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템플스테이
아침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드디어 이번 템플 스테이의 마지막 일정이자 모두가 가장 큰 기대를 안고 기다린 정관 스님의 쿠킹 클래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관 스님은 백양사 안에서도 비구니들이 생활하는 작은 암자인 천진암에 살고 계세요. 천진암은 백양사에서 좀 더 산 위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있는 곳이지요. 다들 일찍 일어나 새벽 예불도 하고, 울력도 하느라 배가 많이 고픈 상태였지만, 절 앞에서 팔고 있는 군밤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의 유혹을 물리치고 천진암으로 올랐습니다.
내장산 단풍을 구경하느라 관광객들로 가득 찬 백양사 입구와는 달리 천진암으로 가는 길은 아주 한적하고 조용했어요. 비자나무 숲으로 우거진 천진암 가는 길엔 비자 향기가 가득했고, 또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울긋불긋 단풍들은 숲은 마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요. 가파르진 않지만 조금 한적한 산책길로 접어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진암 간판이 나왔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이 정관 스님의 산속 작은 부엌을 찾아오기 위해 멀리서부터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한 자리에 모인 거니까요.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천진암에 다다랐습니다.
천진암에 도착해서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정관 스님 부엌으로 이동하기 전 잠깐 포토 타임을 가졌지요. 백양사 입구에서부터 천진암까지 올라오는데 완만한 산책길이라 그리 높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뒤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꽤 높이 올라와있었습니다. 상쾌한 산바람을 맞으며 다 같이 정관 스님이 계신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쿠킹 클래스가 열리는 스님의 아뜰리에는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바람이 불어오고 다시 나가는 숲 속의 부엌이었습니다. 부엌 밖 화단에는 꽃들이 한들한들 피어있었지요.
부엌은 서른 다섯 명 정도의 참가자들로 꽉 찼습니다. 미리 점심 공양 준비를 하시느라 조금 늦게 부엌에 등장하신 정관 스님은 TV에서 보는 것보다 더 작은 체구지만 아주 단단한 느낌이 드는 분이었습니다. 스님은 여기 모인 모든 사람 하나하나가 궁금하시다며 한 사람씩 돌아가며 간단히 자기소개와 이 곳에 왜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하자고 하셨습니다. 프랑스에서 온 가족, 독일에서 온 친구, 홍콩에서 온 자매들, 미국에서 온 부부, 혼자서 아시아를 여행 중인 호주인 등, 대부분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곳을 찾게 되었다고 했지요. 정관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깊이 마주치며 잘 왔다고,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이 날 만든 메뉴는 총 3가지, 톳 두부 무침, 버섯 조림, 미나리 무침이었지요. 정관 스님은 재료 손질을 하시면서, 냄비에 물을 끓이면서, 스님의 언어로 우리가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왜 채식을 해야 되는지, 재료에 담긴 에너지를 온전히 다 먹는 법, 자연과 호흡을 하며 식사를 하는 법 등 단순히 혀에 즐거운 음식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이 즐거운 요리와 식사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요리 방법은 지극히 단순하고, 쉬워 보였습니다. 정확한 계량컵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손맛처럼 재료를 툭툭 넣어 요리를 쉽게 완성시키는 게 인상적이었지요. 그리고는 아까 부엌에 들어오기 전 봤던 화단 꽃들을 바로 꺾어와 완성된 음식과 함께 그릇에 담아냈습니다. 음식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왔지요.
요리 클래스가 끝나고 스님이 미리 준비해두신 다양한 음식들과 수업 중에 만든 음식을 다 같이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재료에 직접 만든 된장, 간장, 500년 된 탱자나무에서 딴 열매로 만든 탱자청, 이틀을 꼬박 걸려 만든 조청 등으로 맛을 낸 스님의 요리는 소박하면서도 정직한 맛이었습니다. 쌉쌀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고, 또 맨드라미 꽃 등 생전 처음 먹어보는 식감으로 독특하기도 한 정관 스님의 요리는 그 어떤 유명한 셰프의 요리보다 창의적이었지요. 기본적인 음식 만드는 순서는 있지만, 계절의 변화와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따라 레시피도 바뀌는 게 우리네 부엌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 이후에 이어진 스님과의 명상 시간. 부엌 앞 야외로 나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감고 명상을 했습니다. 스님은 항상 배부르게 식사를 하지 말고 자연의 공기를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 준비한 사찰 음식은 가짓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원래 사찰에서 스님들이 드실 땐 밥, 국, 김치, 장아찌 이렇게 단출하게 준비를 한다고 하셨지요. 요즘 사찰 음식이 주목을 받으면서 좀 더 대중적이면 좋을 사찰 음식이 너무 높은 곳에만 있는 것 아닌가에 대해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이렇게 누구나 신청하면 올 수 있는 템플 스테이를 통해 사찰 음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정관 스님이 참 대단하고, 작은 거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이 직접 깎아주신 단감을 나누어 먹으며 템플 스테이 모든 일정이 끝을 향해갔습니다. 모두들 아쉬워 스님의 부엌 앞을 한참 동안 떠나지 못하고 한참 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로 어제 오후에 이 곳에 왔을 뿐인데 며칠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주말을 서울에서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지만,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또 한참을 걸어서, 바로 이 계절에, 이 곳 전라남도 백양사까지 온 선택을 한 것이 참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내년 가을에도, 저에게 이런 마법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