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아니면 도, 퇴사 아니면 이혼

미안하지만 이렇게라도 퇴사해야겠습니다.

by 멘탈튼튼 김프리

2012년, 나는 A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김대리였다. 회장님 바로 아래 임원인 K사장을 케어하고 있었고 2012년 중순 K사장은 나에게 새로운 회사로 함께 이직할 것을 제안했다. 부도난 대기업 그룹사에 있던 건설회사 M&A를 자신이 주도했고 다음 해에 그 회사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K사장이 없는 A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직장인의 생명을 더 길게 유지하기 위해 약 5년간 다니던 A사를 퇴사 후 B사로 이직을 했다. M&A가 이제 막 성사된 신규법인이라 K사장의 역할은 막중했다. 비서였던 나는 누가 부여하지도 않았지만 회사를 키워야겠다는 사명감과 K사장 옆엔 내가 꼭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을 느껴 출산 후 60일 만에 회사에 복귀했다.


하지만 반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월급쟁이 K사장과 나와 나이가 비슷한 돈 많은 젊은 회장(실제 사주)는 돈 때문에 갈라지기 시작했고 서로 고소고발을 하며 남 보기에도 부끄러운 법적 다툼을 했다. K사장은 금방 다른 임원으로 대체되었고 K사장 추천으로 비서실에 입사하게 된 나 역시 몇 달 후에 직장을 잃었다. 축소된 여의도 정치판의 더러운 꼴을 2013년 31살에 경험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나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2015년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2017년 7월, 2013년 나와 함께 직장을 잃었던 K사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새로운 회사의 M&A를 성사시켰고 그 회사의 사장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며 당장 다음 달부터 출근을 하면 된단다. 2012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당시 큰 아이는 6살,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17개월째였지만 앞뒤 따지고 잴 것도 없이 막무가내로 회사에 다시 재취업하겠다고 남편에게 통보했다. 아이 등원 준비를 도와줄 아이 돌봄 선생님을 빠르게 구했고 그 다음달 8월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직장은 강남 한복판 삼성동이었고 왕복 출퇴근 시간은 4시간. 매달 월급이 나오고 4대 보험을 가입해주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강남에서 일하는 당당하고 멋진 워킹맘, 김대리에서 김과장으로 남 모르는 승진이 기뻤다. 과거 유명한 그룹사에서 분할되어 새롭게 태어난 신생회사였지만 네이버에 검색하면 당당히 홈페이지가 뜨는 회사였다. 일도 새로 배울 필요 없다. 케어하는 상사도 같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강남과 김포를 오가는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돌봄 선생님과 남편의 노력으로 아이들은 매일 08시 30분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1등으로 등원해 19시에 엄마를 만났다. 10시간 30분 만에 보는 아이들의 얼굴엔 피곤함과 외로움이 묻어있었지만 애써 괜찮다고, 다른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도 대부분 비슷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그러다 어느 날,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한다면 행복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지난 1년 7개월을 뒤돌아봤다. 남편과 내가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직장생활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했다. 그런데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피곤했고, 아이들은 외로웠다. 소득은 조금 늘어났지만 삶의 질은 떨어졌다. 우리부부는 하루가 멀다하고 다퉜고 이혼이라는 단어가 입 밖에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내 인생의 목표가 직장인으로, 누군가의 비서로 커리어를 쌓는 것인가? 직장인, 그 다음 단계는 없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봤고 심플한 결론이 내려졌다. 퇴사하면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무행정서비스, 차응대, 전화응대 같은 일 따위를 하느라 내 소중한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남의 회사에서 남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내 아이들과 내 가족들에게 쓰는 게 맞다는 정답을 빠르게 찾아냈다. 직장인이 아니어도 돈을 버는 방법은 수천 가지였고, 프리랜서로 돈을 벌어 본 경험이 있으니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다.


회사는 나 아니어도 잘 돌아가지만 내 아이들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는 순간 바로 퇴사 결심을 했다. 바로 다음 날 K사장에게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통보했고 가장 빠르게 회사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떠올렸고 절대로 붙잡을 수 없는 핑계를 만들었다.


"남편이 이혼하자고 합니다"


내 명의로 된 집이 있고, 대출이 1원도 없는 중형 세단이 있으며, 남편은 같은 나이 또래보다 훨씬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는 것을 K사장과 회사 임원들 대부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돈 때문에 직장을 다닌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혼을 할 계획은 없었지만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건 목에 칼이 들와도 퇴사를 하고 말겠다는 나의 강력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모든 경영진은 나를 붙잡아 둘 구실을 찾지 못했고 다소 과격한 퇴사 핑계는 나를 일주일만에 직장에서 탈출시켜주었다. 인수인계 따윈 할 생각도 없었고, 후임자를 구하는 건 내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은 내가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등원 전쟁의 한복판에서 홀로 버티며 자신의 전우가 돌아오길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남편이 그렇게 견뎌준 덕분에 나는 회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없다는 큰 공부를 했고 엄마라는 역할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적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2018년 12월부터 바로 오늘까지 "진짜 엄마"로 살고 있다.


솔직히 회사에서 하는 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면 퇴사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매일 벌떼같이 찾아오는 사업 중개인들, 신생 법인 회사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어 담으러 오는 명함 없는 회장님들 덕분에 비서라는 직무의 본질을 더 현실적으로 깨닫게 된 것 같아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다.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사과를 하거나 해명을 해야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내가 다니던 회사는 각종 송사에 휘말려 여러가지 의혹을 받고 있고 K사장은 이런 저런 이유로 여전히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약 10년간의 직장생활 기간 중 스스로 회사를 그만둬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어떻게든 회사라는 조직 안에 붙어 있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며 살았다. 하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회사에는 비록 이메일 전송이었지만 멋지게 사표 한번 던져봤다. 진짜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한 길로 이끌고 가는 것 같아 세상 후련하고 통쾌하고 즐겁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직장인이라는 사회적 역할은 없다. 작가, 크리에이터, 예술가, 사업가, 엄마, 아내, 그리고 그냥 "김지현"으로 살아갈 것이다. 명함 없이도 내 이름 석자 하나만으로도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갈 날들을 상상하니 행복하다.


XX회사 김과장은 이제 없다.

엄마로 살아가며 다양한 일을 하는 김프리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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