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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Feb 21. 2022

이 도시에는 내가 원하는 게 없어요

(22.2.20) 김동률, replay, 헤밍웨이, 로코베리

  

  일주일 내내 거의 김동률의 REPLAY를 계속 리플레이로 들었다. 2011년에 나온 크리스마스 앨범이었다. 김동률은 미국 유학 시절 자기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옛 영어의 크리스마스라는 뜻의 YULE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2011년 앨범 제목은 이것을 활용해서 kimdongrYULE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앨범치고 너무 구슬퍼서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이 아니라 REPLAY 노래  가사처럼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성탄절이 될 것 같았다.

  김동률의 노래를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런 사람은 얼마나 슬프게 살길래 이런 감정과 감성과 음색이 나올까요. 그러자, 한때 인디 음악 기획계를 풍미했던 누나가 나에게 말했다.

  “한남동 건물주에 공연, 음반 수익으로 돈도 꽤 잘 벌고, 연애도 하면서 잘 살고 있어.”

  아티스트들은 대중들에게 때로는 격정과 슬픔을 팔고 그것으로 성공하여 포르쉐도 타고 그러는 것이다. 순간 감성이 ‘와르르 무너질’ 것도 같았지만 그것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주는 내내 사무실 내의 업무 분장과 업무 처리 방식 등에 대한 이러저러한 태클로 상당히 킹받는 한 주였다. 아수라의 정우성처럼 소주잔을 입에 넣고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고 싶을 정도였다. 진정이 되지 않아 렉사프로와 아빌리파이를 오랜만에 입에 털어 넣었다. 렉사프로는 세로토닌 농도를 증가시키고 아빌리파이는 도파민을 조정해 준다. 하루종일 구토가 날 것 같았는데 아마 아빌리파이의 부작용이었을 것이다. 아주 어릴 때는 이런 종류의 약을 먹고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에서 뇌를 이식받았던 사람들처럼 내 자신을 어딘가에 가두고 내 몸은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마침 앤디 워홀 그림처럼 잘 익은 바나나가 몇 개 있었다. 나는 바나나를 가지고 와 아일랜드 식탁에 앉았다. 바나나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요기보 빈백에 누워 동계 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던 하릅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와 바나나를 가져갔다. 자기가 먹고 싶어서 자기가 직접 산 바나나라고 했다. 욕샘쟁이 고양이 같으니. 이럴 때만 재빠르단 말이야. 나는 개의치 않고 다시 스피드 스케이팅 중계에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틈을 타서 하누만(힌두교의 원숭이 신)의 현신이 되어 재빨리 바나나를 낚아챘다. 그리고 입에 쑤셔 넣었다. 하릅이 꼬리를 바짝 세우고 분노의 냥냥 펀치를 날렸지만 가볍게 위빙으로 흘려 보내 줬다.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저녁에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마저 다 읽었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헤밍웨이의 문체가 하드보일드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기가 어려운데, 내가 생각하는 하드보일드 문체라는 것은 레이먼드 챈들러나 김훈의 문체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오히려 정신없이 써 내려간 느낌인 스티븐 킹의 ‘그것’과 더 비슷한 문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 사이에 계속 끼어드는 주인공의 독백같은 심리상태 묘사 때문이었다. 그리고 로버트 조던과 마리아의 로맨스가 나오는 장면은 굉장히 오글거리는데(조던이 부르는 마리아의 애칭은 내 귀여운 사람 혹은 내 귀여운 토끼이다.) 헤밍웨이가 전쟁에 대한 관심만 조금 부족했다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 말년에는 낚시로 관심이 옮겨갔지만.

  나는 스티븐 킹이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의 원작자이자,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와 ‘쇼생크 탈출’의 원작자라는 이유로(‘그린마일’은 제외한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의 소설들을 읽었는데 가장 최근에 개봉한 ‘그것’의 원작은 무려 3권짜리였다. 나는 스티븐 킹의 장편보다는 단편을 좋아하는 편이다. ‘호랑이가 있다’, ‘금연주식회사’, ‘옥수수밭의 아이들’ 같은 것들. 훨씬 임팩트가 있고 간결하다. ‘샤이닝’이나 ‘그것’은 특히 코즈믹 호러에 대한 그의 취향이 돋보이는데 러브크래프트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을 때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나는 마치 그것이 에우리피데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은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주인공들은 거의 대부분 신경쇠약이나 정신분열 직전에 가 있는 것 같은 내적 묘사가 내용의 30%는 차지하는데(이럴 때는 그가 사랑하는 ‘괄호’를 사용한다.) 이런 스타일은 때때로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을 때 거슬릴 때가 있다. 조현병 환자의 상담일지를 보는 정신과 의사의 괴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상당히 괜찮았지만,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이 정말로 제 정신에 쓴 책이 아니다. 아마도 한껏 약에 취해서 쓰지 않았을까 싶다. 십 대 아이들이 우주적 악(페니 와이즈)과 싸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집단 성교이다. 난 이것이 이대로 출판되었다는 것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음악을 로코베리의 2021년도 싱글 ‘이 도시에는 내가 원하는 게 없어요’로 바꾸었다. 점심을 먹고 하릅에게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하릅은 시큰둥하게 바나나를 까먹으며 웹소설 ‘반드시 해피엔딩’을 읽고 있었다. 나는 신발 끈을 동여매며 중얼거렸다. 스타벅스 리저브에서 블론드 바닐라 더블 샷 마끼아또와 봄딸기우유 크루아상 먹을 건데.

  자이언트 랙돌이 몸처럼 등에 붙이고 앉아 있던 빈백을 가볍게 차고 날아올라 내 앞에 섰다. 오랜만에 보는 유연한 몸짓이었다. 스타벅스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지.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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