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덕분에

"귤이라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by 다뜨베이더

"퍽! 쨍그랑!"

"왓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실수로 떨어뜨린 핸드폰이 책상 모서리를 맞고 튕겨나가 바닥에 놓여있던 알코올램프를 깨뜨렸고, 램프의 불이 카펫으로 옮겨 붙은 것이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보! 물!"

아내는 문틈으로 조그만 유리잔에 담긴 물을 한 컵 내밀었다.

"여기. 물."

"오! 노! 마실 물 말고! 불났단 말이야!"

아내는 그제야 내 방안의 사태를 파악하고는 황급히 냉장고로 뛰어갔다. 잠시 후 아내가 들고 온 것은 귤 한 봉지와 맥주 한 병이었다.

아내는 귤을 불타는 카펫 위에 쏟아붓고는 나를 향해 "밟아!"하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2분 뒤...

화재는 완전히 진압되었다. 발바닥이 좀 따끔거리긴 했지만, 천만다행이었다.

"귤로 불을 끄다니..."

나는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도 끊긴 지가 언젠데, 생수도 다 떨어졌다고 어제 분명히 말했잖아. 아까 그게 마지막 한 컵이었어."

아내는 등을 돌린 채 여전히 맥주를 마시며 차갑게 말했다.

"귤이라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평소에 과일 사 먹는 것 갖고 잔소리 좀 하지 마. "

아내는 계속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이게 다 당신 덕분이야. 귤이 없었다면 정말......"

아내는 내 말을 자르고 나에게 소리쳤다.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해. 그럼 불이 난 건 누구 덕분인데?"

나는 뭉개진 귤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듯 ─ 내심 아내에게 들리길 바라며 ─ 말했다.

"사실 불이 난 건 핸드폰 탓이었고, 불을 끈 건 귤 덕분이었어. 말하자면 내 탓도 아니고, 당신 덕분도 아니란 얘기지. 그러니 우리 서로 누굴 탓하거나 하지는 말자구."

아내는 "푸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거실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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