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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아이의 좌절을 허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마음이 아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화기 화면에 두 글자가 뜬다. 


"아들"


오늘은 고등학교 들어가서 처음 시험을 보는 날이기 때문에 전화를 받으면서 숨을 고른다. 나의 한 마디 한 만디가 아이에게 격려가 될 수도 비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하려 조심하고 애를 쓴다. 

아이가 먼저 오늘 시험은 어땠고 어려웠던 과목에 대해서 이야기를 죽 이어간다. 아이의 목소리에서 이미 실망과 좌절이 가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할 수 없지. 이미 벌어진 일이니, 다시 더 노력을 해야지" 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느껴진다. 


잠시 짧게 생각하고 대답한다. "괜찮아. 이제 시작이니까 힘내. 엄마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할게."


자녀의 좌절을 바라보는 것은 엄마에게는 무척 마음이 아픈 일이다. 실제로 아이를 배속에 열 달을 품고 낳아 아기부터 키워 온 보통의 엄마들은 아이의 감정을 오롯이 그대로 나의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순간 나도 코끝이 찡했다. 하지만 내 감정이 뭣이 중요하냐. 바로 마음을 고쳐먹고 내 마음을 추스르고 담담하게 아이에게 적절한 조언과 격려로 용기를 북돋으려고 애쓴다. 


사실 이런 크고 작은 상황을 마주하기 전에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또는 그 이전에 내가 자녀였을 때 그리고 내 삶을 살아오면서 정리해 둔 생각들이 이럴 때 나를 붙들어 주는 것 같다. 어떻게 바라보고 말할지 지탱해 주는 근간이 된다고나 할까?


좌절과 고통은 우리 인생에 피할 수 없는 것이거니와 때로는 귀한 것이기도 하다. 


이게 무슨 이야기야? 좌절과 고통은 얼마나 아프던가?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연민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내 발목을 잡으면서 주저 앉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보니 좌절과 고통이 없이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삶의 진리와 지혜가 인생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것이 유머와 위트가 있는 조물주의 솜씨인 것 같다. 물론 조물주가 잔인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고통을 아시느냐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에게 주고 싶은 보물을 잘 숨겨놓고 그것을 찾고 갈구하고 기꺼이 수고하는 자들에게만 허락하는 것 같다. 어렵게 찾고 발견해야 그 가치를 알고 소중히 여기니까 말이다. 


마흔일곱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고서야 인생이 얼마나 유한한 지 비로소 마음으로 알게 되었고, 하루하루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줄 알게 되었고, 내게 주어진 "오늘"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 보게 되었다. 


더 어릴 적에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해서 차선으로 살면서 그래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분명하지 않아 "이 일을 지속해야 하는가? 그만해야 하는가? 나의 꿈을 찾아가야 하는가? 여기 머물러야 하는가? 방황하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 


노력을 해도 되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쓰나미 같은 상황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봤기에 실패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좌절과 실패의 경험은 내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녀가 아프고 고통 속에 있던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아이들을 내 의지와 노력으로만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게 되었다. 날마다 건강하길, 안전하길, 오늘도 무탈하길 기도하고 그런 하루하루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내 인생의 깨달음처럼, 나의 자녀들도 저들만의 지혜를 찾고 인생의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면 저들의 좌절의 시간에 내가 끼어들어 교통정리를 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도움을 청하는 아이를 돕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열일곱 살이나 된 아이에게 묻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솔루션을 제시하거나 실행하는 것을 얼마나 무례한 일이고 섣부른 일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좌절의 시간을 통과하여 아이가 더 단단한 내면을 가지게 되길 소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오늘 아이에게 스스로의 좌절을 들여다보고 다독이며 이겨내는 시간을 허용하자니 내게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끼어들고 싶다. 빨리 도와주고도 싶다. 그러나 내 방법이 그의 전체적인 인생에서 최적의, 최선의 방법이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는가 말이다. 



두 번째 생각해  본 것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흘러 보내도 되는 찰나의 시간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것을 캐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이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좋은 내신을 받고 누구에게나 자랑할만한 그런 대학에 가는 것이 정말 내가 아이에게 추구하라고 권할만한 본질적인 인생의 목표인가 물어보았다. 나는 아이에게 고작 그런 단기적인 목표가 네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살아보니 그렇다. 정말 그렇다. 좋은 환경과 상황에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행복인 줄 알고 손을 뻗은 곳에서도 어려움이 있고 좌절을 경험하고 눈물을 짓기도 한다. 억지로 좋은 대학까지 데려다준다 치고 그 후에 대학에서, 군대에서, 인생에서 만날 수많은 난관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패와 장애물 앞에서 누군가는 포기하고 넘어져 있지만 누군가는 일어난다. 그 차이는 뭘까? 나는 그것은 바로 자신과 세상을 소신껏 바라보는 시각과 행동하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억지로 줄 수 없고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아이에게 그것을 선물로 주고 싶다. 연습하고 훈련할 시간을 주고 싶다. 내가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올 테고 (사실 이미 사회 속에서 쉽지 않은 십 대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 살아내야 하는 그런 거친 광야 같은 삶 속에서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고 믿고 용기를 내어 살아가게 하려면 오히려 세파에 휘둘리지 않는 그런 단단한 시각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 같다. 시험 성적 따위는 문제가 아니야. 이런 속상한 하루쯤은 너의 긴 인생에서 점과 같다. 그러니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쿨하게 말해 주는 엄마가 되고 싶은 거다.  


사실 회사 일로 힘들어서 좌절하고 침대에 얼굴을 박고 우는 마흔아홉이나 된 딸에게도 친정엄마는 이런 말을 해 주셨다. 살아보니 별거 아니야. 덕분에 나도 다시 일어났다. 


이러니 오히려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하며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충분히 고민하고 그런 목표를 찾고 있는지, 이미 발견했는지, 꿈꾸고 있는지 물어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간절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을 이게 겨우 시작했으니, 꿈을 향한 여정의 공부를 대담하게 받아들이고 어제의 너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다시 도전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아직 나도 그런 엄마가 되지는 못했다. 내게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니 고등학교의 첫 시험을 대하는 , 첫 좌절을 바라보고 대하는 나 또한 오늘 아주 좋은 연습의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오늘 몇 점 몇 점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지금 그 목표를 향해 순항 중인지, 노력이 더 필요한 지 아이와 함께 점검하자.  "아 그래 내가 좀 더 노력이 필요하구나. 나의 상태가 지금 여기구나" 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방향을 점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얼마나 긴장했을까?
수고 많았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야. 


엄마도 더 깊이 더 멀리 너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보면서 우리만의 여정을 각자 함께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게. 지금 엄마가 해야 하는 정작 중요한 일은 네가 건강한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나기 위해서 쿨하게, 담담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동행하는 용기인 것 같다. 그렇게 용기를 낼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 안에 어찌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 가득한 날, 마음이 아리다고 헤야 할까, 그런 날을 오롯이 버티고 묵묵히 살아내고자 애쓰는 오늘 우리 엄마들을 같이 격려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의 마음을 담담히 적어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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