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떨어지는 꿈을 꿨다. 지후가 손을 뻗어 떨어지는 사람의 손을 붙잡았으나 그 사람의 손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잠에서 깬 지금도 그 촉감이 생생했다. 환영 때문에 악몽을 꾼 듯했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창문을 바라봤다. 밖이 환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침 9시였다. 어젯밤에 딜레마라는 회사에 대해 찾아보다가 번뜩 현실을 자각하고 구직 사이트를 둘러봤다. 이곳저곳에 넣을 이력서를 쓰다가 새벽 4시쯤에 잠이 들었다.
지후는 멍한 얼굴로 이제 뭘 해야 할지 고민했다. 평소라면 기상과 동시에 우울 측정기 앱을 켜고 오늘은 어떤 증후인을 만나러 갈지 계획했겠지만 지금은 만사가 다 귀찮았다. 증후인의 넋두리를 들을 생각을 하면 지긋지긋하기까지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떤 선택이 문제였는지 곱씹고 있는데 협탁에 둔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어머니의 전화였다. 전화 연결 버튼에 선뜻 손이 가질 않아 잠시 핸드폰 화면을 응시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니.”
“지후야, 밥은 먹었냐?”
“네, 먹었어요.”
공복이었지만 거짓말로 둘러댔다.
“요새 사과가 맛있더라. 아침에 사과 한 쪽 먹으면 몸에 그렇게 좋단다. 사서 보내줄까?”
“아니에요. 근처에 파는 데 있어요. 제가 사서 먹을게요.”
그 뒤로도 어머니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묵묵히 듣다가 어머니의 말이 잠시 멈췄을 때 지후가 물었다.
“아버지는 뭐 하셔요? 감기는 다 나으셨어요?”
“그게 말이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너 왔다 간 뒤로도 계속 기침했어. 병원에 가보래도 끝까지 버티지 뭐냐. 근데 네 아버지가 얼마 전에 중학교 지킴인가 뭔가 한다고 지원했었는데 채용됐단다.
내가 가랄 땐 귓등으로 듣던 양반이 신체검사서 내야 한다고 신나서 병원에 달려가더라. 그럴 만도 하지. 우리가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되겠냐?”
묵묵히 들으면서 지후는 속으로 감탄했다. 아버지는 칠십 나이에도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하시는구나. 그러자 스물일곱밖에 안 됐으면서 일이 좀 안 구해진다고 좌절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솟아올랐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걱정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이냐.”
“왜요?”
“네 아버지가 폐렴이란다.”
잠자리에서도 기침 때문에 괴로워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번뜩 떠올랐다. 지후는 걱정을 숨기고 태연한 척 말했다.
“요새는 약 먹으면 금방 치료돼요.”
“의사 선생님이 노인들은 입원해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라.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뭔데요?”
“폐렴 때문에 네 아버지 채용이 취소됐어. 네 아버지가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해. 배를 부여잡고 기침하면서도 병원엔 절대 안 간대.”
“빨리 가셔야죠. 그러다 병이 커지면 어떻게 해요?”
통화 상대가 아버지도 아닌데 버럭 짜증을 냈다. 지후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면서 왜 정작 아버지 당신은 챙기지 않는지 답답했다. 잠시 후에 어머니가 목소리를 죽이고 속삭이듯 말했다.
“입원하면 병원비가 만만치 않잖냐…….”
지후는 말문이 막혔다. 치료비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보다 병원비가 얼마인지 먼저 계산해 보는 자신이 몹시 싫었다.
어머니의 전화를 끊고 지후는 구직 자리를 알아보는 데 열을 올렸다. 어제와 달리 높은 연봉의 글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연봉이 높은 곳은 지후의 스펙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게다가 나이도 적지 않았다. 신드롬에서 1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머리 한쪽에서 맴돌며 지후를 괴롭혔다.
그렇게 3시간을 보내고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책상 한편에 밀어 둔 파란색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광한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부모님 건강이 염려되거나, 아직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오래 사시지 못하실 거 같으면 꼭 연락해라. 너는 내가 잘 챙겨줄게.’
카톡창을 열어 광한을 검색했다. 친한 선배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려니 선뜻 손이 안 움직였다.
‘신드롬에 들어오기 전에 일자리라도 구해볼걸. 에고고. 난 또 후회 중이네.’
지후는 스스로를 비웃어주고는 광한에게 만나자고 카톡을 보냈다. 답장이 언제 오나 힐끔거리는 게 싫어 책상에 핸드폰을 엎어 놓고 침대에 누웠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때마침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지후는 홀린 듯 방 밖으로 나갔다.
“일어났어요?”
언제 왔는지 동엽이 소파 앞 탁자에 김이 펄펄 나는 냄비를 내려놨다.
“라면 끓였는데 좀 드릴까요?”
지후는 군침을 삼키며 바닥에 앉았다. 동엽의 말과 달리 라면은 둘이 먹기에도 양이 많아 보였다. 접시에 김치를 담아온 동엽이 지후의 맞은편에 앉았다.
식사가 시작되자 유리그릇에 쇠젓가락 부딪는 소리와 후루룩 소리만 울려 퍼졌다. 냄비는 5분 만에 바닥을 보였다.
오랜만의 포식에 지후는 배에 손을 올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야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콧등에 밴 땀을 소매로 훔치며 물었다.
“송이 누나는 몇 시에 자러 갔어요?”
“얼마 안 됐는데, 11시였나? 웬 할아버지를 사무실에 못 들어오게 하는 장치를 만들겠다고 밤새더니 좀 전에 방에 들어갔어요.”
환영을 말하는 듯했다. 자신 때문에 송이가 고생한 것 같아 지후는 미안해졌다. 그 생각을 떨치고 싶어 괜히 동엽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출장은 어땠어요?”
“증후인이 중딩이었어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겪고 있다는데 꼭 제 어릴 때를 보는 것 같던데요?”
동엽이 상기된 목소리로 첫 출장의 후일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들뜬 표정을 보니 지후는 작년에 처음 신드롬에서 일할 때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땐 일하는 게 참 즐거웠다. 물론 지금도 즐겁다. 그런데 즐겁기만 해서는 살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잘 먹었어요.”
지후가 냄비와 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싱크대에 가서 식기를 설거지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에 놓아둔 핸드폰을 확인하니 광한에게 답장이 와 있었다. 오늘은 여덟 시에 진양동 쪽에서 일이 끝나니 그 근처에서 보자고 했다.
지후는 이력서를 쓰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7시쯤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인 역 앞 카페에 도착했을 땐 약속 시간까지 20분이 남아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놓고 단숨에 비웠다. 언제 봐도 거리낌 없는 광한이었는데 아쉬운 소리를 꺼낼 생각을 하니 벌써 긴장이 됐다.
8시가 15분에 광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이를 매지 않은 검은 정장 차림이었는데 상갓집에서 온 것처럼 핼쑥했다. 입 주위에 거뭇한 수염 자국이 나 있어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일 끝나는 장소가 매번 다른가 봐요?”
새로 시킨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지후가 물었다.
“영업이 다 그렇지. 나는 진양동하고 흥함동 맡고 있어. 너는 오늘 어디 갔다 왔어?”
“오늘은 일 없었어요.”
“다행이네.”
“다행이라고요?”
지후가 의외라는 듯 두 눈을 껌뻑였다. 광한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거긴 일 많이 해 봐야 손해잖아. 여긴 실적만큼 돈이 들어와. 건당 페이가 세서 많이 버는 애들은 억이 훌쩍 넘어. 그래서 각성제 맞고 일하는 애들이 수두룩해.”
“뭘 파는데요?”
“건강과 관련된 식품이나 의료 기기, 그리고…… 뭐, 이것저것 팔아.”
지후는 목숨을 잘라 팔았다는 환영의 말이 떠올랐다. 농담인 것처럼 보이려고 실실 웃으며 물었다.
“장기나 피 같은 거 파는 건 아니죠?”
“뭐? 그럴 일 있겠냐? 참나…….”
광한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는 콧방울을 두 번 잡아당겼다.
“영업 일, 어렵진 않아요?”
지후가 관심을 보이자 광한이 눈을 치켜떴다.
“너도 들어올래? 신드롬 활동 경력 있으면 서류는 그냥 통과할걸? 그 일이나 이 일이나 맥락은 비슷하거든.”
잠시 광한과 같이 일하는 상상을 해봤다. 지후가 생각하기에 함께 일할 때 광한과의 호흡이 나쁘지 않았다. 광한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물론 영업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암만 못 해도 지금보다는 많이 벌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부모님은 앞으로 자주 병원에 다니실 텐데 월 백육십만 원으로는 병원비는커녕 약값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나가면…… 사무실엔 송이와 동엽만 남는다. 동엽도 조만간 취업할 테니 송이만 남게 된다.
“근데 오늘은 왜 부른 거야?”
광한의 질문에 지후는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이 광한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걸 자각했다. 입술을 옴짝달싹하다가 결국 부모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폐렴에 걸리셨대요.”
지후는 어머니에게 들은 말을 최대한 상세하게 전달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광한이 말했다.
“사회 쇠약 증후군이신 것 같네.”
“그건 처음 들어 봐요.”
“노인들한테 많이 찾아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몸도 예전 같지 않지,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간다고 느끼는 거야. 그런데 병이 나서 앓아눕기라도 해 봐라. 자식한테 짐짝이 된 것 같지.”
“전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너희 아버지도 왕년에 뱃일하면서 이름 날리셨잖아. 아직도 그물 올리시는 우람한 팔근육이 내 눈에 선하다. 그런 분이 자식한테 손 빌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싫으셨을 거야.”
“저한테는 의지하셔도 되는데…….”
그 말에 광한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 부모님이 취업도 못 한 자식한테 의지하겠어? 그러지 말고 우리 회사로 넘어와. 내가 잘 말해서 무조건 취직하게 해줄게.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야 아버님도 편하게 치료받지 않으시겠어? 그리고……. 아, 아니다. 이건 네가 우리 회사 오면 말해줄게.”
광한이 말을 끊고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지후는 궁금증이 솟았으나 애써 묻지 않았다.
지후는 10시가 다 되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두컴컴한 동네는 개미 한 마리도 없는 것처럼 조용한데, 사무실은 LED 불빛과 기계 소음으로 가득했다.
동엽은 집에 갔는지 안 보이고, 송이 혼자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울렸다. 광한마저 신드롬에서 떠나갔을 때 송이는 꽤 쓸쓸해했다. 이제 곧, 다시 그렇게 될 것이다.
“저 왔어요.”
“지후야, 이리 와 봐.”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송이가 불렀다. 지후가 옆에 앉자 송이가 의자를 돌려 지후를 바라봤다.
“환영 할아버지가 말한 거 기억나? 목숨을 잘라 팔았다는 거?”
“네. 왜요?”
“몇몇 증후인한테 물어봤는데 그 제안을 받은 사람이 좀 있더라고. 딜레마라는 곳이라는데 혹시 아는 거 있어?”
딜레마라는 말에 지후는 뜨끔했지만 놀람을 숨기고 무뚝뚝하게 답했다.
“아뇨.”
“좀 알아봐야겠어.”
“왜요?”
“증후인들한테 접근해서 뭘 하는지 알아봐야지. 아까 환영 할아버지가 찾아왔는데 건물 1층에서 서성대다가 그냥 가셨어. 그 할아버지를 인식해서 자동으로 닫히는 문을 만들었거든. 막상 그렇게 돌려보냈는데 걱정은 되더라. 진짜로 죽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지후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어제 말하는 거 못 들으셨어요? 그 할아버지는 얻고자 하는 게 있으면 상대의 죄책감이든 뭐든 건드려서 얻을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하물며 목숨을 잘라서 팔든 죽든 우리가 알 바 아니죠. 안 그래요?”
“왜 알 바가 아니야? 증후인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게 우리 일이잖아. 우리 일의 기준은 증후인의 옳고 그른 행동이 아니야.”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사람을 더 돕는 게 낫죠. 선의를 악용하려는 사람보다 정말 절실한 사람을요!”
악을 쓰듯이 소리치고 지후는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파란색 명함이 올려져 있었다. 광한에게 당장 연락해서 그곳으로 옮기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던 송이의 눈빛이 아른거렸다. 죄책감에 가까운 묵직한 감정이 지후를 잡아당겼다.
그래, 딜레마가 뭐 하는 곳인지까지만 알아보자. 그다음에 옮겨도 늦지 않는다. 지후는 그렇게 다짐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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