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크기

by 김필필

한 달 여 전 생일 선물로 강아지를 사달라는 아이를 달래며 반강제로 거북이 두 마리를 샀다. 거북이를 좋아한다는 취향을 억지로 아이의 머릿속에 삽입하고 잘 돌보겠다는 마음에도 없는 다짐을 받아내며.... 그래도 강아지보다는 괜찮겠지 하면서 샀다. 생각보다 목돈을 들여 거북이 두 마리와 거북이 전용 어항과 각종 장식과 여과기까지 구매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보다 더 들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 거북이 이름을 정했다. 처음에는 별이 달이라고 할까? 무지개와 나무로 할까? 아이는 아이답게 재잘재잘... 엄마는.. 부르기 힘들어, 재미없어, 그게 뭐야... 틀에 박힌 어른답게.. 서로서로 흥분의 대화가 오고 갔다. 가벼운 논쟁 끝에 사랑이와 행복이로 정했다. 적당히 아이답게 귀엽고, 적당히 어른답게 식상한 이름.....


그리고 거북이는 아이의 무관심과 엄마의 잔소리와 하소연을 먹고 무럭무럭 잘 생활했다. 그런 줄로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긴 연휴 끝에 돌아와 보니 한 마리가 물길을 따라 맥없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그 녀석이 사랑이인지, 행복이인지 헷갈렸다. 사실 처음부터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분명 돌멩이 위에 올라가 있길 좋아하던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물속에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고 기분이 이상했다. 아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잠깐 동안 숨기고 뭐라고 설명할까 생각했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에게 죽음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수많은 장례식장을 방문했었고, 친인척을 포함하여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행복이인지, 사랑이인지 이름도 분명하지 않은 거북이의 죽음은 달랐다. 뭔지 모를 불안함과 당황스러움과 쓸쓸함과 가여움과 낯섦이 있었다. 키우던 금붕어가 죽었을 때와는 달랐다. 우리 집에 있는 꽃기린이며 콩알 선인장의 죽음과 비교하기에는 무언가 꺼림칙함이 있었다. 죽음의 크기의 차이인가? 그렇다면 그 크기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적잖이 당황한 내 마음속에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죽음에 대한 슬픔은 무엇 때문일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가, 애잖함인가, 삶의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남겨진 자에 대한 애처로움인가......


이름도 제대로 몰랐고, 말로만 생명의 소중함을 논하면서 마트에서 푼 돈 들여 사다 놓은 거북이의 죽음에서 나는 나의 죽음에 대한 관념을 들여다보았다. 분주한 장례식장과 산 자들의 생에 밀려난 죽은 자 들에 대한 관심과 삶의 무게에 밀려난 죽음에 대한 외면에 나 또한 죽음을 그저 그런 삶의 한 과정으로 무디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맞이한 죽음에 한 동안 멍하게 혼란스러웠고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왜 갑자기 사소하다면 사소한 죽음에 혼란스러워하는가... 처음 맞이하는 죽음도 아니고, 어렸을 적 무던히도 죽어나가던 동화책 속 주인공들도 두렵지 않았는데.... 동화책 속 그들은 도깨비방망이에 맞아 죽기도 하고, 사과를 먹고 죽고, 바늘에 찔려 죽은 듯 잠들기도 하고, 물에 빠져 죽고, 지옥불에 떨어져 죽기도 했다. 어린 남매는 과자집으로 자신들을 유인한 할머니를 커다란 오븐에 밀어 넣어 죽이기까지 했는데도.... 어린 나는 죽음에 대한 관심보다는 예쁜 공주와 멋진 왕자와 맛난 과자집에 정신이 팔려있었을까.... 갑자기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 속에 흘려보냈던 모든 죽음의 실체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했다. 죽음의 크기... 슬픔의 한도가 언어로 가늠할 수 있기는 한 걸까? 죽음 자체가 슬픈 것일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무지의 두려움일까? 죽음에 대한 이미지는 죽음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오는가, 죽음을 맞이한 생명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에서 기인하는가...


아이에게 사랑이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했다. 아마 사랑보다는 행복을 더 내 옆에 잡아두고 싶었나 보다. 아이는 어릴 적 동화 속 수많은 죽음을 바라보던 나처럼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은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막연하고 추상적인 어떤 것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겠지... 아이와 사랑이를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 주변에 떨어진 꽃으로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산 자들의 위안이 되어줄 의식들을 치르고... 난......... 잊었다.


며칠 전 우연히 올라오는 길에 사랑이를 묻었던 곳을 보았다. 흔적도 없었다. 죽음의 순간에 비해 너무 가벼이 내 마음속에서 떠난 사랑이의 죽음처럼 흔적도 없었다.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물속에 뱅글뱅글 돌고 있는 행복이가 있다. 놀랐지만,,,, 아마 나도 모르게 예상하고 있었던 듯 차분하다. 처음에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쓸쓸함보다는 더 낮고 침울한 무언가가 올라온다. 슬픔 같지는 않다. 아련하거나 쓸쓸하지도 않다. 죽음의 크기나 무게의 차이라면 둘 다 동일할 수도 있을 텐데.... 사뭇 다르다. 나라는 매개체로 표출되었던 내 안의 죽음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쓸쓸함은 그 부피가 줄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상념의 크기는 내 안에 확장된 듯하다. 그리고 난 이 글을 쓴다.........

곧 또 잊겠지만....... 내일은 사랑이 옆에 행복이를 묻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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