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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Feb 21. 2022

미장원을 고르는 법

(22.2.13) 나홀로집에2, 황금알, 플래툰

  

  오늘 아침에는 날씨가 좋았다. 이번 주까지는 날씨가 아주 따뜻할 예정이래. 하릅에게 말했다. 하릅은 랙돌 품종의 자이언트 캣이다. 어쩌다 내가 하릅과 같이 살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릅은 아주 영리하면서도 게으른 고양인데, 예를 들면 말을 할 줄 알면서도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 주부터는 또 추워질 예정이야. 내가 다시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건방진 고양이 같으니. 하릅은 빈백에 누워서 ‘나홀로 집에2’를 보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보는 거 같은데 볼 때마다 배를 잡고 웃는다. 나는 별로 탐탁치 않다. ‘나홀로 집에2’는 거의 피가 튀기지 않는 스플래터 호러 무비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꼬마 악마 케빈은 어른 도둑들을 도륙한다. 나는 언젠가 하릅이 나에게 벽돌을 집어 던지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항상 말했다. 저건 다 영화인 거 알지? 진짜로 벽돌 따위를 집어 던지면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면서 골수가 흘러나올 거야. 하릅은 파란 눈동자로 졸린 듯이 나를 잠시 응시하다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건방진 고양이 같으니.

  마침 나는 오늘 휴가여서 단골 미용실로 가서 볼륨 펌을 하기로 했다. 이 미용실은 ‘파마공주 커트왕자의 투블럭 컷 사건’ 이후에 하릅이 발굴해 준 미용실이었는데, 소문이 좋았는지 나중에는 옆 가게도 인수해서 사업장을 확장했다. ‘파마공주 커트왕자의 투블럭 사건’이 뭐냐고?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나는 지저분한 머리를 투블럭 컷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동네를 정처 없이 걷다가 파마공주 커트왕자 미용실을 발견한 것이다. 사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 뻔했는데 그 이유는 얼마 전에 봤던 인터넷 유머 게시판의 ‘절대 피해야 할 미용실의 특징’과 거의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1. 염색한 푸들이 있다.

  2. 50대 아주머니가 주인이다.

  3.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임 장소이다.

  4. 케이블 방송이 틀어져 있다.

  5. 음식 냄새가 난다.      

 

  문을 열자, 염색한 푸들이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바라봤고 맞은편에 고정되어 있는 20인치 티비에서는 MBN ‘황금알’이 방영되고 있었다. 언제적 재방송인지 조형기가 패널로 나와 과장된 농담을 하고 깔깔깔하는 방청객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세바퀴’ 이후에 비슷한 방식으로 나온 떼토크(집단 토크) 예능 프로그램 혹은 거기에서 파생된 ‘신의 한수’, ‘닥터의 승부’ 등의 인포테인먼트 집단 토크쇼에 나오는 방척객 웃음소리에 노이로제가 있어서 공황에 빠진 상태였고, 그 사이에 같은 머리 스타일(강력 뽀글 펌)을 하고 계시는 아주머니 5명이 나를 동시에 반겨 주셔서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가운데, PCR테스트 면봉처럼 코를 찌르는 메주와 고추를 뒤섞은 후각의 향연으로 거의 혼절 직전이었다.

  안면 인식 장애가 있는 나는 아주머니 5명이 나루토 분신술처럼 같은 사람으로 보였는데 뽀글 펌 아주머니 분신 5명에게 둘러싸인 나는 분명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하고 코모도에게 물려 독이 퍼진 사슴처럼 그대로 굳어 의자에 앉고 말았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어떻게 해드릴까? 하고 묻자, 나는 투블럭이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5명의 분신들이 서로 투블럭이 무엇인지 논의하기 시작했고 그 중 누군가가 옆을 싹 밀고 위를 살리는 커트라고 말하고 순간,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황금알인지 분신들인지에서 분출되어 나왔다.

  

  약 30분 후.

  

  나는 옆 머리가 삭발당한 채, 비틀거리며 그곳에서 나왔다. 옆 머리는 파르라니 깎은 수도승의 머리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윗머리는 마치 뚜껑이나 가발처럼 얹혀 있었다. 나는 ‘플래툰’의 마지막 장면의 윌렘 대포가 연기한 엘리어스 중사처럼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며 절규했다. 그리고 그날, 일주일의 연차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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