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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신드롬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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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휘 Sep 28. 2024

[연재소설] 6. 리셋 증후군과 상승 정지 증후군

동엽을 출장 보내고 송이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요청해서 받은 3분기 행복지수 동향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전 연령대에서 행복지수가 하향했는데, 특히 10대, 20대의 우울지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SNS의 발달로 인한 과시하고 비교하는 문화의 성행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 때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송이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의자에 기댔다. 지후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몇 되지도 않는 인력이 증후인을 찾아가 잠깐의 안정감을 심어준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180도 변하지는 않을 터였다.


게다가 그 몇 안 되는 인력 중에서 한 명은 며칠째 방안에 틀어박혀 있고.


송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작은방 앞으로 가 문을 쿵쿵 두드렸다.


“야! 윤지후!”


잠시 후에 문이 한 뼘 정도 열리고 지후가 그 사이로 얼굴을 절반만 내비쳤다. 밤을 새웠는지 눈이 퀭했다. 끓어오르는 답답함은 잠시 억누르고 송이가 물었다.


“너 뭐 하는데 이렇게 조용해?”

“그냥 있어요. 왜요?”

“왜요오? 너 잠깐 나와 봐.”


부루퉁한 얼굴로 방 밖으로 나온 지후를 소파에 앉히고 송이는 컴퓨터 의자를 끌고 와 맞은편에 앉았다.


“요새 무슨 일 있어?”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근데 왜 그래? 말해 봐.”


지후가 시선을 피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송이는 지후의 정수리에 시선을 둔 채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2분 정도의 침묵 후에 지후가 입을 열었다.


“저도 이제 일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짧은 한마디가 송이의 가슴을 찔렀다. 하하호호 즐거운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깬 것 같았다. 물론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이 들고 나감은 살고 죽는 것처럼 당연지사임을 모르지 않았다.


이 사무실에도 본래 네 명이 있었다. 모두 떠나가고, 송이만 남았다. 이제 다시 지후와 동엽까지 세 명이 됐다. 사무실에 다시 사람 냄새가 돌았다. 함께 출장을 나갈 땐 어릴 때도 가본 적 없는 소풍을 가는 것처럼 즐거웠다. 그래서 모르는 척했을 뿐.


“일자리 알아보고 있어?”


서운함을 숨기고 물었다. 하지만 섭섭한 눈빛은 숨기지 못했는지 눈이 마주친 지후가 시선을 피했다.


“마땅한 데가 없네요.”

“그래. 구해지면 미리 알려줘.”


냉랭한 정적이 흘렀다. 송이는 의자를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읽다 만 보고서를 다시 읽는 척했다. 뒤통수 너머로 지후의 발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송이는 보고서를 내려놨다. 그래프며 글자며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렸다. 누군가 사무실 문 앞에 서면 울리는 알람이었다. 송이는 모니터로 입구에 설치된 CCTV 화면을 봤다. 중절모를 쓴 사람이 사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고객인가 싶어서 문을 열자 위아래로 모시 한복을 입은 풍채 좋은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가씨, 잘 있었나?”


그가 호탕한 인사를 건넸으나 송이는 쌀쌀맞게 물었다.


“양환영 할아버님, 어쩐 일이시죠?”


환영은 대꾸도 없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후 청년은 어디 갔나?”

“지후는 지금 없…….”


무심코 고개를 돌린 송이의 눈에 방에서 나오는 지후가 보였다. 소파에 앉은 환영을 마주한 지후의 표정이 금세 험악해졌다.


“넌 들어가 있어.”


송이가 명령조로 말했으나 환영이 막아섰다.


“들어가긴 어딜 들어가.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나? 지후 청년, 한 번만 더 도와줘.”

“빨리 들어가라니까!”


송이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나 지후는 물러서지 않고 소파 쪽으로 걸어 나와 날 선 목소리로 환영에게 물었다.


“제가 연락할 땐 잠적하시더니 이제야 찾아오신 이유가 뭐예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그때 그 능력이 필요해서 왔지.”


환영이 느물거리며 웃자, 지후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환영을 노려봤다. 1년 4개월 전의 일이 떠오른 듯했다.




작년 5월이었다. 어린이날을 낀 연휴가 끝나고 나니 우울 측정기 알람이 잦았다. 그에 반해 4월 말에 진경수 팀장이 신드롬을 나가면서 일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직원이라고는 송이, 광한, 그리고 한 달 차 신입인 지후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5월 8일에 사건이 터졌다. 지후는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저녁 8시 20분이었다.


우울 측정기에서 자살 경보가 울려 송이와 광한이 팀을 이루어 출동했다. 혼자 남은 지후는 신입 매뉴얼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측정기가 울렸다. 바로 송이에게 연락해서 증후인이 도보 10분 거리에 있으며 우울지수가 파란색이라고 보고했다. 전화기 너머로 송이가 “파란색 정도면 네가 혼자 갔다 와도 되겠다.”라고 말했다.


지후는 리볼버 형태의 스마일 건과 휴대용 우울 측정기, 증후인 감지 센서 그리고 자신의 능력 물약까지 가방에 챙겼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혼자 해내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혼자 해내서 송이와 광한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증후인이 있는 장소는 10층짜리 회사 건물의 옥상이었다. 바닥 곳곳에 작은 웅덩이가 질 정도로 비가 오는데도 증후인인 양환영 할아버지는 우산도 쓰지 않고 허리까지 오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지후는 거리를 두고 잠시 그의 동태를 살폈다. 손에 쥔 종이 쪼가리와 핸드폰 화면을 번갈아 보던 환영이 손에 쥔 종이를 주머니에 쓱 넣고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만큼이나 표정이 어두웠다.


이때다 싶어 지후가 환영에게 다가갔다. 환영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지후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생기를 잃은 눈동자로 지후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후는 광한에게 배운 대로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환영이 물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병이 있다는 거지?”

“병까진 아니구요.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는…….”

“껄껄껄, 그게 그거지.”


환영이 걸걸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


“며칠째 가슴이 답답하고, 이유를 알 수 없게 울컥 울컥하는 것도 병이라고 하면 그럴 수 있겠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하던 고개를 돌려 지후에게 대뜸 물었다.


“자네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그 질문이 기폭제가 되어 지후의 머릿속에 돌이키고 싶던 순간들이 파바박 떠올랐다. 행정고시를 보겠다고 매달리지만 않았더라면, 공부를 좀 더 잘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갔더라면, 수능 때 상한 김밥을 먹지 않았더라면, 취업이 안 된다는 문과로 가지 않았더라면……. 가능만 하다면 인생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후는 밝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드롬 직원이 증후인 앞에서 우울한 과거를 늘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예상한 답변이었는지 환영이 껄껄껄 웃고 나서 말했다.


“그래, 지금이 한창인데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설마 있겠나. 나는 자네만 할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 그땐 회사에서 이름을 날렸단 말이야. 5년 연속 최우수 실적 사원 양환영!”


환영이 연극배우처럼 양손을 활짝 펼쳤다. 그러나 금세 흥이 식었는지 팔을 축 늘어뜨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뭐하나. 늙어빠졌는데. 아, 오늘 내가 은퇴를 했어. 은퇴식 같은 건 절대 안 하겠다고 한사코 거절했는데도 밑에 놈들이 기어코 식을 꾸리더라고.


이제 회사에서 나가라는 게지. 배은망덕한 자식들……. 회사가 어려울 땐 내 발로 나가겠다고 해도 붙잡더니, 이렇게 으리으리해지니깐 내보내려고 해? 엉?


구멍가게 같은 회사를 10층짜리로 만드는 데 내 인생을 바쳤어. 자그마치 사십 년을. 자네, 믿어지나? 자네가 산 날보다 내가 이 회사에 더 오래 있었다고!”


“대단하시네요.”


지후가 예의상 치켜세웠음에도 환영이 성질을 픽 냈다.


“대단하긴! 키워놔 봐야 고마움도 모르는데. 등 떠밀려서 강당으로 갔더니 아들놈이 와 있었어. 제 마누라하고 손주도 데리고. 명절 때마다 해외 나간다고 코빼기 한 번 안 비추더니 어버이날이라고 꽃까지 들고 왔더라고. 이제 다 죽어가는 노인네한테 콩고물이나 떨어질까 싶어서겠지? 흥!”


환영이 자조적인 코웃음을 치더니 이내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자네같이 혈기 왕성한 청년은 모르겠지만 내일 눈 뜨는 게 무서워. 아주 비참할 거야.”


반발심이 든 지후는 뭐라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자신이 그 마음을 왜 모르나. 수능을 망치고, 원하는 대학보다 세 단계는 낮춰서 입학하고,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행정고시에 매달린 시간들. 그때는 눈을 뜨는 게 무서웠다. 고작 이렇게밖에 못 살면서 숨을 쉰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모두 다 초기화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얼마나 심심하면 내가 로또를 다 샀어, 로또를. 성실하게 돈 벌고 저축해서 아들 아파트까지 해준 이 양환영이가.”


환영이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종이를 꺼내 지후를 향해 흔들었다.


“에잇! 다 죽었다, 양환영이. 그냥 팍 떨어져 죽어버릴까? 하하핫.”


말뿐이던 환영이 이번에는 난간을 두 손으로 짚고 오른발을 대면서 뛰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팍 뛰어버려 엉? 어? 어……?”


환영의 왼발이 빗물에 미끄러졌다. 지후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환영의 몸이 난간을 넘어 사라졌다.


“아아아악!”


아래로 떨어진 환영의 비명이 점점 멀어져갔다.

지후는 덜덜 떨리는 손을 움직여 가방에서 물약을 찾았다. 하얀색 물약을 발견하자마자 단숨에 삼키고 눈을 꼭 감았다. 그러고는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제발 돌려줘!’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눈물이 맺혀 부예진 시야로 환영이 보였다. 믿을 수 없어서 소매로 눈을 훔치고 눈을 번쩍 떴다.


정말로 환영이 눈앞에 서 있었다. 참았던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으로 환영을 살린 것이다.


“나 왜 여기에 있어? 나 분명 떨어지지 않았어?”

 

환영이 공포와 의문이 섞인 눈동자를 분주하게 굴리면서 물었다.


“시간이 되돌아갔어요. 1시간 전으로요. 할아버님 살아나신 거예요!”


지후가 환영의 양어깨를 손으로 잡고 벅찬 듯 소리쳤다.


“1시간 전이라고? 그럼 몇 시야?”


환영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7시 45분이요!”

“비켜!”


환영이 지후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더니 좀 전까지 삶에 회의를 느끼던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지후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리둥절한 채로 신드롬 사무실로 돌아온 지후는 환영이 무슨 일을 벌인 건지,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인터넷 뉴스 기사를 읽다가 알았다.


[은퇴한 직장인의 기적 같은 로또 1등 당첨 —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신이 주신 선물인가 봐요.]


당첨자가 상금 13억이 적힌 패널을 들고 있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풍채만 봐도 누군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후는 환영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라는 응답만 돌아왔다.


그 일을 계기로 물약은 개인이 소지하지 않고 샘플 박스에 넣어 보관하게 됐다. 이런 번거로운 변화마저도 자기 탓 같아서 지후는 괴로워했다.


이건 사고이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송이의 위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덤으로 지후에게는 증후인들에 대한 분노와 회의감이 생겼었다.




“그 돈으로 잘 사시는 줄 알았는데요?”


지후가 샘솟는 분노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환영은 태연하게 답했다.


“다 썼지. 자식 키우느라 못 산 거 사고, 안 해 본 거 하니까 금방이던데? 자네는 젊어서 모를 거야. 이 나이 되면 웬만한 희로애락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 자극적인 걸 좀 해야지.”


환영이 검지와 엄지를 문질렀다.


“도박에 손 대신 거군요?”


“하하핫. 젊어서 그런가, 머리가 잘 돌아가네. 이제 하는 법을 알았으니까 한 2억만 있으면 빚진 것도 금방 갚을 수 있어. 그러니까 그 능력 한 번만 더 빌려 쓰자. 내일 8시 20분에 다시 올게. 근처에 로또 가게 있는 것도 다 알아 놨어.”


지후는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있는 인내심을 쥐어짜서 겨우 한마디를 뱉었다.


“이젠 알아서 하세요.”


“알아서 해봤지. 내가 무슨 짓까지 한 줄 알아? 목숨을 잘라다가 팔았다고, 목숨을!”


그 말을 듣고 송이가 불쑥 물었다.


“목숨을 팔아요? 어떻게요? 어디다가요?”

“그게 어디 있나, 어디 보자.”


환영이 말에 리듬을 넣어 중얼거리면서 주머니를 뒤지더니 파란색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내가 빚 땜에 골머리 썩고 있을 때 어떻게 알고 찾아왔더라고. 시커멓게 입고 와 가지고 어디 잡아가는 놈들인 줄 알았네.”


“제가 볼게요.”


지후가 송이보다 먼저 명함을 낚아챘다. 손에 쥔 명함을 힐끔 보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환영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안 도와드릴 거니까 이제 나가세요.”


“지후 청년, 자네가 안 도와주면 나 죽어. 나 죽으면 자네 탓이야, 알지?”


“나가시라구요!”


지후가 악을 질렀다. 그러자 송이가 환영의 등을 밀면서 밖으로 이끌었다. 떠밀려 가던 환영이 지후를 향해 외쳤다.


“내일 다시 올게! 그땐 꼭 도와줘!”


사무실 문을 닫고 송이가 지후에게 물었다.


“명함에 뭐라고 적혀 있어?”


“평범한 명함이던데요? 제가 보관하고 있을게요. 누나는 잃어버릴 거 아녜요.”


“그건 그렇지.”


지후는 송이의 눈치를 살폈다. 송이가 컴퓨터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지갑에서 광한 선배가 준 명함을 꺼냈다. 그것과 환영이 주고 간 명함을 책상에 나란히 놓았다. 적힌 이름만 다르고 디자인이 똑같은 두 개의 명함을 번갈아 살폈다.


‘딜레마……. 뭐 하는 곳이지?’


지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에 빠졌다.


표지 Image by  Clker-Free-Vector-Image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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