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관하여

by 김필필

사람들은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를 이야기할 때 나이는 그 사랑을 특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를 가로 짓는 카테고리가 되기도 한다. 시간은 사람의 내부에 축척되고 축척된 시간 안에는 그 사람을 가름 짓는 핵심적인 무언가를 내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3차원적인 공간과 4차원적인 사고의 축을 통해 켜켜이 쌓인다. 시간이 만약 옷감이라면 씨실과 날실 가닥 하나하나에 그 시간을 겪어낸 사람의 향기가 배어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시간은 마침내 한 인간을 설명해내는 가죽과 피부가 되고 옷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한 인간의 외모와 행동을 통해 그가 향유했을 시간의 틈새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은 또 나이는 한 인간을 이야기하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충분히....


며칠 전 집에 온 엄마가 무언가를 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얼핏 보니 블루베리와 레몬을 넣어 만든 잼을 보관하는 유리병이다. 뚜껑을 열려는 것인지 닫으려는 것인지 한참을 낑낑거리며 모습이 여간 화가 올라온 게 아니다. 그러기를 한참.... 드디어 성공했는지 잼 샌드위치를 만들어 오더니 식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내어 오시며 '나이 먹으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유리병 뚜껑을 닫는 게 젊었을 때는 쉽더니, 이제 손 감각이 둔해져서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네... 다른 건 모르겠더니 병뚜껑 닫을 때 나이 든 게 실감이 난다.' 하신다. 그렇게 생각할 거리는 던져지고... 샌드위치는 맛있고... 또 그 시간은 과거가 되었다.


나이 듦에 관하여.... 생각했다. 엄마는 젊었다. 엄마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은 언뜻 나와 너무 닮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또 하나의 나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한다. 사진 속 엄마는 남들보다 머리숱이 유별나게 많았고, 얇상한 입술에 오뚝한 콧날, 수줍은 눈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입체적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는 늙은 엄마가 시간이라는 조건만 달리하는 평면 속의 젊은 엄마를 들여다보고 있는 장면이 기이했다. 시간에 대한 감각은 얼마나 무디고 덧없는가. 사람들은 아직도 스스로를 과거 속에 머물러 있게 하고 그때를 회상하고 사유하는 힘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소싯적에 어땠는지 또는 잘 나갔을 때 자신은 어땠는지에 대한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의미 없어진 시간 속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혹시 오늘도 옛날을 추억하며 시간 속 나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았는지?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인간의 몸은 쇠락해간다. 정신만이 시간이라는 우주의 영역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와 또 미래를 마음껏 유영하지만, 쇠락한 신체와 마주하는 순간 정신 또한 스스로를 정체시키고 인간과 사회가 정한 나이라는 관념에 한정시킨다. 그렇게 몸과 마음은 나이를 먹어간다. 언뜻언뜻 스스로를 정체시켰던 정신은 인간의 기억 속 가장 소중하고 풋풋했던 순간으로 회귀하려는 습성이 있는 듯, 신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주입하기도 한다. 나도 가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웃어젖히던 습관대로 입이 찢어져라 웃고 떠들다가 문득 창에 비친 나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왕년에 달리기 좀 했던 기억에 앞서 달려가는 아들을 잡아보려 전력질주를 하지만 몇 걸음 못가 후달리기도 한다.


엄마도 그랬겠지... 저마다 스스로의 나이 듦에 관해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대부분 그 순간이 가히 반갑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나이 듦이라.......... 어릴 적 해결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여유롭게 웃어넘기거나 힘들었던 사랑의 기억이 추억거리가 되는 순간, 또는 한가롭고 따사로운 햇살과 흔들리는 나뭇잎조차 경이롭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연륜에 문득 느껴지는 감사함 또한 나이 듦에 관한 긍정적인 마인드가 아닐까?


엄마에게 말해줘야겠다. 비록 손의 감각이 둔해져 병뚜껑을 열 때마다 신체의 쇠락을, 나이 듦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지라도 엄마의 잼 샌드위치는 훨씬 정갈해지고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완벽하게 적당한 잼의 양과 황금비율로 잘린 식빵으로 인해 더욱더 완벽해졌다고.... 싫어하려나? 늙은 엄마 놀린다고 한 대 쥐어박으려나? 무튼 병뚜껑으로 시무룩해있는 엄마의 모습이 비단 엄마만의 모습이 아닐 것을 알기에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나이 듦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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