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하렴. 네 동생이야."
우리 집 정원에는 나무가 많았다. 나는 항상 그 나무들을 보면서 자랐으므로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하나 둘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뭇가지에서 새 눈이 돋고, 잎이 자라고, 때론 꽃이 피거나 열매가 열리고, 또 낙엽이 지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세상은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만만치 않았다. 나는 두 번쯤 사랑에 실패했고, 세 번쯤 직장을 잃기도 했으며, 네 번쯤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공부도 못했고, 그렇다고 외모가 잘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주도 없었다. 어딜 가나 말 그대로 '열등생'이었다.
하루는 무심코 의자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늘 지나쳤던 정원 구석에 생전 처음 보는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것이었다.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긴 나는 어머니께 여쭤보았다.
"어머니! 저 구석에 있는 나무는 뭐지요?"
"뭐긴! 저 나무는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거기 있었는데..."
그 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유난히 키도 작고, 그렇다고 이파리가 무성한 것도 아니고, 뭐 하나 특별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나무에게 '열등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해 여름, 부모님께서 나에게 폭탄선언을 하셨다.
"너에게는 조금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너에게 동생이 생길 것 같구나."
'맙소사! 이 나이에 동생이라니! 그것도 무려 스물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이라니!'
동생을 얻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기뻐하는 부모님 앞에서 마지못해 "네... 동생. 동생 좋죠."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원으로 시선을 돌린 채 괜히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알 수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열등나무는 여전히 볼품없는 모양새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나랑 참으로 비슷한 신세로구나...'
그때 문득 열등나무의 그 볼품없는 잎사귀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열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열매를 맺다니... 어쩌면 네가 나보다 훨씬 낫구나!'
열등나무의 열매는 생각보다 훨씬 탐스러웠다. 나는 조심스레 열매로 손을 가져갔다.
내가 열매에 손을 대려는 순간, 열매가 거짓말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퍼~~엉!"
이윽고 터진 열매 안에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님께서는 허겁지겁 달려 나오시더니 나에게 말했다.
"인사하렴. 네 동생이야."
이 불가사의한 일이 있은 후에야 나는 비로소 열등나무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내 시선이 멈춘 곳에는 작은 화분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안에 한 줌의 흙이 있었다. 열등나무는 그저 한 줌의 흙에서 자라나 가지를 내밀고 잎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불현듯 한 송이 팬지꽃이 생각났고, 나도 다시금 그 팬지꽃이 부끄러워졌다.
멍하니 창 밖을 보면서 속눈썹으로 무지개를 만들어보았다.
- 존경하는 신영복 선생님께 바침.
2016.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