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템플스테이
템플 스테이에 도착을 해서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 배급받은 보살님 패션 단체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드디어 1박 2일 템플스테이가 시작된 것이지요.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룸메이트들과 자기소개로 하는 시간인데, 제 룸메이트들은 다들 좀 늦는지 저 혼자 있을 수 있는 덕분에 한 시간 정도 방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뒹굴뒹굴 쉴 수 있었지요. 오후 4시 집합 시간에는 절 입구에 모여 이번 템플 스테이에 함께 하실 스님도 뵙고, 같이 할 도반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던 게 저를 포함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서른 명 정도가 대부분 외국인이었습니다. 프랑스, 모로코, 미국, 캐나다, 폴란드, 독일, 홍콩 등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었지요. 모두 다 저처럼 넷플릭스의 Chef's Table 다큐멘터리를 보고 말이지요!
프로그램 첫 순서는 스님과 절 경내를 한 바퀴 돌며 사찰 소개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백양사는 1400년 전 백제 시대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사찰인데, 처음에는 백암사(白巖寺)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지금의 백양사(白羊寺)가 되었습니다. 한자 뜻 그대로 이 절의 유래에는 흰 양이 등장하는데요, 어느 날 이 곳 스님의 꿈속에 흰 양이 나타나 '사람이었을 때 죄를 많이 지어 동물로 환생하였으나, 스님의 설법 덕분에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해서 백양사로 이름 짓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절 입구에 있는 보리수나무 밑에는 하얀 양 한 마리가 있지요. 물론 살아있는 건 아니지만요!
저녁 식사를 마친 이후에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1박 2일을 함께할 룸메이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들 서울과 부산에서 오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 늦게 오는 바람에 저녁 식사 시간도 놓친 분도 계셨지요. 제가 있는 방에는 서울에서 공대를 다니고 있다는 귀여운 23살 대학생, 어릴 때 캐나다로 이민 가서 지금은 내과 의사를 하신다는 매력적인 언니 한 분, 그리고 한예종에서 모던 댄스를 가르치러 한국에 살고 계신다는 카리스마 있는 타이완 교수님 한 분 그리고 저, 이렇게 네 명이 한 방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나이도, 직업도, 취향도 모두 달랐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 Chef's Table 정관 스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두 이 곳에서 만나게 되었지요. 혼자 여행을 떠날 때는 그 여행에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가끔은 중요한데, 참 이번 여행은 행운이 많이 따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저녁 예불 시간이 되어 범종 앞에 모였습니다. 템플 스테이를 하는 저희들은 저녁 예불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대신 야외에 있는 범종을 한 사람씩 나와서 쳐볼 수 있도록 했는데 외국에선 이런 걸 본 적이 없는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줄을 서서 한 번씩 종도 치고 사진도 찍고 했어요. 종을 친 후에는 한 자리에 모여 108 염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끝났어요. 사실 이번 템플 스테이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이라이트는 그 다음날 마지막 일정으로 잡혀있는 정관 스님의 쿠킹 클래스였기 때문에 다들 일찍 들어가서 내일을 준비하고 싶은 눈치였죠. 심지어 그 다음 날에는 새벽 4시 반에 있는 새벽 예불에 전원 참석을 해야 되니 모두 큰 시험을 앞두고 있는 것 같았지요. 뜨끈한 방에 다시 돌아와 룸메이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청하고 얼마 안 있다 모두들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