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mouse Mar 11. 2020

5000명을 움직인 컨설팅 '보고서'

경영 컨설팅: 파워포인트 밖으로 뛰쳐나가다

67초. 1950년 Formula One (F1) 핏 스탑 팀원들이 타이어를 교체하고, 경주차를 주유하는데 소요된 시간이다. 이들에게 그들의 핏 스탑 영상을 보여주고 "우리 시간 단축해야 됩니다. 영상물을 분석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해주세요"라고 했을 때 그 효과는 어땠을까? 단언컨대 10-20% 이상의 시간 단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 잘하고 있는데, 뭐를 더 개선하라는 거예요?"라는 반응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67초의 핏 스탑. 1950년 당시, 잘 훈련된 팀의 기록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2013년 F1 경주팀이 같은 활동을 단 3초 만에 달성하는 영상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팀원 전원이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변화를 위해 전력질주를 했을 것이다. 이건 비단 F1 경주장 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내가 경영 컨설팅을 하며 만나는 수많은 기업들, 임직원들은 이 50년 전의 F1 경기장에서 들었던 주문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 바로 우리 경영 컨설턴트의 역할이 숨겨져 있다. 


3초. 50년의 혁신이 만들어낸 기록이다. 


변화에 대한 저항. "우리 잘하고 있는데, 왜 힘들게 그런 걸 하나요?"

회사에 입사한 후 몇 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며 자신감이 좀 붙은 나는, 좀 색다른 업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 클라이언트는 수년간 흑자 경영을 달성하고 있던, 겉으로 보기엔 크게 고민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어 보이는 조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고경영자는 잘 돌아가고 있는 사업들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과연 몇 명의 임직원들이 “좋습니다. 어떻게 도우면 될까요?”라고 대답했을까? 더 이상 줄일 시간이 없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는) 1950년의 F1 팀처럼 말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은 "우리 회사 잘하고 있는데, 왜 힘들게 그런 걸 하나요?"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고객과 대면하는 일선의 콜센터 직원은 물론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프로덕트 매니저, 지역 내 사업을 총괄하는 임원진까지 모두 말이다. 


이건 사업 진단 및 전략 수립을 마친 클라이언트 경영진에게 보고서 상의 'what'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how'에 대한 도움을 주는 프로젝트였다. 이전까지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의 대부분은 '5년 내 2배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A, B, C 중 무엇을 할까?' 등 클라이언트의 전략적 질문에 대답해주기 위함이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좀 많이 달랐다.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조직 내 ‘저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설득이 필요했다. 결국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고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실현하는 것은 기업의 오너도, 주주도, 최고경영자도 아닌 기업의 임직원들이기에, 그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시키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야했다. 


경영 컨설팅: 파워포인트 밖으로 뛰쳐나가다

이 새로운 숙제를 받아 들고 우린 고민을 하고 또 했다. 어떻게 그 수많은 임직원들의 관심을 얻고,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 시장의 트렌드, 데이터, 차트, 분석자료로 구성된 수십, 수백 장의 보고서를 보낸다면 어떨까? 수 주에 걸쳐 기업의 경영진에게 설명했던 자료처럼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임직원들은 이 보고서를 열어보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드래그 한 뒤 용량을 줄이기 위해 '휴지통 비우기'를 할 것이다. 우리 팀은 경영 컨설턴트의 종이와 연필인 파워포인트와 엑셀을 잠시 꺼두고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다수를 위한 보다 쉽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우리는 기업과 경영진의 메시지를 전 직원들에게 효율적으로 전하기 위해 동영상을 제작하고, 또 앱을 제작하기로 했다. 아마 그때 누가 내가 일하는 모습을 봤다면 나를 광고 에이전시의 AE (Account Executive)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우리 팀엔 전통적인 경영 컨설턴트 외에 새로운 업무를 하는 멤버들도 합류했다. 우린 우선 사내 커뮤니케이션팀으로부터 영상 원고를 받았고, 비디오 그래픽 팀의 도움을 받아 경영진과의 인터뷰 촬영과 영상물을 편집했다. 임직원들은 영상물로 한눈에 쉽게 현재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이 뿐 아니라, 디지털 앱 개발자와 협조하여 경영진이 꿈꾸는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업무들에 이보다 더 정신없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만약 내가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일반적으로 전략/경영 컨설팅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 실행은 클라이언트의 역량에 맡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끔 경영 컨설턴트가 하는 일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거나 탁상공론 아니냐는 비아냥 아닌 비아냥도 듣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한 경영 컨설팅은 이런 말을 듣기에 정말 억울하다. 내가 경험한 경영 컨설팅의 역할은, 클라이언트의 비전, 전략, 이니셔티브를 실현하는 여정을 함께해주는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동반자였다. 머리로만 하는 컨설팅이 아니라 팀원들 하나하나가 진짜 가슴으로 클라이언트의 고민을 들어주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어느 때보다 프로젝트를 마치며 뿌듯했다. 문득, 내가 60여 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F1 핏 스탑 팀에게 3초만에 이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영상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아마 F1의 역사는 새로 쓰여졌겠지!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이전 02화 MLB 구단주도 인생에 고민이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