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6살의 결혼 새내기

Part 1. 임신과 출산 - 20대의 결혼 준비

by 미소핀
한국 여성 평균 초혼 연령이 30.6세를 넘긴,
그리고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

만 26세,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식을 올렸다.

20대의 결혼은 막막했다.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한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스드메'니 '청첩장 모임'이니 '가방순이'니 모르는 것 투성이로 결혼준비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다!


추석 연휴 직후 부산 사상에서 진행한 상견례. 양가 부모님께 잘 봐달라고 뇌물용 선물을 한다고도 하던데,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던 우리들은 맨손 아니, 양손 가득 부모님 손을 잡고 상견례 자리로 갔다. 이미 결혼 자체는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라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결혼식 일정과 장소도 정해진 상태였고, 예물, 예단 이야기가 나오자 울 부모님은 긴장하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효율, 돈,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시부모님께서는 예물, 예단이 중요치 않으신 것 같았다.


(당시 예비 시아버지)

"예물 예단이 같은 가격대로 주고받는 거라대? 그럼 그게 할 필요가 있냐는 거죠."

(당시 예비 며느리 나)

"그럼 저희 오늘 현금으로 1억 주고받은 셈 치시는 거 어떠세요?"


당돌한 예비 며느리의 농담에 아버님은 껄껄 웃으시며 1억을 주고받으셨고, 결혼은 착착 준비되어 갔다.




뭘 해도 살짝은 마이너 한 취향인 나와 남편은 친정 근처 작은 카페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고,

스튜디오 촬영의 상술을 욕하며 친동생을 포토그래퍼로 세우고 제주에서 웨딩 촬영을 했다.

청첩장은 나와 동생이 직접 그리고 디자인했고, 쓰진 않았지만 재미로 웨딩영상도 내가 직접 만들었다.

결혼식의 모든 노래를 직접 골랐고, 신랑신부 동시 입장은 이제 흔해졌대도 나의 결혼식이라 특별했다.


전국으로 흩어진 나의 친구들을 찾아 청첩장 모임을 갖고,

결혼을 핑계로 전국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웠다.

(그치만 최선을 다했기에 두 번 다시 결혼 준비를 하고 싶진 않다)

초보 신부를 위해 친구들이 준비해 주었던 브라이덜 샤워. 진심으로 고마워!


친구들 중에서는 거의 첫 결혼식,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축하가 이어졌지만 이 시기에 나는 꽤 우울했다.

브라이덜 샤워, 이 날이 절정이었지만 굳이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친구들에게는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했고, 친구들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결혼을 준비하며 겪는 우울증을 메리지 블루라고 한다.

결혼 준비 과정 중 겪는 스트레스와 불안 등으로 인한 우울감인데,

나는 아직까지도 남편과 싸움다운 싸움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준비 과정에서도 갈등 하나 없었다.


문제는 친정엄마였다.

친정엄마가 결혼을 반대했냐고? 아니다.

물론 이른 결혼에 불만을 표하기도 하셨지만 결혼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당시 친정은 큰 목돈을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엄마는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예단을 준비하려 하셨다.

(방금 상견례에서 안 하기로 했던 그 예단 이야기 맞습니다)


대체 무슨 돈으로?


그 비용도 적지 않았고, 잘 넘긴 문제를 스스로 끌어안은 엄마가 너무나도 황당하고 화가 났다.


"니 어머님, 아버님 말씀은 그래하셔도 연세도 있으신데 뒤에서 뭐라 안 할 것 같나?"

"안 해도 된다고? 니가 뭘 아는데? 니가 해봤나 결혼?"

"이 결혼이 니 행사가? 가족 간의 행사지!"

"엄마가 도와주면 고마워해야지, 고마운 줄도 모르고!"


외에도 몇몇 문제로 상견례 후 결혼식 전 날까지 크고 모난 말들로 채웠고, 결혼식 전 날 나 몰래 이미 보내졌다는 예단에 친정집에서 가출까지 할 정도였다.


내가 본 시부모님은 안 받으셔도 뭐라 하실 분들이 아닌데.

내가 갚아준 엄마 빚이 얼만데.

예단을 안 해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내가 감당할 문제인데.

그 딴 허례허식이 왜 필요한 건데.

나를 위한다는 엄마의 말이 너무 미웠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이번에는 7단짜리 이바지 음식을 들고 나를 보냈다.

예쁜 비단 보자기에 생전 본 적 없는 한우와 과일로 가득 채워 호화롭고 정성 담긴 도시락이었다.

미리 들은 바 없었지만 이 즈음되니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바라시는 대로 옮겨드렸다.


"아이고, 이렇게 보내주시면 우리는 우째 보답을 하라고... 우째 하라고..."

어머님께서는 곤란해하시면서도 이바지음식도 예단들도 고이 간직해 주셨다.


사실 지금도 이 예단을 안 드렸다면 어땠을지 모른다.

정말 모를 일이긴 하니까 말이다.

이후로 엄마와 이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 나눈 적은 없다.


다만 날들이 강렬하고 괴롭게 내 주변을 맴돌았기에 엄마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아무리 허례허식을 싫어하시는 어르신이라 하더라도 그 나이대, 출신 지역에 따른 관념이 있으실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나는 이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우리 애 좀 잘 봐달라고.' 엄마의 경험에서 우러난 뇌물이었다.

큰돈을 보태줄 수 없으니 정성이라도 들여 딸 결혼식을 챙겨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억지로 욱여넣은 엄마의 사랑이 날 아프게 했지만, 엄마의 최선이었으리라.



제 집에서도 남자, 여자 상을 따로 차려 부엌에서 밥을 먹으며 자란 엄마와

집안 장남의 첫 아이로 사랑받으며 자란 딸.


결혼식에서 친정엄마와 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세대갈등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나에게 쓰는 편지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힘들게 하고 싶겠는가

제 자식 안 아팠으면 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상처를 냈다면

그 부모는 또 얼마나 아팠을까


여전히 당신을 원망하지만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나를 안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사랑하듯이






매주 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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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운 자기계발 중독 엄마작가
성인 ADHD여도 육아와 자기계발은 계속된다

작품 제안은 jennifer711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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