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없는 사람

항상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죠.

by 다뜨베이더

그에게는 바퀴가 달려있어서 언제라도 금방 멀어져가거나 또 언제라도 쉽게 다가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바퀴가 없었고, 바퀴를 얻을만한 기회조차도 없었다.

며칠 전 체부동의 인적 없는 거리를 지날 때 공중전화에서 갑자기 벨이 울렸다. 나는 이끌리듯 공중전화박스 안으로 들어섰다. 전화를 받아 무슨 얘기든 귀 기울여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화기가 너무 더러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잠시 고민하는 동안 전화벨은 더욱더 애타게 울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설득당할 정도로.


“여보세요?”

“……”


상대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슨 얘기든 귀 기울여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여보세요?”
“저기...”
“네 여보세요?”
“저기... 죄송한데... 아무 얘기나 좀 들려주세요.”


‘아차! 내가 무슨 얘기든 해야 하는 상황이구나!’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 전화를 받을 지 말 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왜냐면 수화기가 정말 더러웠거든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 전화를 받아서 이렇게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건지... 사실 저는 무슨 얘기든 귀 기울여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중전화박스의 유리창 너머로 깜빡이는 가로등이 보였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눈이 아픈 것 같아서 나도 가로등과 같이 눈을 깜빡였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잘 진행되는 것을 두고 ‘잘 굴러간다’라는 표현을 쓰지요. 저는 그 말이 몹시 싫습니다. 저는 바퀴 없는 사람이거든요. 태어날 때부터 바퀴가 없었고, 바퀴를 얻을만한 기회조차도 없었습니다.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일방적이 될 때 그 균형이 깨진다고 생각해요. 바퀴는 말하자면 일종의 반칙 같아요. 제가 뛰어가서 따라잡을 수도 없고, 원할 때 도망칠 수도 없어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가로등이 보이지 않는다. 깜빡거리다가 결국 꺼진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여기가 어디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밖은 깜깜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보려는데 뜻밖에도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그 공중전화박스에는 바퀴가 달려있었어요. 당신은 지금 아주 멀리까지 흘러왔답니다. 바퀴 달린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항상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죠.”


나는 바퀴 달린 공중전화박스에 주저앉아 일출이 보이는 평지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얼굴과 손에 먼지가 가득했다. 수화기보다 내가 더 더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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