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씨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메마른 하늘에 번개가 치는 그런 날이라고 해야 할까. 찬 바람이 사라지고 봄바람이 볼을 스치는 초봄의 한 대낮에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래서, 너 이제 엄마가 주는 김치도 안 먹을 거야? 너가 먹을 건 냉장고 안에 따로 두고 먹어! 칸을 나누란 말이야. 이년아! 너 남편한테 그런 말도 못 하고 사니? 불효 막심한 년! 그래 엄마 없이 잘 먹고 잘 살아봐라!”
아파트 놀이터에서 지운이 자전거를 뒤에서 끌어주고 있는데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화나고 격앙된 목소리. 이제 반찬을 보내지 말아 달라는 딸의 간곡한 부탁에 엄마의 내장이 뒤집어졌다. 내장이 뒤집어진 게 분명히 맞았다. 갓 태어나 엄마의 모유수유를 거부한 것도 아닌데 엄마는 딱 그만큼의 화를 냈다. 자식의 내장을 채워주는 일이 엄마의 몫이었고, 엄마의 역할이었는데 결혼한 딸이 그걸 거부하니 엄마의 내장이 뒤집어질 만했다.
경선씨는 친정 엄마의 내장 뒤집어진 소리를 다 받아내고, 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은 모든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내장이 뒤집어지는 소리는 전염성이 강해 그 소리를 받는 이의 내장도 뒤집어지게 했다. 그 뜨거워진 내장을 찬 물에 헹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일상생활의 단조로움과 편안함이 몹시 간절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가시투성이 일 때, 누군가가 곁에서 그 가시가 어떤 연유로 생겨났으며, 그 가시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야기를 해주면 마음은 곧장 가라앉기 마련이다. 그래서 흥분하는 이 곁에는 흥분하지 않는 이가 필요하다.
“언니, 언니가 엄마를 이해해 줘야 돼. 엄마 반찬을 이제 안 받겠다고 했을 때 엄마 표정이 어땠는 줄 알아? 언니가 봤으면 진짜…. 내가 그때 엄마랑 같이 마트에서 장 보고 있었거든. 엄마가 과일 매대에서 포도 한 박스를 힘없이 들면서 나한테 묻더라고. ‘너는 먹을 거지?’하고. 나는 먹을 거라고 했더니 엄마가 카트에 포도를 상자째 넣으면서 아기처럼 웃더라. 내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 줄 알아? 엄마는 진짜 그냥 우리 입에 먹을 거 넣어주는 거 그 자체가 행복한 거야.”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인다. 먹이는 행위를 처음에는 훈련을 받다가 연습과정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장착된다. 모유를 먹이기도 하고 분유를 먹이기도 한다. 그 행위의 주체는 엄마다. 갓 태어난 아기 입의 지름이 2cm나 될까. 자신의 몸에서 나온 아기에게 어미는 먹이는 일을 시작하는데 이 일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된다.
경선씨는 지운이가 어린이집에 입소해 준비물로 수저와 포크를 보내라고 했을 때 대형마트 앞에서 주책스럽게 눈물을 훔쳤다. 그날 일기장에 경선씨는 썼다. “앞으로 홀로 떠먹어야 할 밥, 자식이 스스로 밥을 떠먹어야 하는 날들로 밀어 넣은 기분”이라고 쓰고, 한번 더 울었다. 평생 자식 입에 밥을 떠먹여 온 어미가 그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애틋한 애착 아니면 혹은 집착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지운이가 ‘행복주택’이라고 말해서 아빠에게 ‘행복한 집’으로 수정당했던 그 단어에는 남편과 엄마의 갈등이 맺혀 있었다. 경선씨가 행복주택에 잠시 살게 된 건 남편과 친정엄마의 갈등 때문이었다. 이 문장을 경선씨 남편이 본다면, 덕분에로 고칠 게 뻔하지만 경선씨는 때문에라고 쓰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때문에와 덕분에는 강 하나를 건너야 하는 차이가 있는데, ‘때문에’라고 말하는 사람은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의 마음, ‘덕분에’라고 말하는 사람은 강을 건넌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노라고 경선씨는 생각했다.
분명한 사실은 모든 인간은 각자가 살고 태어난 각자의 ‘강’이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강에서 나고 자란 인간은 결혼과 동시에 배우자의 새로운 강을 만나게 되는데, 그 새로운 강물의 물줄기에서 쏟아지는 이질감은 먼 나라의 문화를 만난 것처럼 생소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같은 언어, 같은 문화권에서 살았다 하더라도 결혼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두 문화의 결합이기도 했다. 결혼으로 맺어진 두 인간은 서로의 합집합을 교집합으로 착각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겹쳐질 수 없는 다른 범위의 구역이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 구역은 고통스럽고 치열하게 부딪히거나 아니면 아예 소외당하거나 방치된다. 그 공간이 그 영역 자체로 아름답게 존재하기란 수의 세계에서나 가능했다. 이것은 경선씨가 결혼 후 장서 갈등을 몸으로 겪어내며 알아낸 삶의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