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까지 마음대로 되는 게 없네

Part 1. 임신과 출산 - 9월 말 자연분만 예정이었는데...

by 미소핀


신체 건강한 20대!

호기심 가득한 나는 자연분만을 희망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고통 중에 하나라는 진통도 느껴보고!

여태 살아오며 입원 한 번 해본 적 없는 나이기에

굳이 이벤트가 없다면 제왕절개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소원을 신께서 잘 못 들으셨는지

제왕절개 이벤트가 벌어졌다.


예정일은 9월 말, 당시 9월에는 긴 추석연휴가 있었다.

남은 한 달 동안 남겨둔 휴가 + 추석연휴를 통해 알찬 휴가 일정을 구성했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 리스트를 품에 안고 회사에 마지막 인사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금요일에는 부서분들과 최종 인사를 나눴고,

토요일에는 병원 가는 길에 회사에 잠시 들러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도착한 병원에서 실시한 태동검사.

30분, 40분이 지나가며 주변 간호사 분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하셨다.


혹시 아기가 탯줄 감고 있다고 말씀 안 하시던가요?
아니요?

지금도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울 첫째 공주는 뱃속에서도 목걸이처럼 탯줄을 두르고 있었고,

가진통으로 수축할 때마다 심박수가 떨어지는 상태였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건 출산 이벤트다.

남편은 걱정하면서도 휴가 계획을 지켜보겠다는 마음으로

'추석 연휴 이후로는 안 될까요?' 말 꺼냈다가 의사 선생님께 혼이 났다.



일단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오시고 그때도 이러면 바로 수술합시다.



남편은 나의 완벽한 휴가계획을 칭찬하며 잘 즐길 수 있을 거라 위로했지만,

나는 의사 선생님의 이 말씀이 '다음 주에 당장 수술합시다'로 들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집을 정리하고 짐을 쌌다.

그리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 1, 2화를 보았다.

어째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대망의 월요일, 남편은 출근하고 혼자 마지막 진료를 보러 갔다.

역시나. 수술은 내일 아침.

가뜩이나 골반도 넓지 않은데 이 상태로 반복되는 수축을 주기보다는 수술이 안전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엄마의 난산이나 후기유산 경험으로 보아 나도 수술이라는 선택이 옳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회사 후배님들과 마라탕 저녁 약속을 잡았다.


진통도 한 번 겪어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웠으나

이렇게 마지막 만찬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좋구나 생각했다.




알싸한 마라맛에 입이 퉁퉁 불었다.

출산에 대한 걱정보다 휴가 일정이 틀어지는 것이 더 괴로웠다.

후배님들과 떨어져 먼 길을 걷게 되는 것 같아 조금은 쓸쓸했다.

기분을 내고자 꿔바로우도 가득 시켰다.


후배님들의 응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마라의 얼얼한 맛에 정신을 못 차린 건지, 뱃속의 이 친구를 내일 내보내는 게 어색한 건지.

그런저런 생각들이 무색하게 나는 나름 꿀잠을 잤다.




빈속으로 아침 일찍 집을 떠나야 했다.

미리 열심히도 싸둔 출산가방은 남편이 든든하게 들어주었고,

빈속이지만 내 배는 어느 때보다 든든했다.


엄마는 나의 임신 초기부터 "제왕절개, 분유수유"를 주창하셨다.

친정 주변으로 산부인과를 정할 때, 엄마의 추천은 제왕절개를 잘하는 선생님이 1순위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병원에서 제일 제왕절개 처치를 잘해주신다는 선생님과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게 복선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 엄마의 전화 한 통.

"수술 시간 언젠데?"

"아 오후에 낳아야 하는데."

"오전에 낳으면 아가 산만하다던데."

어디선가 사주를 보고 온 엄마는 딸과 손주의 상황을 살피지 않았고,

결국 엄마에게 가장 상처 줄 수 있는 말을 아는 나쁜 딸은 상처를 주었다.




수술은 선생님의 일정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내진도 면도도 관장도 어느 하나 부끄럽거나 수치스럽다는 느낌이 없었다.

'선생님, 전 모르겠고 알아서 해주십시오'하는 마음으로 내 몸을 맡겼다.


긴장감도 거의 없이 준비를 마쳤는데, 막상 수술을 앞두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술실은 생각보다 추웠고, 수술실에서는 내 손 끝의 심장박동이 크게 울렸다.

신혼여행 때 갔던 하와이의 선셋비치를 떠올렸다.

IMG_1239.JPG 실제 그날의 사진을 찾아와 보니, 상상과는 사뭇 다름

해지던 시간대의 주황빛 바다가 마음을 굉장히 편하게 해 주었고

심장박동 소리도 파도소리에 맞춰 느려짐을 느꼈다.

곧 수술이 시작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감각이 없는 나의 배를 이리저리 끌어당기시더니

우리 첫째 공주님은 오전 11시 20분, 37주 2일 차, 2.76kg으로 태어났다.

초보아빠는 신생아기를 안고 흔들었다 마취과 선생님께 혼이 났고,

초보엄마는 '우주야 안녕, 반가워'만 반복할 뿐이었다.

KakaoTalk_20250524_141932376.jpg 물만두당


수술 후 수면마취를 거절한 나는 낙동강 환경에 관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만담을 들으며 후처치를 마쳤다.

(생각보다 지루했기에 둘째 때는 수면마취로 잠들었다.)




아직 마취가 덜 깨어 아프지 않은 지금 연락을 해야 한다며 세상에 출산 소식을 알렸다.


회사에서는 예정일이 한 달 뒤가 아니었냐며,

왜 우리를 출산 직전까지 일 시킨 사람으로 만드냐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하셨지만 기꺼이 출산을 축하해 주셨다.


엄마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고생했다고 하셨고,

전국 사방팔방 이렇게 가족들이 많았나, 축하한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남편은 실감이 안 난다는 표정으로 내 옆에서 멍을 때렸다.

병실로 들어간 우리에게 아기가 없으니 도무지 실감이 안 났다.


...

우리가 엄마, 아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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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운 자기계발 중독 엄마작가
성인 ADHD여도 육아와 자기계발은 계속된다

작품 제안은 jennifer711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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