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없이 시작한 1차 프리랜서 시절 (2003~2017) 나는 인맥왕이 되고 싶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왔을 뿐인데 정신차리고 보니 수십억, 수백억 매출을 올렸다는 많은 사장님들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참 열심히도 누군가를 만났다. 네이버 까페를 만들어 비슷한 일을 하는 1인기업가들을 위해 정기모임도 하고, 재능기부도 하고, 강의도 개설했다. 잠깐 스쳐 지나가듯 알게 된 사이일지라도 나에게 커다란 행운을 가져다 줄거라 믿으며 모든 요청에 YES를 외쳤다. 김포에 사는 나는 강북, 강남, 잠실, 분당, 용인을 수도 없이 오갔다. 대부분의 인연들이 그냥 내 곁을 흘러갔고 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1년 7개월간의 직장생활(2017~2018)중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 자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비서였던 나는 경영진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싫어도 꾹꾹 참아가며 응대해야했다. 그게 내가 해야하는 일이었고, 회사가 나에게 월급을 주는 이유였다.
사무직의 탈을 쓰고 감정 노동을 했다. 신속하고 친절한 응대는 비서가 갖추어야 할 필수 자질이었고, NO라는 거절은 용납되지 않았다. 내가 담당했던 CEO는 업무시간 전부를 사람 만나는 일로 채웠다. 접견실, 회의실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비어있는 모든 사무공간에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매일이 똑같았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 수십잔의 차를 만들어 내고, 오라면 오고, 부르면 가고, 시키면 했다.
직장생활에 지쳐가는 날들이 늘어가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이 났다. 어린 내 아이들의 수발을 들어야 할 시기에 나는 내 인생과 관련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나는 회사 아니면 만날 일도 없고, 만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많지도 않은 월급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했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불행할 이유가 없는 내 인생이 구겨지고 있었다.
퇴사같은 육아휴직 후, 나는 의도적이고 자발적으로 고립을 선택했다. 누가 적군이고 아군인지를 판단할 시간이 절실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기로 했다. 정말 아무도 안 만났고 알고 지낸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두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아는 사람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났다.
불필요한 만남을 줄이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나의 시간을 내어주고 남는 시간엔 책을 읽었다. 1년에 40,000km를 넘게 운전했던 내가 2년동안 자동차로 움직인 거리는 고작 4,000km. 누군가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와도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만남을 뒤로 미루거나 거절했다. 집과 운동센터, 큰 아이 학교와 작은 아이 유치원만 오가는 생활을 했다.
신기하게도 꼭 만나고 싶은 소수의 사람만 만나는 삶,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삶은 생활의 질을 높여주었다. 월급받는 삶을 던져버리니 쓸데없이 소란스러웠던 내 주변의 어지러운 풍경이 사라졌다. 대신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퇴근 후에도 끊이없이 울려대던 휴대폰도 얌전해졌다. 고요와 평화가 찾아왔다.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고립이 아니었다. 필요없는 것들을 버리는 시간이었고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 옆으로 내가 먼저 다가가는 시간이었다.
육아맘의 특권 중 하나는 누군가와 금전을 담보로 엮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이라는 굴레에서 잠시 벗어난 동안에는 하기 싫은 일은 굳이 안해도 되며, 만나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만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육아도 직장생활만큼 고달프다. 육아맘이라 해도 분명 하기 싫은 일도 있고,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보다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진다. 육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인맥들을 억지로 관리할 필요도 없고 생계가 걸린 일이라면 꾹 참는 것이 당연하지만 육아하며 짬짬히 하는 소액 부업도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
직장인과 비슷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엄마의 시간활용과 활동반경도 제약한다. 하지만 여유시간마저도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머물며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왜 하는지도 모르는 업무로 야근을 해야하는, 안보면 그만인 사장님과 이름도 모르는 주주들을 위해 일하는 직장생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잠깐의 여유시간에는 나를 위한 소소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 엄마가 입고 먹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겐 의미있는 교육이 되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일하며 가족 안에서 행복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생활이 좋다. 엄마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책감, 살뜰한 아내의 역할을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았던 워킹맘일 때보다 지금이 더 당당하고 행복하다. 내가 가족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나에게 엄마라는 의미있는 역할을 부여해주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건네줬다. 엄마라는 역할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니 아이들은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전부가 되었고, 남편은 든든하고 믿을만한 스폰서가 되어 주었다.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고, 하기 싫은 일은 적당히 거절해도 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도 되는 엄마라는 직업, 이런 직업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족에게 계산없이 나눠주는 엄마는 이런 호사를 충분히 누려도 된다.
나는 당분간 온전한 엄마로 살면서 이런 선택의 자유를 계속 누리고 살기로 했다. 그간 직장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하나씩 해보려 한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의 호사로움을 나와 아이들을 위한 성장의 시간으로 채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려 한다. 거절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게 아니라 나의 시간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