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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Feb 17. 2020

자가용 비행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미국 다국적 기업의 불완전한 M&A 덕분에...

역시나 올해도, 나의 항공사 로열티 프로그램 등급은 최고 등급이다. 2019년 한 해 동안만 총 139회, 즉 2-3일에 한번 꼴로 공항을 가서 비행기를 탔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난 승무원도 아니고, 비행기 기장도 아니고, 로또를 맞아 일년 내내 세계일주를 다니는 행운의 주인공은 더더욱 아니다. 내 직업은 경영 컨설턴트다. MBA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이 일을 시작한 이후 나는 매년 100회 이상의 출장을 다니고 있고, 새로운 분야로 이직을 하지 않는 한 아마도 내년에도 내 항공사 로열티 등급은 올해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보다도 더 자주 공항에 출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바로 미국의 다국적 기업의 경영진. 이들은 마치 매일 아침 저녁 통근 버스를 타듯이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어떤 기업들은 자체 Corporate Jet, 즉 기업 전용 비행기를 운영하며 경영진들을 실어나른다. 영화에서 보는 에어포스원 같은 럭셔리 전용 비행기가 아니라, 정말로 우등 고속버스 느낌의 그런 coporate jet 말이다. 일하는 시간도 부족한데 도대체 왜 이렇게 동서남북 돌아다니게 할까? 이렇게 잦은 비행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미국 기업들의 성장 역사와 경영진들의 숨겨진 고충을 살펴봐야 한다.

 

6대의 Corporate Jet을 운영하고 있는 Tyson Foods (미국판 하림 그룹). (출처: Flightdocs)


M&A로 성장한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 United Airlines 사례


2017년 MBA 재학 당시 나는 시카고 110층 건물의 Willis Tower에 위치한 United 항공사의 Network Operations Center (NOC)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United 항공사에 근무중인 MBA 선배의 도움으로 주최된 행사였는데, 우리는 NOC 시설 투어는 물론 주요 임원진과의 Q&A를 할 수 있었다.


NOC는 United 항공사가 일일 약 5,500여편의 항공편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중앙 관제소이다. 비행기가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안전하게 비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사항을 통합 관리한다. 항공류 탑재량, 운항 고도, 운항 루트 등 이륙 전 노선 별 계획을 수립하고, 이륙 후에는 대형 모니터로 운항중인 비행편의 위치를 실시간 모니터링하여 안전을 책임진다. 그 외 운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들을 주요 공항 별 지표화시켜 중앙 대시보드에서 지속 관리하고, 중앙 관제 모니터 주변의 380여개의 개별 관제 데스크에서는 실시간 일기예보, 비행 연착 및 취소 관리 등 세부사항들을 추적관리하고 있다.

 

United 항공사의 Network Operations Center. (출처: United.com)


대한항공의 약 14배 규모의 어마어마한 스케일 (비교: 대한항공은 일일 약 400편 운항). 어떻게 이러한 거대 항공사가 탄생한 것일까? 미국 내 여러 다국적 기업들이 그랬듯이, United 항공사는 M&A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다. 2010년 경쟁사였던 Continental 항공사와 합병하며 글로벌 최대 항공사로 (지금은 글로벌 2위)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이 합병의 역사 속에 미국의 다국적 기업 경영진들이 흔히 겪는 고충이 숨어있다.


M&A 후 불완전한 부분 합병/통합


"United는 Continental과 합병 후 대부분의 오퍼레이션을 통합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통합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어디일까요?" 시설 투어가 끝나고 Q&A 시간이 되자 이날 행사를 준비해준 MBA 선배가 우리에게 먼저 퀴즈를 냈다. 합병한지 7년이 지났음에도 United 항공은 승무원 노조를 통합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합병 발표 후 9년이 지난 뒤에야 진정한 united United 항공사로 도약


2018년 10월까지 United 소속 승무원은 United 소속 기체만을, 그리고 Continental 소속 승무원은 Continental 소속 기체만을 탑승할 수 있다는 노사 규정이 존재했다. 그 결과 United 항공사는 5,500편의 노선을 United 기체, Continental 기체로 구분하여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합병  비행 연착률이  2% 증가했다. 매일 100편 이상의 비행편이 추가 연착되었다는 것인데, 고객 불편의 증가는 곧 항공사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M&A 후 너무나도 흔한 불완전한 부분 합병/통합의 의도치 않는 결과이다.


한 해 130회 출장 - 왜 필요할까?


MBA 졸업 후 나는 경영 컨설턴트로서 여러 기업들을 자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주요 기업들 다수가 M&A 후 수 년이 지난 시점에도 United와 비슷하게 통합 합병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수의 본사 사옥을 운영하는 기업

본사는 합병했지만 주요 경영진이 이사를 거부한 기업

각종 운영 절차 및 인프라가 통합되지 않은 기업


제각각 인수합병 후 통합과정이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이러한 불완전 합병/통합으로 인해 대면 미팅, 경영진 워크샵을 추진할때면 '어느 도시에서 만날 것인가? 누가 travel 할 것인가?' 등의 logistics를 해결하는데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2019년 2Q, 나의 주요 출장 노선. 올해는 출장 강도가 조금 줄어들까?


2017년 첫 프로젝트 당시 담당 파트너였던 David은 경영 컨설팅으로 복귀 전 미국 다국적 기업의 COO였다. 그에게 왜 COO 자리를 포기하고 컨설팅으로 돌아왔느냐고 물어봤었는데, 그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다국적 기업의 COO로서 해외 제조설비 등 잦은 출장이 힘들었다는 것. 미국 경영진의 잦은 출장 강도를 암시하는 답변이었던 것 같다.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찾아 COO 자리를 포기하고 경영 컨설팅으로 돌아왔다니! 정말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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