선생님이 집에 안 보내주는 거야.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쌌다가 졸업할 때까지 놀림 받았어.”
“저도 그랬어요.”
“진짜 열 받지 않냐? 똥 싸는 게 뭐 부끄러운 거라고. 지들은 똥 안 싸나.”
“그러니까요. 중학생 때는 괜찮아졌어요?”
균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동엽은 고개를 저었다.
“중학교 가면 애들이 좀 나아질 줄 알았거든? 전혀 아니더라. 한 번은 야외 체험학습으로 근처 공원에 갔는데 점심으로 햄버거를 줬어.
그걸 먹고 나니까 미칠 듯이 배가 아픈 거야. 주위에 아무리 찾아봐도 공용 화장실밖에 없었어. 나는 비데가 없으면 못 싸는데도 꾹 참고 쌌어. 근데 누가 ‘야! 이동엽 또 똥 싼다!’하고 외치는 거야. 애들이 몰려와서 키득대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때부터 별명이 ‘또똥’이 됐어.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애들이 ‘또똥, 화장실 간다!’하고 놀렸어. 더 못된 애들은 화장실 문을 발로 차고, 그래도 안 나오니까 물 뿌리고 그랬어.”
“힘드셨겠네요.”
어린 균상의 말에 동엽은 민망했지만 의외로 위로가 됐다. 균상이 흙을 한 번 더 발로 차더니 말했다.
“저도 별명이 대장균이에요.”
동엽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균상을 바라봤다. 그 별명 하나만으로도 이 아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아왔을지 눈에 훤했다.
“근데 형이 살아보니까 말이야.”
“형이요? 몇 살인데요?”
“나 스물셋.”
“에이.”
“야! 안 믿냐?”
“믿을게요. 말해 보세요.”
“아무튼! 그래서 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은 피해 다녔어. 중학교도 자주 결석하고, 고등학생 때도 다르지 않았고. 대학교는 다녀도 OT니 MT 같은 건 절대 안 갔고.
근데 공익 생활하면서 곰곰이 생각하니까 억울한 거야.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왜 피해 다녀야 하는지 말이야.
그래서 소집 해제되고 복학해서 떳떳하게 생활하리라 다짐했는데, 막상 또 진짜 가려고 하니까 겁나는 거 있지? 신입생 때도 못 어울렸는데 복학생이면 얼마나 더 힘들까? 차라리 직업을 구하자! 마음을 바꿔 먹었는데 긴장만 하면 배가 아픈 바람에…….”
“아, 망했네!”
갑자기 균상이가 억울하다는 듯 주먹으로 제 허벅지를 쳤다.
“배 하나 아프다고 인생이 그렇게 암울해요?”
“아, 아냐!”
동엽이 다급하게 양손을 저었다.
“나 지금은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있어. 봐봐.”
그러면서 송이가 준 명함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균상에게 건넸다. 명함을 스윽 훑어본 균상이 말했다.
“신드롬? 이상한 이름이네. 근데 총은 왜 들고 다녀요?”
“이거? 멋있지? 이걸로 너나 나처럼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한테 안정 주사를 놔주는 거야. 한번 쏴 볼래?”
동엽이 스나이퍼 건에 양각대를 조립한 다음, 균상을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작동법을 알려줬다.
“잠깐만.”
동엽은 옆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졌다. 멀쩡한 음료수 캔 다섯 개를 골라 품에 안고 운동장 반대편에 있는 철봉까지 달렸다.
헐떡이며 철봉에 도착했을 땐 10월인데도 온몸에서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손차양을 만들어 스나이퍼 건의 시야를 확인하고 깡통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안정 주사를 고작 깡통 맞히는 데 썼다고 송이에게 혼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