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엎드려서 글을 써야겠어."
나는 어둠 속으로 손을 뻗어 펜을 찾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항상 펜이 있는 곳의 주변은 어두웠다. 손의 감각만으로 원하는 물건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비슷한 여러 개의 물건 중에서 쓸만한 한 가지를 찾아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은 순전히 운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펜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을 때, 아내가 물었다.
"어제 그림 그릴 때 썼던 펜은 어디 뒀어?"
"그건 책상 위에."
"근데 왜 또 펜을 찾고 있어?"
이런 질문에는 대답도 하기 싫다. 글을 쓸 때와 그림을 그릴 때, 서로 다른 종류의 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내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어제,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진 것이다.
"아직도 못 찾았어? 어떤 펜을 찾는 건데? 내가 찾아줄까?"
아내는 한 번에 세 개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나는 "응! 빨간색이 아닌 것!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런 건 머리가 좋은 사람만 가능하다.
아무튼, 나는 빨간색은 정말이지 질색이다.
아내의 입 근처에서 ─ 설마,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닐 거야 ─ '푸후'하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거실을 내다보니 아내는 귤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둠 속을 한참 뒤적거린 끝에 나는 원하는 종류의 펜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나를 위해 새 노트를 꺼내 주었다. 의자에 앉아서 첫 문장을 쓰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허리가 아파왔다.
"나 엎드려서 글을 써야겠어."
아내는 나를 위해 이불을 깔아주었다. 나는 편하게 엎드린 자세에서 어떤 짧은 글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두 글자를 적은 뒤, 펜을 내려놓고, 노트를 덮고, 잠시 고개를 베개에 파묻고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내가 잠든 뒤, 나를 지켜보던 아내는 '푸후'하고 아까와 비슷한 한숨을 쉬며, 내 양말을 벗겨주었고, 내 머리맡에 놓여 있던 노트를 펼쳐보았다고 한다.
노트의 첫 페이지에는 '나는'이라는 두 글자가 빨간색으로 쓰여 있었으므로, 아내는 내 심정을 모두 이해한다고 잠든 내 귀에 대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