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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s Table 정관 스님과 가을 요리 여행 4

백양사 템플스테이

by Silvermouse

제가 엄마가 되어, 다시 우리 엄마를 생각해보니 참 고마운 것이 제가 자라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 거예요. 물론 이 곳 저곳 참 좋은 곳으로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건 매번 방학이 되면 해인사, 화엄사 등 전국 방방 곡곡의 사찰로 어린이 템플 스테이를 다닌 것이지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 '굴렁쇠'라는 어린이 불교 잡지가 있었는데, 전 어려서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그 잡지 구독도 하고 제 글도 보내고 그랬거든요. 그 굴렁쇠 잡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템플 스테이였는데 4살 어린 제 동생과 항상 같이 다녔지요. 그때도 템플 스테이란 용어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트렌드를 앞서가는 엄마 덕분에 제 템플 스테이 구력은 25년이 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시절에 어떻게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는 새벽 예불을 어떻게 다 따라 했나 싶어요. 그뿐이 아니지요. 밥그릇을 싹싹 비워 마지막 남겨둔 단무지와 약간의 물로 그릇을 씻어내고 또 그 물까지 마셔야 되는 발우공양도 했고,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과 숙소에서 일주일 정도를 생활했으니까요. 과연 제 딸이라면 지금 그런 프로그램에 보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참 그 시절, 그런 곳에 저희를 보낸 엄마도 대단하고, 그걸 해낸 저랑 동생도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대견하다고 얘기해주고 싶네요. 그래도 그때의 추억이 힘들고 불쾌한 게 아니라,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인상 깊은 추억이 된 걸 보니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진짜 절 생활을 해봐서 그런지 사실 최근에 유행하는 템플 스테이를 다녀보면 '햇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밥은 밥인데 그냥 간편하고 쉽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그런 밥 같은 것 말이죠. 가마솥 밥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 밑에 누른 누룽지로 숭늉까지 먹을 수 있지만 햇반엔 그런 게 없잖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밥을 즐길 수는 있었지만, 전 옛날 가마솥 밥 같은 진짜 절 생활을 할 수 있던 어린 시절이 좀 그립기도 합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와 달 보며 탑돌이


어찌 되었던 둘째 날 아침이 밝았어요. 아니 밝지 않았어요. 깊은 산속 새벽 4시 반은 적막한 찬 공기가 멈춘듯한, 여전히 깜깜한 밤이었죠. 1등으로 조용히 일어나서 방을 나가신 무용과 교수님을 빼고, 나머지 2,3,4등은 나란히 사이좋게 지각을 했습니다. 저희가 대웅전에 도착했을 땐 이미 예불이 막 시작이 되고 있었지요. 난방이 안되어 차가운 나무 바닥 작은 방석 위에 앉아서 절도하고 명상도 하면서, 대망의 108배를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스님께서 새벽 예불 끝났다고 울력(빗자루 청소)을 하러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름과 동시에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첫 마음이 좀 더 컸던 건 사실입니다.


4시 반에 일어나는 삶을 매일매일 해내야 되는 스님들, 몇 년을 하시면 익숙해지실까. 익숙해지시긴 할까?


경내를 깨끗이 하고 마음이 공덕을 짓는 울력 시간. 아래위 할 것 없이 누구나 빗자루 하나씩 들고 맡은 구역을 쓱싹쓱싹 청소했습니다. 청소라는 것이 쓰레기를 치우는 게 아니라 밤새 떨어진 나뭇잎들을 쓸고 땅에 있는 흙과 자갈들을 가지런하게 정리를 하는 것이에요. 저희가 열심히 낙엽을 모아놓으면 이 절에서 일당백 역할을 하시는 듯한 어린 행자 스님께서 바삐 움직이며 치워주시지요. 집에서는 먼지 치우는 것도 귀찮아 룸바에게 그 역할을 전적으로 맡기고 살고 있지만, 여기서 치우면 어느샌가 나무에서 툭 하고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계속 치우고 있자니 우리 집에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시카고에 돌아가면 꼭 하루에 한 번 아침에 내 집을 깨끗이 쓸고 닦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기왕이면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쓱싹쓱싹 울력 시간
낙엽이 다 치워진 깨끗한 대웅전 앞의 마지막 울력은 빗자루로 오른쪽 왼쪽 쓸며 모래 정리하기
아래 위, 동,서 구분 없이 모두 다 빗자루 하나 들고 참여하는게 매력적인 울력
땅 한 번 쓸고 산 위 경치 보고 감탄하고, 내장산 청소


울력이 끝나고는 스님과의 차담 시간. 큰 방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다도를 배웠습니다. 저희나 홍콩, 중국에서 오신 분들은 낯설지 않지만, 이런저런 순서에 따라 차를 만들고 또 첫 잔, 두 번째 잔, 세 번째 잔의 맛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시는 스님의 다도 시간은 서양인들에게 꽤나 흥미로운 시간 같아 보였습니다. 새벽에 깬 덕분에 10시가 좀 지나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지만, 다들 꾹 참고 있었어요. 바로 좀 있으면 이번 템플 스테이의 하이라이트 정관 스님의 쿠킹 클래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Chef's Table 정관 스님과 가을 요리여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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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s Table 정관 스님과 가을 요리여행-4

Chef's Table 정관 스님과 가을 요리여행-5

이보다 더 멋진 여행이 또 있을까, 템플 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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