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임신과 출산 - 인생 처음으로 마음대로 안 된 일
내 인생 계획은 차곡차곡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서울의 좋은 대학 입학,
대학 졸업 후 24세 취업,
20대 중반에는 좋은 사람 만나 결혼,
서른 전까지는 아이는 둘을 출산,
마흔부터는 육아 졸업 후 열심히 내 일을 하겠다는 계획.
이제 출산 차례인데, 이 출산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젊고 건강한데!
삼신할머니는 나를 시험에 들게 하셨다.
결혼 후 1년, 우리는 임신을 위한 숙제(?)를 시작했다.
회사 인사 시즌을 고려하여 1~3월 중 출산을 목표로 4~6월 임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격 급한 나는 3월부터 마음이 달았다.
나도 남편도 창창한 20대이기에 누구보다 임신이 잘 될 거라 믿었지만, 소식은 없었다.
문제는 다낭성난소증후군으로 생리주기는 2~3 달이라 언제 배란이 되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아무런 소식 없이 한 달을 보내자 마음은 불안해져 왔다.
"선생님, 다낭성난소증후군때문에 임신이 안 되는 거면 어떡하죠?"
"그럼 배란유도 주사 맞아서 진행할 거예요? 벌써?"
"아니요..."
"그럼 임신이 쉬울 줄 알았어요? 자연임신으로 1년을 해도 확률은 60%인데 벌써부터 젊은 사람이!"
젊은 사람이 한 달도 안 되어 떼를 쓰자 삼신할아버지 산부인과 선생님께서는 화를 내셨다. 나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흘린 그다음 주.
그 눈물이 민망하게도 임신테스트기에는 선명한 두 줄이 떴다.
묘하게 에너지가 넘치던 임신이었다.
입덧도 약하게 느껴보고, 온 세상이 나의 것인 것 같았다.
7주 드디어 첫 심장소리를 듣는 날!
창원에 사는 동생을 통영까지 불러내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이 잠시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운 때에 나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나는 동생과 함께 초음파를 보게 되었다.
그날 우리는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병원에서 계산을 하고 나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병원에서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그 길이 너무나 선명하다.
나의 양 옆으로 남편과 동생이 나를 부축해 주었고, 유난히 따가웠던 그날의 햇빛이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유산은 병원에 다녀온 바로 다음날부터 자연배출로 이루어졌으나
일주일 후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소파수술을 하게 되었다.
나는 자연배출과 소파수술을 연달아하며 약 2주 동안 집에서 쉬었다.
그때는 이래저래 별거 아닌 것으로도 광광 울었다.
참고 참았던 커피도 마셨고, 막걸리도 한 잔 했다.
그 시간이 진심으로 커피와 막걸리처럼 씁쓸하고 속을 쓰리게 했다.
남편은 상처가 회복할 새도 없이 출근을 해야 했고,
"00씨 임신했다면서, 축하해!"
라는 늦은 축하를 받기도 했다.
남편은 나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터놓지도 못했다.
내가 상처받을까 봐.
유산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 약 3분의 1.
초기 유산이 흔하고,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대체로는 유전자 결함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원인을 알기는 어렵고 유산이 3번 정도 반복될 경우 원인 조사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많은 초보 엄마는 '내가 ~~해서 그랬나?'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나의 경우 임신 후 묘하게 에너지가 넘쳐 뛰고 구르고 놀았는데(당연 유산과 관계없음)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 그런가?' 하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아이를 2명 이상 생각하는 엄마라면 최소 2번 이상의 임신 시도가 있을 텐데,
그렇게 치면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이 유산을 겪을 확률은 더 높아진다.
유산 후에 알았다.
내 주변에 유산을 겪은 엄마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우리 엄마, 회사 선배, 주변 지인.
체감 상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의 절반 정도가 유산을 겪은 듯했다.
다들 어떻게 이런 아픈 기억을 세상에 티 내지도 않고, 알려주지도 않고 살아가시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유산 후 한 달. 같은 부서 내 사내부부 커플이었던 후배님이 임신을 하셨다.
함께 아이를 기다리던 처지라 의지가 되었었는데
달이 지나가며 커져가는 그녀의 배를 보는 것이 괴로웠고,
그녀의 진심 어린 위로가 가식처럼 느껴졌다.
와중에 코로나의 유행으로 임신부는 재택근무를 했고,
빈 후배님의 자리를 보며 차라리 보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질투의 감정을 느꼈다.
임신 소식이 없이 몇 달이 더 흘렀다.
여전히 월경 주기는 불규칙했고 배란일은 알 수 없었다.
학교도 취업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는데 임신은 왜 안 될까?
내 몸의 문제인가? 건강하게 먹겠다며 식단을 조절했다.
임신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재단할 줄 밖에 몰랐다.
숫자가 아니라 시간이 필요했고, 솔루션이 아니라 기다림이 필요했는데
미적분도 못하는 공대 출신 주제에 자꾸만 임신 확률을 계산하려 들었다.
'아 이젠 진짜 모르겠다. 임신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하고 마음을 놓은 지 몇 달이 되었다. 술도 마셨고 커피도 마셨다.
친한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너 임신한 꿈을 꿨어'하고 카톡을 받은 다음 날,
정말로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다.
유산을 했던 첫 임신과 달리 임신 증상이 강렬했다.
매일이 너무나 피곤하고 어지러워 회사 출근 후에도 휴게실에서 골골대었고
'지진 난 것 같은데?' 하며
진짜 지진이 났는지 메시지를 확인하며 침대에서 일어날 정도였다.
입덧으로 한 달 사이 5kg가 빠져 결혼식 때보다 더 몸무게가 줄었다.
체덧과 토덧으로 정신은 혼미했다.
입덧이 얼마나 강력했냐면 물구나무를 서도 전혀 불안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물고기가 움직이는 듯한 태동에 진심으로 엄마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꿈틀거리는 아이의 움직임에도 여전히 남편은 꾸준히 불안을 내비쳤고
아이를 잃었던 그때 아물지 못한 그의 상처를 나는 그때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약 20주 입덧이 끝나자 행복한 인생에 임신은 그 화룡점정을 찍은 듯했다.
그 기쁨을 한 번 나누어 보라는 회사 선배님의 조언에 기부를 시작했다.
태교로 무엇을 해볼까 하다가 개념원리를 사서 풀었다.
종종 회사에서 배꼽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클래식을 들려주었다.
퇴근 후에 남편은 막걸리, 나는 아침햇살을 마시며 롤 경기를 보았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으라는 임신기,
진심으로 행복한 태교를 했다.
과학과 수학은 때로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단다.
생명처럼 고귀한 존재를 어떻게 숫자와 확률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와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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