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영화 박열을 보았다. 박열과 영화에 나온 인물들과 사건들 모두 실제 역사에 기록된 것이었기에 그 울림이 강렬하였다. 일본의 대역죄인이 우리나라의 영웅이 된 이야기... 일본을 농락한 박열의 재판은 을사늑약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온갖 핍박과 고통의 역사 속에 있던 우리에게 큰 희망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박열이라는 개인이 어떻게 우리나라의 영웅이 되고 우리 민족의 상처를 어루만지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는 우리의 역사와 더불어 또 다른 이야기를 양 축에 두고 있다.
한국인 박열과 일본인이자 아나키스트인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이야기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모든 재판을 함께 하였으며 끝내 대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재판의 과정 중에 그녀는 항상 확신에 차 있었다. 박열에 대한 확신,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 그리고 사랑에 대한 확신...
재판의 말미에 선고에 앞서 마지막 말을 전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박열의 본질을 사랑한다......' 과연 인간의 본질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비록 영화 대사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말에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인간의 본질.... 상대의 본질을 사랑하게 된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사형을 선고받고 박열과 함께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누군가의 본질에 대해 궁금해하고 탐구하고 비로소 알게 되는 모든 과정이 사랑일까?
혹자는 그들의 연애기간이 3년이었기에 가능하다고 농을 치기도 하고.... 자기 확신과 신념을 사랑과 착각한 것이라고 로맨티즘을 조롱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녀의 대사가 어색하고 생소하지만.... 아름답다... 시나리 상의 표현이었을지라도 진짜 역사 속 살아 숨 쉬던 가네코 후미코의 진심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한 줄이고, 정녕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본질을 사랑한다. 우리는 보통 한 사람의 이미지와 첫인상에 끌리게 되고 그로 인해 만들어낸 나만의 허상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면서 내가 만들었던 이미지를 교체하고 사랑의 경로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사랑은 무르익어가겠지.... 그러면서 본질로 접근해 가는 것일까... 아니면 끝까지 내가 만들어낸 허상과 상대방의 본질 사이에서 갈등하고 부정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누군가의 본질을 궁금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게 가능할까? 나의 본질 또한 누군가의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을까? 나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추하고 아름답지 못한 부분까지 순수하게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을까? 나 또한 그 사람의 본질을 두려움 없이 마주할 수 있을까?
그녀의 한 마디에 수많은 물음표가 생겼지만,,, 그녀의 한 줄은 여전히 아름답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이어서 더더욱.... 죽음마저 막지 못한 그녀가 사랑에 대한 신념과 의지가 부럽다.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를 그녀의 사랑이 내게도 왔으면 좋으련만..... 아.... 가네코 후미코의 한 마디가 나의 소녀감성을 깨우는... 누군가의 본질이 너무나 궁금한 밤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